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파' '우파'란 타이틀을 단 책들이 심심찮게 나오고 있는데, 이번주엔 두 권이 눈길을 끈다. 국내서 한권, 번역서 한권으로 비율도 맞췄다. <좌우파 사전>(위즈덤하우스, 2010)과 <좌파들의 반항>(들녘, 2010)에 대한 리뷰를 챙겨놓는다. 

 

경향신문(10. 08. 28) 하나의 현실을 판이하게 해석 ‘피 냄새’ 나는 두 시선 

얼마 전 있었던 일이다. 아이돌 출신으로 영화에도 몇 번 출연한 가수가 잡지와 인터뷰를 했다. 그는 영화계에 서운한 게 많았던 모양이다. “한국 영화계의 본바탕은 좌파다. 굉장히 우호적이지 않다”고 말했다. 이 발언이 알려지면서 인터넷 세상은 와글거렸다. 왜 아니겠는가? ‘좌파’라는 단어가 인터뷰 맥락과 별로 상관 없어 보이는 지점에서 생뚱맞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소동이 일자, 그는 “내 무지에서 비롯된 실수”라고 사과했다. ‘영화계는 자존심이 강하고 냉소적인 성격이 강한 집단’ 정도의 뜻을 담아 사용한 말이었다는 해명도 흘러나왔다.

한국 사회에서 ‘좌파’라는 단어가 사용되는 방식을 보여주는 여러 웃지 못할 해프닝 가운데 하나다. 우파 개념의 경우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은데, ‘한국 사회에서 우파란 누구인가’를 정의하기 위해선 상당히 어려운 퍼즐을 풀어야 한다. 사실 좌파와 우파 개념은 차분하게 논의되기보다는 상대에게 딱지를 붙이고 공격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는 경향이 강하다. 미국도, 유럽도 그런 경향이 있다. 그런데 한국 사회가 경험한 역사의 잔재, 이로 인해 만들어진 특수한 담론지형 안에서 두 개념이 유통되면서 덧칠된 낙서와 얼룩, 흉터가 너무나 어지럽다. 그래서 조국 서울대 교수는 “한국에서 좌파, 우파라는 단어에서는 그 자체로 피냄새가 난다”고 했다.

구갑우·김기원·김성천·서영표·안병진·안현효·은수미·이강국·이건범·이명원·이병민·조형근·최현·황덕순 등 각계의 중진 학자 14명이 집필에 참여한 <좌우파 사전>이 한국의 좌파와 우파를 설명하기 위해 귀납적 접근법을 택한 것은 이런 어지러운 사정을 감안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지고 있는 여러 주제들에 대한 좌파와 우파의 기본 입장과 주장, 그들이 추구하는 대안이 어떠한지 살펴봤다.

사안별 입장을 통해 독자들로 하여금 좌파와 우파 각각의 모습을 그려볼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나아가 이 작업은 대한민국 자체의 모습을 그리는 것에 다름아니다.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현실에 대한 해석투쟁과 미래에 대한 대안경쟁을 모자이크하면 바로 대한민국이 현재 서 있는 곳, 앞으로 나아갈 곳에 관한 대략의 좌표를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집필진은 대체로 좌파쪽에 가깝다. 좌우파의 입장을 소개하는 데 필자마다 다소 편차도 감지된다. 이는 다수의 필진이 참여한 책의 특징이기도 하거니와, 너그럽게 보자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주제를 분해하고, 나열하고, 다시 조립하는 모습을 감상하는 재미를 안겨준다.

‘사전’이라는 제목답게 분량 600여쪽에 7개 분야 22개 표제어가 실렸다. 그 목록을 일별하는 것만으로도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에서 얼마나 포괄적으로 대립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이는 곧 좌파와 우파가 한국 사회를 분석하는 데 매우 유용한 분석틀이라는 것을 뜻한다. 각각의 표제어는 독립적으로 한국의 현실, 우파의 주장, 좌파의 주장, 대립의 본질과 전망, 더 읽을거리, 사전적 정의의 순으로 구성됐다. 반드시 처음부터 읽을 필요는 없다. 관심 있는 주제부터 읽어도 좋다. 



개념과 현실(좌파와 우파), 민주공화국(국민주권과 대의제·법치주의·애국), 주권의 공존과 충돌(남북관계·한미동맹), 시장과 대안(시장과 국가·신자유주의·노동시장 유연화·소득분배와 경제성장), 공공성과 효율성(업적주의와 사회적 불평등·연대와 경쟁·신빈곤과 사회적 위험·노사갈등과 민주주의·생태위기와 녹색담론), 인권과 사회(범죄와 처벌·자유권적 기본권 제약·소수자 인권), 지식과 권력(역사기술과 정치·영어 공용화론과 영어 몰입교육·대중지성과 전문가 권위·대학과 지식생산·고교 평준화와 학교 다양화).

거칠게 정리하자면 한국의 좌파는 평등의 지속적 확대를 주장하는 반면, 우파는 현존하는 불평등의 불가피성 또는 순기능을 옹호한다. 양측 모두 자유를 중요한 가치로 내세우는데 자유에 대해선 영역에 따라 달라진다. 그리고 좌파는 직접민주주의를, 우파는 간접민주주의를 옹호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각론에 들어가면 좌파와 우파는 사안별로 대립하고, 때로는 입장이 중첩되거나, 심지어는 역전되기도 한다.

