어제 배송받은 책의 하나는 <해럴드 블룸의 독서기술>(을유문화사, 2011)이다. 원제는 'How to read and why'. 책을 어떻게 읽는지, 그리고 왜 읽는지 시범적으로 보여주는 책. 원제를 미처 확인하지 못하고 주문을 했는데, 받고 보니 예전에 <교양인의 책읽기>(해바라기, 2004)라고 한번 번역됐던 책이다. 터무니 없어 보이는 책값 때문에, 그리고 불명료한 번역 때문에 직접 구입하진 않고 도서관에서 대출해 몇 장을 읽어본 기억이 난다(주로 러시아 작가들에 관한 장). 요컨대, '오래된 새책'인 셈이다. 그래서 이번에 올라온 리뷰기사와 함께 지난 2004년의 기사도 찾아서 같이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4. 30) 고전을 더 잘, 더 깊이 만나는 길

고전 문학은 어떻게, 왜 읽는가. 숱한 평론가와 독서 애호가들이 이에 대한 답변을 내놨다. 미국의 인문학자이자 평론가 해럴드 블룸도 그중 한 사람이다. 문학 비평에 있어서 블룸의 위치는 ‘보수 중의 보수’라 할 만하다.

그는 <해럴드 블룸의 독서 기술>(원제 How to read and why)에서 고전을 읽는 몇 가지 방식을 제시한다. 그 첫번째가 “머릿속에서 은어를 제거하라”다. 그가 ‘은어’라고 말한 것은 “한 분파나 수상쩍은 비밀 집회에서 사용하는 특수한 용어”다. 즉 블룸은 역사주의, 페미니즘, 해체론, 마르크스주의 등 근대적 주체를 해체하고 저자를 죽이는 모든 사조에 저항한다. 블룸에 따르면 독서의 즐거움은 사회적이기보다 이기적이다. 책을 더 잘, 깊이 읽는다고 타인의 삶을 향상시킬 수는 없다. 독서를 통해 이웃이나 주위 사람을 개선하려고 시도해서도 안된다. 궁극적으로 우리는 “자신을 튼튼하게 하고 자신의 진정한 관심사를 깨닫기 위해 책을 읽는다.”  

독서의 몇 가지 원칙을 제시한 후 블룸은 “내면의 빛에 비추어” 읽어볼 만한 장·단편 소설, 시, 희곡 60여편을 제시한다. 세르반테스, 셰익스피어, 월트 휘트먼, 마르셀 프루스트를 거쳐 윌리엄 포크너, 코맥 매카시까지 이른다. 새 장르를 소개할 때마다 ‘들어가는 말’과 ‘나오는 말’로 이정표를 제시하는데, 그렇다 해도 블룸의 글은 읽기가 쉽지 않다. 집중력이 높고 섬세한 독자만이 이 이정표와 지형을 읽어낼 수 있겠다.

블룸은 현대의 단편 소설을 체호프파와 보르헤스파로 나눠볼 것을 제안한다. 체호프 스타일이 현실에 대한 우리의 갈증을 충족시켜 준다면, 보르헤스 스타일은 현실을 넘어서는 것에 대해 우리가 얼마나 갈구하는지 보여준다. 어네스트 헤밍웨이, 플래너리 오코너가 체호프파라면, 이탈로 칼비노는 보르헤스파다.

이후 문학계의 지도를 새로 그린 동시대인 세르반테스와 셰익스피어를 찬양하는 데 많은 분량이 할애된다. 세르반테스의 <돈키호테>는 “최초의 소설이자 가장 뛰어난 소설이지만 소설 이상의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는 “일어날 수 있는 거의 모든 사건”이 일어나고,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산초와 돈키호테의 대화다. 둘은 서로의 말을 들음으로써 자아를 더 새롭고 풍부하게 발전시킨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는 <햄릿>이 소개된다. 블룸은 문학적 위력이라는 측면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작품이 <성경>에 유일하게 맞먹는다고 단언한다. “햄릿의 정신과 그 정신을 확장하는 데 있어 그가 사용한 언어는 신이 사용한 언어보다 아직까지는 더 넓고 더 민첩하다”고 말한다.

