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에 반납해야 할 책들을 챙기다 보니 카자 실버만의 <월드 스펙테이터>(예경, 2010) 원서도 눈에 띈다. 지난 4월에 '이달의 읽을 만한 책'으로 올려놓으면서 서평도서 후보로 고려했다가 제쳐놓는 바람에 아직 읽지 못한 책이다. 부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 관심을 갖고 있는 주제이긴 한데, 방학이 끝나기 전에 시간을 낼 수 있을지 모르겠다. 아주 드문 소개기사 하나를 스크랩해놓는다.    

 

주간한국(10. 04. 13)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 

책의 제목인 '월드 스펙테이터(World Spectators)'는 본래 저자인 카자 실버만의 말이 아니다. 이 말은, 한나 아렌트에서 나왔다. 아렌트는 공간적으로 제한받지 않고 외부세계로 적극적으로 나아가는 시각의 주체, 그리고 사회에서 책임, 의무, 권리를 지닌 주체를 철학적으로 담아내기 위해 '월드 스펙테이터' 즉, '세계관찰자'란 말을 지어냈다.

저자인 카자 실버만은 이 말을 전복시켜 자신의 사유를 풀어낸다. 이 전복이 블록버스터 급이다. 그녀는 '외양'과 '존재'를 엄격하게 구분했던 서구 형이상학의 전통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녀는 말한다. "바라보아야 존재할 수 있다"고. 이 책의 핵심은 바라보기를 통한 세계의 인식이다. 참고로 그녀 실버만은 국내에서 정신분석학 틀을 이용해 사진과 영화를 분석하는 이론가로 알려져 있다. 저자의 이야기는 우리가 매일 만나는 대중문화, 사진과 영화를 새롭게 이해하는 하나의 툴이 될 수 있을 터다.

우선 저자는 소크라테스의 저 유명한 알레고리, '동굴의 우화'를 전복시킨다. 평생을 컴컴한 동굴에서 살아온 죄수가 어느 날 갑자기 환한 바깥세상을 경험하고 다시 동굴에 들어온다는 옛날 옛적 그리스 이야기를, 그리고 죄수는 이제 바깥 세계에 대해 말해야 한다는, 그 고통이 크더라고 세계의 존재를 말하는 것이 철학자의 사명이라는 전통적 해석을 저자는 '동굴 속 개별 죄수'에 집중함으로써 비틀어 버린다.

실버만은 동굴 속 죄수 각자는 주어진 세계에 던져진 존재로 모든 것이 제한적이고 부자유스럽지만, 적어도 자신의 세계를 볼 수 있는 선택권을 가진다고 말한다. 그러니까, 사물이 눈에 보일 때만 실제적으로 존재한다는 말이다. 그녀는 말한다. "결국 세계가 나타나 존재하게 될지, 아니면 비(非)존재의 어둠으로 흐려져 사라질지를 결정하는 것은 오로지 우리 자신 뿐"(15페이지)이라고.

보기, 즉 시지각은 말하기, 언어에 앞서는 것이다. 그녀의 다음 전복 대상은 성경이다. 흔히 '창세기' 2장에 나오는 성경의 창조 이야기는 언어측면이 강조되지만, 실버만은 동물과 새가 아담 앞에 먼저 보이고, 그런 다음에야 아담이 존재의 이름을 말할 수 있음을 알려준다.

주체는 개별자이지만, 또한 그가 속한 세계와 분리되어 있는 단독자가 아니다. 본다는 것은 언제나 주체와 대상, 타자, 세계와의 관계에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실버만 식으로 말하자면, 우리는 타인에게 비춰질 때만, 존재한다. 나의 존재는 타자의 존재와 맞닿아 있는 것이다.

결국 저자는 진공상태의 단독자보다 현실 세계를 사는 집합체 속 개별 주체를 강조한다. 개별적이면서도 사회 안에 집합적으로 살아가는 세계관찰자, 월드 스펙테이터는 동굴 안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더라도 언어 이전의 영역에서 언어가 나타낼 수 없는 존재의 근본 조건을 볼 수 있는 시각적 역량을 지닌다.

이 책의 부재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시각철학이다. 그러니까 그녀, 실버만의 언어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하이데거와 라캉의 철학을 사유의 바닥에 깔고 시작해야 한다는 것, 하이데거와 라캉은 다시 플라톤과 프로이트의 사유에 기대고 있는바, 책을 읽어내기 위해 정신분석, 철학, 시각문화, 미술사 그리고 문학과 영화학의 다리를 건너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여행을 마칠 때쯤 동굴에 대한 사랑을 실천할 수 있는 책임 있는 죄수, 현상을 비틀어 볼 수 있는 존재로 거듭날 수 있을 터다.(이윤주기자) 

10. 07. 12.   

P.S. 실버만의 책 가운데 관심을 끄는 타이틀은 몇 개 더 있다(원래는 <기호학의 주체>란 초기 저작으로 알게 된 이론가였다). 그나저나 말 그대로 '월드 스펙테이터'들이 주시하는 2010년 남아공 월드컵 결승전이 몇 시간 남지 않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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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04:0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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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0: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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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2:11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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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2: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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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7-12 22:4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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