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4년 <갈매기> 공연으로 호평을 얻은 러시아의 연출가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이 지난주부터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공연되고 있다. 내주에는 나도 시간을 내보려고 하는데, 일단은 공연 소개기사와 관람평을 스크랩해놓는다.       

한겨레(10. 05. 28) 희극적이고 비극적인 그 집안

예술의전당이 올해 러시아가 낳은 위대한 소설가이자 극작가 안톤 체호프(1860~1904)의 탄생 150돌을 맞아 그리고리 지차트콥스키(51) 연출의 <벚꽃동산>을 28일~6월13일 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지차트콥스키는 러시아 황금마스크상을 수상한 연출가이다. 이달 초 러시아 말리극장을 이끌고 엘지아트센터에서 <바냐 아저씨>를 선보였던 레프 도진(66)과 더불어 러시아의 최고 현역 연출가로 손꼽히는 인물. 그는 2004년에도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 <갈매기>를 올려 국내 연극계에 신선한 충격을 안기며 ‘올해의 연극상’, ‘동아연극상 특별상’, ‘올해의 연극 베스트3’을 수상하기도 했다.

체호프는 연극이란 ‘인생 그 자체’이며 인생을 탐구하는 것을 근본 목적으로 삼는다. 그의 4대 희곡 <갈매기>와 <바냐 아저씨>, <세 자매>, <벚꽃동산>에는 일상적이며 누구에게나 있을 수 있는, 그러면서도 알 수 없는 인생의 내적 아이러니가 담겨 있다.

특히 체호프가 죽기 한해 전인 1903년에 쓴 <벚꽃동산>은 19세기 말 러시아 봉건 귀족의 붕괴와 그 과정에서 떠오른 계층 갈등을 그린 작품이다. 과거의 습관과 낭비벽으로 벚꽃동산을 잃는 여지주 라넵스카야 부인과 자립심 없는 그의 오빠 가예프, 농노의 자식으로 부를 일군 로파힌, 가정교사 샤를로타와 수양딸 바랴, 늙은 하인 피르스 등 주변 인물들은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겹친다.

체호프의 작품은 시대와 역사를 관통하는 동시대성과 해석의 다양함을 제공한다. 실제로 체호프는 <벚꽃동산>을 코미디(희극)라고 생각했고, 1904년 모스크바 예술극장에서 초연한 연출가 스타니슬랍스키는 비극으로 해석했다. 두 사람의 이견은 이 작품의 양면적 성격을 어떻게 연출할 것인가에 대해 후대의 연출자들에게 숙제로 남겨두었다. 따라서 이번 토월극장 무대에서는 사실적이고도 서사적인 무대와 텍스트 자체를 깊이 있게 해석해내는 지차트콥스키의 연출이 더욱 관심을 모은다.  

지차트콥스키는 최근 국내 언론 인터뷰에서 “러시아의 몰락한 귀족 여성 라넵스카야를 기존의 노부인으로 표현하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전진하는 당당하고 아름다운 40대 여성으로 그릴 것”이라고 연출의도를 밝혔다.

“체호프 작품을 할 때마다 강하고 깊이있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작품의 등장인물은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인물이라서 고정적인 이미지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작품을 읽을수록, 이해할수록 다양한 표정과 특징을 가진 인물들임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는 “‘소리는 들려도 받아들이는 것은 다르다’라는 러시아 속담이 있다”며 “작품을 받아들이는 관객마다 그 느낌이 다를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 공연에서는 2004년 <갈매기> 공연에서 강렬한 시청각적인 무대효과로 극찬을 받았던 무대디자이너 에밀 카펠류시가 30m에 이르는 토월극장을 깊이있게 입체적으로 사용할 독특한 감각의 무대미술도 기대된다. 또한 원로 연기자 신구씨를 비롯해 지차트콥스키가 까다롭게 뽑은 이혜정, 장재호, 이찬영, 이지혜, 박성민, 안순동, 이춘남, 이안나, 김태균, 이종무, 지니 등 한국 배우들의 연기 또한 관심거리. 한국 공연을 마친 뒤 11월 러시아 볼코프 국제 연극 페스티벌에도 초청돼 본고장인 러시아 관객과도 만난다.(정상영 기자)

경향신문(10. 06. 04) [객석에서]연극 ‘벚꽃동산’ 