시사 프로그램 진행자로 오래 활동한 정관용씨는 추천사에서 “이 책이 다루는 주제들은 내가 12년 동안 라디오와 텔레비전 시사 프로그램에서 소재로 삼았던 사건이나 화제를 영역별로 갈무리한 것”이라고 말했는데, 이 책의 성격을 제대로 규정했다. 독자는 좌파와 우파가 벌이는 논리싸움의 향연을 감상하면서 자연스럽게 자신의 입장이 어느 입장에 가깝게 서 있는지, 왜 그런지를 성찰할 수 있다. 소통은 그 다음이다. 우선은 자신이 서 있는 곳과 상대방의 모습을 가감없이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이 목표한 것도 그것으로 보인다. 소통을 하든, 싸우든 변죽만 울리지 말고 제대로 한 번 해보자는 것 말이다.(김재중기자)   

한국일보(10. 08. 28) 21세기 좌파의 비판적 사고가 자본주의 결함을 메우는 동력

오른쪽(right)이 곧 옳은(바른) 쪽이라고 굳게 믿는 사람들, 특히 마뜩잖은 상대와 맞설 때 '좌파'란 딱지부터 붙이고 드는 이들에게 이 책의 주장은 허튼소리로 들릴 것이다. "똑똑하게 사는 유일한 길은 좌파로서 살아가는 것이다!" 하지만 자칭 좌파라면 불편해 할 목소리도 담겨 있다. "새로운 반역도 자본주의를 넘어서거나 폐지하지는 못할 것이다."

21세기 글로벌시대에 왜 좌파의 목소리가 다시 고개를 드는가. 독일의 좌파 저널리스트인<좌파들의 반항> 저자는 이 물음에 답하기 위해 <제국>의 저자 안토니오 네그리, 슬로베니아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 같은 이론가들 뿐 아니라, 총 대신 카메라를 들고 계급투쟁을 벌이는 다큐멘터리 영화 감독 마이클 무어, 베를린 출신의 팝 밴드 '우리는 영웅' 등 대중문화계의 반항아들도 주목한다. 말하자면 이 시대의 좌파란 탄탄한 이론으로 무장한 정치세력이 아니라, "어딘지 모르게 삶을 불편하게 만드는" 자본주의 체제에 나름의 몸짓으로 저항하는 모든 삐딱이들이다.

저자는 좌파의 영웅에서 상품으로 전락한 체 게바라 등의 예를 통해 저항을 포섭하는 "자본주의의 위대한 힘"을 인정한다. 그러나 좌파의 영혼에 깃든 비판적 사고는 자본주의의 결함을 메우는 동시에 그것을 변화시킬 동력으로 여전히 유효하다고 말한다. 



좌파 이론가 존 할러웨이의 말을 빌리자면 국가권력 쟁취를 목표로 했던 옛 좌파와 달리, 새로운 좌파는 "권력을 잡지 않은 채 세상을 바꾼다." 도대체 어떻게? 저자는 노력에 값하는 보수 없이도 스스로 가치를 부여한 일에 하루 법정 노동시간 이상을 쏟아붓는 젊은이들 등 "시장 한복판에서 시장으로부터 영향권을 빼앗는" 활동들에 주목하라고 권한다. 이처럼 "먼 미래가 아니라 바로 오늘을 목표로 하는 반역, 몸짓 또는 회피들"에 희망이 있다는 것이다. '상냥한 반항'쯤으로 해석될 원제('Genial Dagegen')의 함축적 의미를 살리지 못해 그저그런 좌판 이론서로 보일 한글판 제목이 아쉽다.(이희정기자) 

10. 08. 29.   

P.S. <좌파들의 반항>은 얼핏 좌파 상업주의에 대한 경계도 담고 있는 듯해서 조지프 히스와 앤드류 포터의 <혁명을 팝니다>(마티, 2006)를 떠올리게 한다. 좌우파에 모두 한방 먹이는 조지프 히스의 <자본주의를 의심하는 이들을 위한 경제학>(마티, 2009)과도 비슷한 입장이 아닌가 싶고. 아무튼 정확한 건 직접 읽어봐야 알겠다.  

Marx für Eilige 

한편, 저자 로버트 미지크는 'Takeout Classic' 시리즈의 하나인 <마르크스>(생각의나무, 2010)의 저자 '로베르트 미직'과 동일인이다. 고유명사 표기에 혼란이 있는 셈인데, 독일인이므로 외국어 표기안 대로라면 '로베르트 미지크'가 아닌가 싶다. 그런데 책에 실린 저자 소개에 보면, 최근 저작의 하나가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 Marx für Eilige>라고 돼 있다. 베토벤의 '엘리제(Elise)를 위하여'를 떠올린 것인지 모르겠지만, 아주 엉뚱하다. '급한 이들을 위하여'란 뜻의 'für Eilige'가 바로 'Takeout Classic'을 가리키기 때문이다. 역자는 미주에서 '성급한 사람을 위한 마르크스'라고 옮겼다.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는 편집자의 작품이리라. 엘리제를 위한 마르크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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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20:5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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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21:0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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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8-29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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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mmer 2010-08-29 20:39   좋아요 0 | URL
Genial Dagegen은 기자의 지적과는 달리 '기발한 반항' 정도로 번역되는 게 맞는 거 같아요. 기자는 genial을 영어단어로 착각한 게 아닌가 싶네요.

로쟈 2010-08-29 21:00   좋아요 0 | URL
구글 번역기는 '우수한 대조'라는군요.^^; 원저가 독어본이어서 저는 미심쩍은곳을 대조해보지도 못하고 있습니다...

2010-08-30 01:3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09:0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8-30 11:3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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