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리뷰들을 보다가 발견한 '이주의 소설'은 리브카 갈첸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민음사, 2011)이다. 놀랍지 않은가, 이런 제목의 소설이라니! 원제는 그보다는 약간 덜 놀라운데, 그냥 '대기 불안정(Atmospheric Disturbances)'이다(나는 거기에 덧붙여 'and other...'란 식으로 이어지는 줄 알았다. 확인해보니 전체 제목은 정말로 'Atmospheric Disturbances and Other Sad Meteorological Phenomena'이다!). 아무려나 작가의 데뷔작이라니 한번 더 놀랍고, '모던 클래식'의 평판을 얻고 있다는 점도 역시 놀랍다. 독서욕을 강력하게 부추기는 소설이다.  

한국일보(11. 01. 29) 아내의 존재를 부정한 남편… 그녀 찾아 떠난 여정의 끝은 

"아내와 똑 같이 생긴 여자가 내 아파트로 들어왔다." 자연스럽게 현관문을 열고 집으로 들어오는 '아내와 똑같이 생긴 여자'는 진짜 아내일까, 가짜일까. 미국 작가 리브카 갈첸(35)의 <대기 불안정과 그 밖의 슬픈 기상현상들>이란 심상찮은 제목의 소설은 이 미스터리에서 출발한다.

50대 정신분석의사 레오가 젊은 부인 레마를 가짜라고 믿고 진짜 부인을 찾아가는 과정을 1인칭 시점으로 그리고 있는 소설은 자못 기괴하면서 서늘하다. 레오는 정신분석학적, 물리학적, 기상학적 증거를 찾으며 부인이 가짜라고 확신하고, 이는 자신이 치료했던 환자 하비의 실종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비는 왕립기상학회의 비밀요원으로 기상을 통제하는 기술을 갖고 있다고 믿는 분열형 성격장애자로 책 제목처럼 기상학을 인간 심리의 메타포로 변주시키는 매개물이다.

레오는 부인의 고향 부에노스아이레스까지 찾아가 장모를 만나선 레마 남편의 친구로 행세하며 자신이 몰랐던 레마의 과거를 만난다. '가짜 아내'가 레오를 찾아오지만 레오는 이를 피해 다시 남아메리카대륙 남쪽 끝 파타고니아로 떠난다.

소설은 레마의 실체에 대한 미스터리로 시작하지만, 책장을 넘길수록 레오의 눈을 통한 레마의 정보가 믿을 만하냐는 묘한 긴장감이 일어난다. 레오는"내게는 입원 경력이 없었고 정신 질환과 관련한 병력, 사회력, 가족력도 없었다"며 눙치지만, 차츰 레오의 일그러진 내면 세계가 드러나는 것이다. 레마를 찾아가는 여정은 결국 레오의 숨겨진 마음 속 비밀을 푸는 과정에 다름없다.

작가가 모티브를 얻은 것은 카그라스(Capgras) 증후군이다. 자신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이나 동물, 사물이 똑같이 생긴 다른 것으로 바뀌었다고 믿는 망상이다. 소설은 젊고 매력적이며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린 부인을 끊임없이 의식하며 병들어 간 50대 남성의 고독과 불안 등 불안정한 심리를 섬세하게 그려낸다. 사회적으로 안정된 듯 보였던 중년의 남성이 느닷없는 폭풍우에 불안정해진 대기처럼 무의식적인 광기에 흔들리고 부유한다.

이를 미친 사람의 이야기로만 치부할 수 없는 것이, 가까운 이가 문득 낯선 타인으로 느껴지는 경험은 누구나가 한번쯤 겪는 일이기 때문이다. 목적지를 잃고 사랑이라는 감정만이 둥둥 떠다니는 현대 사회의 불안정한 인간관계에 대한 쓰린 이야기로 읽을 수 있는 셈이다. 작가는 도플러 효과나 기상학 이론을 활용해 이런 심리를 풀어내는데, 소설에 등장하는 기상학자 츠비 갈첸은 작가의 실제 아버지다. 



책은 2008년 미국에서 출간된 작가의 첫 소설이다. 포스트모던 소설의 계보를 잇는다는 평가를 받으며 리브카 갈첸은 한 편의 소설로 주목 받는 신인 대열에 합류했다. 옵서버지는 미국 포스트모던 소설의 대부인 토머스 핀천의 후계자라고 평했다. 민음사 모던클래식 시리즈의 40번째 책으로 나왔다. 

11. 01. 29.  

P.S. 옮긴이의 말을 보니 저자는 다니엘 파울 슈레버 박사의 회고록 <한 신경병자의 회상록>(자음과모음, 2010)에서 작품의 모티브를 얻었다고 한다. 그리고 기사에서도 언급되지만 기상학자 츠비 갈첸이 그녀의 아버지이고, 그의 여러 논문 또한 이 작품에 중요한 모티브가 되고 있다고.  

  

갈첸 가의 가족사진이다. 엄마의 무릎 위에 앉은 아이가 작가가 된 리브카 갈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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