막이 오르는 순간, 객석 여기저기에서 “와” 하는 탄성이 새어나왔다. 관객의 시선을 단숨에 잡아끄는 매혹적인 무대였다. 30m가 넘는 깊이를 그대로 살려낸 갈색 톤의 질감 있는 무대. 전면은 널찍하고 뒤로 갈수록 점점 좁아지면서 사다리꼴 모양새를 취했다. 라네프스카야 부인의 오래된 영지 ‘벚꽃동산’에 자리한 대저택의 실내다. 오랜 세월 간직해온 풍요로움과 당당함, 그 저택에서 대를 이어 살아온 숱한 가솔들, 하지만 러시아가 새로운 질서로 재편되면서 점점 쇠락해갈 수밖에 없는 벚꽃동산의 슬픈 운명을 고스란히 담아낸 무대였다. 삐걱대는 나무 틈새로 간신히 스며 들어오는 햇살. 그것은 마치 앓아 누운 노인의 팔목처럼 앙상했다.

지난달 28일 서울 예술의전당 토월극장에서 막을 올린 체호프의 <벚꽃동산>(사진). 에밀 카펠류쉬가 디자인한 무대는 기대한 대로 미학적 완성도가 높았다. 그는 6년 전에 같은 장소에서 공연한 체호프의 <갈매기>에서도 그렇게 근사한 무대를 펼쳐보인 적이 있다. 무대의 폭과 깊이를 남김없이 활용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사실과 상징을 적절히 배합해 강렬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던 것이다. 이번 무대도 역시 그의 작품으로서 손색이 없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이 연극은 첫인상의 강렬함을 뒷받침할 만한 뒷심을 별로 보여주지 못했다. 배우들의 덜 익은 연기 탓이었다. 그것이 캐스팅의 실패이거나 연습 부족이었는지, 아니면 연출자 그레고리 지차트콥스키와 한국 출연진 사이의 소통에 문제가 있었던 것인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하지만 공연 첫날인 28일, 가예프 역을 맡은 배우 이찬영을 비롯한 몇몇 외에는 어설프게 겉도는 연기를 펼쳤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당연히 앙상블은 무너졌다.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소화하면서 서로 조화를 이뤄내는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 연극의 관건이 아니겠는가? 그렇지 않다면 체호프 연극은 산만하고 시끄러운 소동에 가까워질 가능성이 크다. 체호프는 언제나, 힘주어 말하지 않지만 은근히 뭔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치밀한 연기와 앙상블이야말로 체호프의 내밀한 속내를 푸는 열쇠다.

우리는 그것을 한 달 전 LG아트센터에서 확인한 바 있다. 러시아의 거장 레프 도진이 연출한 <바냐아저씨>에서였다. 당시 이 연극은 러시아어로 공연됐음에도 관객에게 체호프 연극의 짙은 울림을 전해줬다. 하지만 이번에는 한국어로 공연됐음에도 울림이 짧다. 주지하다시피 올해는 체호프 탄생 150주년. 상반기에 이미 여러 편의 체호프 연극이 공연됐고 관객의 눈높이는 당연히 올라갔다. 이 정도의 <벚꽃동산>으로는 현재의 관객을 충분히 만족시키기 힘들다.

그래도 다행스러운 것은 마지막 장면. 늙은 하인 피르스 역을 맡은 관록의 배우 신구가 휘청거리던 연극의 중심을 간신히 일으켜 세운다. <벚꽃동산>의 마지막 방점이라 할 수 있는 그 적막감을, 배우 신구가 ‘홀몸’으로 보여준다. “인생이 다 지나갔어. 그런데도 도무지 산 것 같지가 않아…. 아무것도 남은 게 없어, 아무것도.”(문학수 선임기자) 

10. 06. 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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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K 2010-06-07 19:1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한겨레 현대철학 종강타임때 추천해주신 덕분에 지차트콥스키의 벚꽃동산 잘 보고왔습니다. 로쟈님이 프로그램에 쓰신 글을 읽고나니 왜 체홉을 코미디로 읽게되는지 공감이 가더라구요. 감사합니다.

로쟈 2010-06-07 19:42   좋아요 0 | URL
아, 저도 수요일에 볼 예정인데요. 제가 그런 얘기도 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