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시안에서 '6.15공동선언 10주년 연속인터뷰' 가운데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와의 인터뷰 한 대목을 옮겨놓는다(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40100609123820&section=05). 인터뷰기사의 타이틀이 "천안함 진실규명, 민주회복-남북관계 개선의 결정적 고리"라고 돼 있는데, 바로 천안함 진실규명과 관련한 백낙청 교수의 견해를 알게 해주는 대목이다.  

 

프레시안 : 중국이 남·북·미·중 4개국 공동조사를 하자고 제안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백낙청 : 공동조사는 바람직하다. 북에서 검열단을 보내겠다고 했는데, 검열단이라는 게 그쪽 문자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참 적절치 않은 표현이었다. 어쨌든 검열단 제안이 왔을 때 우리 정부는 유엔사령부 조사결과를 가지고 군사정전위원회를 소집할 테니 거기 나오라고 역제의를 했다. 군사정전위는 지금 거의 유명무실해진 지 오래인데 그걸 되살리겠다고 하니까 북에서는 '이제 와서 무슨 정전위냐'고 하면서 안 받았다.

그런데 남·북·미·중 4개국의 공동조사를 하자는 중국의 일종의 수정제안은 정전위 기구를 재활용하자는 남쪽의 입장과 일치하는 것이다. 유엔사가 일방적으로 조사한 것을 갖고 와서 심문을 받아라, 야단 좀 맞고 가라는 게 아니라, 조사 자체를 4개국이 하자는 거니까 북은 마다할 이유가 없고 남쪽 정부도 자신 있으면 받을 수 있고, 받아야 하는 제안이다.

그런데 만약 사실무근을 가지고 정부가 이렇게 해놨다면 어떠한 공정한 조사 제의도 받기 어려운 상태로 자신을 몰아넣은 것이다. 빼도 박도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5월 11일 시점에서 '북한-어뢰 프레임'에 갇히지 말자고 말할 때만 해도 나는 정부가 어떤 결론을 내리지 않고 일종의 영구미제(永久未濟) 상태로 끌고 가면서 북의 소행이라는 냄새만 잔뜩 피우다가 선거가 끝나면 적당히 물러설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어찌 보면 우리 정부의 과감성이랄까 저돌성을 내가 과소평가 했다. 스스로 반성하고 있다.(웃음)

그러니까 나쁘게 보자면 적당히 장난치려고 했는데 장난이 너무 심해서 장난이 아니게 돼버린 것이다. 이제 정부는 추가자료를 제시해서 국민과 국제사회를 납득시키거나, 아니면 대한민국 역사에 유례가 없는 망신을 당하거나 둘 중의 하나밖에 길이 없어졌다.

대한민국 국민 치고 나라가 망신을 당하기를 바라는 사람이 어디 있나. 적어도 나는 안 그렇다. 그러나 지금 시대는 통킹만 사건처럼 오랫동안 진실을 묻어놓을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국내외 전문가들이나 네티즌들이 문제제기하는 걸 봐라. 얼마나 무서운 세상인가. 뚜껑을 눌러놓고 무한정 간다는 건 불가능하다.

정부가 어떻게 수습을 할지 모르겠다. 국제사회가 정말로 납득할 만한 자료를 제시해야 하는데 과거 김일성 주석이 김신조 사건에 대해 '나는 몰랐다'고 했듯 대통령이 '나는 몰랐다. 허위보고에 속았다'고 할 것인가? 그것도 간단치 않다. 우리는 북한 체제와 다르다. 정말 걱정이 되지만 어쨌든 진실에 입각해서 수습하는 것 외에는 다른 길이 없다.

시민사회는 진실과 원칙에 입각한 대응을 해야 존재가치가 있는 것이다. 가령 선거를 앞둔 야당 같으면 '북한 소행이라는데 정부는 뭐하고 있었냐. 안보무능 아니냐. 차라리 참여정부가 안보에 유능했다'는 식으로 대응할 수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는 정부가 진실을 말한다는 확신이 없을 때는 계속 의문을 제기하고 진실에 입각해 문제를 풀어 나가자, 아무리 힘들어도 그 외엔 길이 없다고 계속 얘기해야 한다

10. 06.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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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06-10 12:43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6-12 09:2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미지 2010-06-13 01:42   좋아요 0 | URL
민주당이 이번 지방선거에서 한나라당의 대립보충으로서 톡톡히 덕을 보았는데 역시 대립보충이기 때문에 그 덕을 다시 한나라당에게 돌려주고 서로 공생의 쳇바퀴를 계속 돌지 어쩔지 아연합니다.
지방선거 결과가 다행이라고 생각하다가도 민주당류를 생각하면 한없이 '불안'합니다만...
천안함 사건은 계속 의제화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대강과 천안함 문제는 한국 현대사를 통해 누적되어 온 강한 폭발력을 안고 있는 것 같습니다. 아마도 전에 말씀하신 지젝의 분노자본 같은 것...

로쟈 2010-06-13 21:06   좋아요 0 | URL
사필귀정의 역사를 믿어보지만, 실제 역사는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았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