옮긴이가 쓴 대로 블룸이 원하는 건 결국 ‘강한 독자’다. 약한 독자가 작품을 통해 작가가 전달하는 메시지를 파악할 때, 강한 독자는 작품을 자신의 시각에 비추어 창조적으로 오독한다. 오독의 과정을 통해 작품에 지지 않는 강한 자아를 형성하기. 이 책을 발판삼아 꿈꿔볼 만한 목표다.(백승찬기자)   

해럴드경제(04. 10. 09) 책! 책!…어떻게 왜 읽어야 할까

`나 눈가린채 뱃전 위 널빤지를 걷네/머리위로 별들이 느껴지고/발 아래 바다가 있네/다음 한 걸음이 내 마지막 걸음이 될지도 몰라/나 불안하게 걸음을 옮기네/누군가 경험이라 부른 그것을`(에밀리 디킨슨) 

경험의 총합이 진실을 가리키는 건 아니다. 인간은 극단을 통해 자신을 발견하는 존재. 순간은 필사의 선택으로 점철돼 있다.

왜 책을 읽는가? 살아있는 영미문학권 최고 비평가 중의 하나인 해럴드 블룸은 변화에 대처하기 위해서라고 답한다. 인간이 겪는 최종적인 변화는 죽음. 감정은 물거품처럼 사라지기 쉽기에 인간은 책에서 위로를 구한다. 마르크시즘 비평에 맹공을 퍼부었던 논객 중의 논객 해럴드 블룸은 맞장구치는 재미로 책읽는 것은 좋지 않다고 말한다. 자기가 옳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 혹은 남을 비판할 근거를 취하기 위해 독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블룸이 좋아하는 작가 중 하나는 본연의 자기가 될 것을 가르친 체호프. 저자는 체호프처럼 문학이 선(善)의 한 형태임을 보여주는 작가들 때문에 책을 놓지 못한다고 고백한다.

`교양인의 책 읽기`(해바라기, 2만3000원)는 책을 어떻게 왜 읽는가 하는 주제를 다각도로 풀어낸 문학평론서다. 예일대 등에서 40년간 문학을 가르친 해럴드 블룸의 독서편력을 넘겨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고금을 종횡하는 박학함으로 위대한 정신들의 내연(內緣)관계가 낱낱이 드러난다. 가령 30대에 매독으로 요절한 모파상이 쇼펜하워의 정신적 제자였음을 아는 사람 얼마나 될까.  

블룸은 단편소설의 장르적 특성을 언급하면서 체호프적인 것과 보르헤스적인 것으로 구분한 뒤 인상주의와 자의식을 각각 예술적 책략으로 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세르반테스를 셰익스피어의 유일한 경쟁자라고 규정한 것도 마찬가지다. 블룸은 도스토예프스키, 투르게네프, 토머스만을 세르반테스 파로 분류하면서 돈키호테와 산초판자도 모른 채 인간에 대해 논하지 말라고 충고한다.

`교양인…`은 거장들의 문학세계를 두루 엮어낸 책. 문학의 치유능력을 믿는 블룸은 위대한 작품은 매우 실용적이라고 단언한다. 인간의 초상화로서 소설은 3000년대에도 여전히 독자를 얻을 것이라고 예언하기도 한다.  

`오, 천상의 존재들이여/그대들은 우리를 무엇으로 만드는가. 가진것 없으니/우리는 웃을수 밖에;가진것이라고는 우울함뿐이니/여전히 아이일수 밖에. 감사드리오/지금의 모습에. 그리고 그대들과 함께 싸움에서 떠나고자 하오/우리의 문제가 아니니까. 그만둡시다/그리고 시간처럼 우리를 참아봅시다`  

저자는 에필로그에서 셰익스피어가 49세에 극작을 그만둔 이유를 설명하며 위의 시구를 인용했다.(윤승아 기자)  

11. 04. 30.  

P.S. 블름의 대표작 가운데 하나인 <셰익스피어: 인간의 발명>과 <서양의 고전>은 원서를 구해놓은지 오래됐지만 아직 읽어보진 못했다. 만만찮은 분량이기 때문인데, 번역서가 출간돼 수고를 덜었으면 싶다. 이번에 관심을 갖게 된 책은 <영향의 해부>이다. <영향의 불안>을 떠올리게 하는 제목인데, 조만간 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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