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의 관심도서' 중 이론서 범주에 해당하는 건 낸시 프레이저의 <지구화 시대의 정의>(그린비, 2010)다. 주제와 제목으로만 봐서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에 바로 이어지는 책이어도 좋겠지만('정의'에서 '정의의 스케일'로), 아직 그렇게 되기는 어렵겠다(그래도 똑똑한 고등학생들은 읽어볼 것이다).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는 생각에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12. 03) 지구화 시대에 필요한 정의론 

“민족국가 안에는 안정화된 정치 제도가 있지만 국제적 영역에서는 그런 장치가 불완전하다. 따라서 정의의 개념을 국제 사회에서 적용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정의란 무엇인가>의 지은이 마이클 샌델이 지난 8월 방한했을 때 기자간담회에서 했던 말이다. ‘민족국가라는 공동체의 틀을 벗어났을 때 정의는 어떻게 드러나야 하는가’란 문제 제기는 주로 민족국가의 틀 속에서 공동체주의의 입장에서 정의론을 펼쳤던 샌델에게 제기된 비판 가운데 하나다. 



최근 출간된 <지구화 시대의 정의: 정치적 공간에 대한 새로운 상상>은 이런 문제 제기에 답을 주기 위한 책이다. 지은이인 낸시 프레이저(사진) 미국 뉴스쿨 사회과학대학원 교수는 현대 정치철학 연구자로서 여성주의 이론, 비판이론과 정의론의 선두주자로 꼽힌다. 한나 아렌트, 위르겐 하버마스 등 유럽 사상가들을 비판적으로 계승해 새로운 차원의 정의론을 구축했다고 평가받는다.

프레이저는 “정의가 적용되는 범위가 근대적인 영토국가 내부”라는 인식이 오늘날 정의론을 위기에 빠뜨린 주범이라고 본다. 그런 정의에 대한 인식은 근대 주권국가가 이뤄진 토대인 ‘베스트팔렌 체제’와 ‘케인스주의’로부터 이뤄진 틀(framing)에서 비롯됐다. 기존 정의론이 전념했던 문제는 경제적인 차원에서의 ‘분배’ 또는 문화적인 차원에서의 ‘인정’ 등 일차원적인 문제들이었다. 곧 한 영토국가 안에서 경제적 부가가치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구성원들의 신분질서는 어떻게 설정해야 할 것인가 등이 기존 정의론의 주요 내용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지구화의 확대는 기존 정의론이 가진 내용과 방법, 실현방법 모두에 혼란을 가져왔다. 예컨대 에이즈의 확산, 국제 테러리즘, 유전자조작곡물, 이주노동자 등 영토국가의 경계를 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해 기존 정의론은 더이상 보편적인 문법으로 작용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되레 부정의를 확산하는 강력한 악효과까지 낳는다.

따라서 프레이저는 ‘삼차원적 정의론’을 제기한다. 기존 정의론이 다뤘던 내용인 경제적 차원의 분배와 문화적 차원의 인정을 묶고, 여기에 정치적 차원까지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정치적 차원의 핵심을 이루는 개념은 ‘대표’(representation)다. 대표는 분배와 인정에 관한 투쟁들이 펼쳐지는 무대를 제공하는 장치다. 이런 정치적 차원의 도입은, 일상적인 정치적 부정의를 바로잡기도 하지만 정치적 공간을 잘못 설정해 누군가를 늘 배제하는 ‘대표 불능’의 부정의도 바로잡는 의미를 갖는다.

정의의 가장 일반적인 의미를 ‘동등한 참여’라고 보는 프레이저는, 민주적 의사결정을 왜곡하는 부정의들을 제거함으로써 민주주의와 정의를 서로 연결할 수 있다고 본다. 곧 분배와 인정을 위해 투쟁을 벌여야 할 사람들이 아예 무대에 올라가지 못하는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 무대를 만드는 과정까지 민주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의 ‘내용’에만 매달렸던 기존 정의론들과 다르게 ‘당사자’와 ‘방법’을 중요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프레이저 정의론은 지구화 시대에 정의가 어떻게 논의되어야 하는지 하나의 중요한 방향을 제시한다.(최원형 기자) 

10. 12. 04 

 

P.S. 책갈피의 저자 프로필을 읽다가 떠올린 건 역시나 비판이론에 젖줄를 대고 있는 여성철학자 세일라 벤하비브이다. 한나 아렌트를 연결고리로 갖고 있다는 점도 두 사람을 묶어주는 듯싶다(실제로 친하게 지내는지는 모르겠지만). 벤하비브의 책은 <비판, 규범, 유토피아>(울력, 2008)와 <타자의 권리>(철학과현실사, 2008)가 번역돼 있다. 그녀의 신작 <어두운 시대의 정치학: 한나 아렌트와의 만남>(2010) 도 관심이 가는 타이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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