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의 이론가로 잘 알려진 조정환의 새책이 출간됐다. '인지자본주의'라는 생소한, 그러면서 새로운 개념으로 현단계 자본주의를 분석한 책이다. 어제 전철에서 읽은 인터뷰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경향신문(11. 04. 19) "지금은 ‘인지자본주의’시대” 

구글과 네이버가 돈을 버는 방식은 독특하다. 노동자를 더 고용해 그들이 창출하는 ‘잉여가치’에서 자본을 축적한다는 마르크스적 해석이 통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과 한 번도 얼굴을 대면하지 않은 사람들, 바로 ‘우리’의 일상적인 행동에서 부를 창출한다. 필요와 욕망을 위해 서로 메일을 주고받고, 지식IN에 글을 올릴수록 그들은 돈을 벌지만 우리에겐 특별한 보상이 없다.

최근 <인지자본주의>(갈무리)를 출간한, 우리나라 대표적 자율주의 이론가 조정환씨(55)는 이러한 새로운 자본 축적 방식에 주목했다. 18세기까지 이탈리아와 지중해 등을 중심으로 교역을 통해 자본을 축적한 것이 상업자본주의라면, 18세기 이후 영국에서 공장과 기계를 통해 노동자가 창출한 잉여가치로 자본을 축적한 것이 산업자본주의다. 이 시대 자본 축적은 엔클로저 운동과 같이 소작인을 강제추방하고 그 땅에 양을 키우거나, 돈 벌려고 상경한 농민들을 공장에서 밤 늦게까지 부리는 ‘폭력성’이 수반됐다.

20세기 후반에 접어들면서 자본의 축적 방식에 변화가 시작됐다. ‘폭력’이 아니라 ‘동의’를 얼굴로 하고 노동자의 육체력보다 인간의 지식·감정·소통·정보를 자본 축적의 동력으로 삼기 시작한 것이다. 지난 12일 서울 서교동 ‘다중지성의 정원’에서 만난 조씨는 “지난 30여년간 자본 축적 방식의 변화를 어떻게 봐야 하느냐는 것이 학술 혹은 사회운동의 주요한 관심사였다”며 “지식·감정·소통·정보, 즉 인간의 인지능력을 동력으로 돌아간다고 분석했기 때문에 이를 인지자본주의라고 명명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포드’가 몰락하고 ‘구글’이 뜨는 상황, 공장에 붙여진 ‘정숙’이라는 표어는 없어지고 자유로움을 강조하면서 그 성과는 어디론가 가로채지는 상황, 이것이 조씨가 말하는 제3기 자본주의, ‘인지자본주의’다. 

 

조씨는 지난 10여년간 연구성과를 토대로 기존의 마르크스 이론뿐만 아니라 인지과학의 성과까지 가져와 현대사회의 변화를 분석한다. 이를 바탕으로 왜 현 사회를 ‘인지자본주의’로 매김할 수 있으며, 변혁의 시발점은 어디부터인지를 전망한다. 그에 따르면 지금 사회는 공간 개념부터 변하고 있다. 공장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살고 있는 대도시 전체가 생산의 공간으로 변모하고 있다. 기존의 육체적 노동을 넘어 인간의 감정·지식·정서까지 자본 축적에 동원당한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공간 자체도 오늘날에는 하나의 ‘공장’이다.

더욱이 “최근의 사건들을 보면 인지자본주의적 분석이 정확히 들어맞는다”는 게 조씨의 주장이다. 인간이 내놓은 인지력의 성과와 소통 과정을 독점하는 것이 하나의 권력이며 사회문제의 핵심으로 떠오른다는 것이다. 촛불집회를 촉발시킨 광우병 사건은 광우병의 위험성 자체에 대한 지적 논란이 핵심 중 하나였다. 4대강 문제, 천안함 사건도 과학적 이슈가 중점으로 떠올랐다. 최근 원자력 발전과 방사성물질에 대한 우려 또한 인지적 문제가 농축된 것이다. 그러나 지식·정보는 독점되고 사람들의 감정을 소통하는 통로들은 모두 자본에 지배당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조씨는 최근 벌어진 아랍혁명에서 희망의 씨앗을 발견한다. 그는 “무함마드 부아지지라는 한 청년의 분신이 튀니지 혁명을 불러왔고, 와엘 고님이라는 한 청년의 문제제기가 이집트 혁명의 시발점이 됐다”며 “러시아 혁명은 볼셰비키라는 오래된 전문 혁명가 집단이 세밀하게 조직한 것이라면 요즘 그런 식으로 일어나는 혁명은 없다”고 말했다. 고교생·청년실업자 등 전문가도 아니고 당원도 혁명가도 아닌 사람들의 감정적·정서적 호소가 이름 모를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이것이 역사적 사건의 기폭제로 작용하고 있는 것 자체가 ‘인지자본주의’에서 변혁의 출발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논지를 바탕으로 하면 변혁의 동력은 과거 시대와 완전히 달라진다. 상업자본주의에 대항하는 것이 해적이었고 산업자본주의 시대에 저항하는 것이 ‘만국 노동자의 단결’을 통한 파업이었다면, 인지자본주의 시대의 저항은 ‘네트워크’이다. 수없이 다양한 생각들을 가지고 대도시 안에 널리 분산돼 있는 사람들, 조씨가 ‘다중’이라고 표현하는 이들의 직접 소통과 ‘공통되기’를 통해 인지의 축적과 소통구조를 혁명해야 한다는 것이다. 즉 SNS와 같은 도구를 자본의 축적 방식으로 이용당하지 말고 다중의 것으로 전유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아랍혁명같이 멀리 갈 것도 없다. 이름모를 한 네티즌의 문제제기로 여러 사람이 공감하며 타오른 촛불집회가 그 한 사례다. 조씨는 “촛불집회 때 한 여학생이 한참 경찰과 대치하고 있는 상황에서 자고 있는 노조 사람들에게 ‘일어나라’며 호통을 치던 장면이 생생하다”며 “이 변화된 풍경, 이 어린 친구를 어떻게 봐야 하나, 이런 것에 하나의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조씨는 <인지자본주의>에서의 분석을 바탕으로 어떻게 세상을 바꿔나가야 할지를 제시하는 <혁명의 세계사>(가제) 출간을 준비 중이다.(황경상기자) 

11. 04.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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