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한겨레21에 실은 서평기사를 옮겨놓는다. 한겨레21에 연재됐던 '노동 OTL'을 묶은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 2010)에 대한 것이다. 기자들의 사명감이 놀랍고 불안노동의 현실이 마음을 무겁게 하는 책이다.

 

한겨레21(10. 05. 10) 4명의 기자가 몸으로 때운 불안노동 

‘열심히 일해도 가난한 우리시대의 노동일기’란 부제가 이미 많은 걸 얘기해주는 <4천원 인생>(한겨레출판 펴냄)은 <한겨레21> 기자들이 ‘비정규노동’ 혹은 ‘불안노동’(하종강)의 현장을 찾아가 “몸으로 때운” 기록이다. ‘4천원’은 저임금 노동자들의 평균 시급이다. 책에 실린 일기들은 <한겨레21> 지면에 ‘노동OTL’ 시리즈로 연재된 것인데, 한데 묶어놓으니 실감이 또 다르다. 애초의 기획취지도 그 ‘실감’을 얻기 위한 것이었다. 기사로는 자주 다루던 한국사회 ‘워킹푸어(working poor)’의 현실을 존재론적으로 ‘체감’할 필요를 느꼈다고 했다. 남다른 사명감을 발휘한 기자들이 이 ‘무모한’ 기획을 실행에 옮긴 덕분에 그 체감의 많은 부분을 이제 독자도 공유하게 됐다.  

'체감'을 위한 '무모한' 기획 
노동 현장의 실상을 한 달간씩 직접 체험하기 위해 기자들이 찾아간 곳은 경기 안산의 난로공장(생산직노동), 서울의 갈빗집과 인천의 감자탕집(여성노동), 경기 마석의 가구공장(이주노동), 서울 강북의 대형마트(청년노동) 네 곳이다. 무엇을 경험하고 어떤 생각을 하게 됐을까?  
‘감자탕 노동일기’를 쓴 임지선 기자는 앞치마 허리끈을 질끈 묶은 ‘식당 아줌마’의 체험을 기록했다. 홀과 화장실 청소부터 시작한 하루 12시간씩의 노동이었다. 한우꽃등심 1인분의 값 3만5000원이 식당 아줌마의 시급으론 7시간 52분의 노임에 해당하며 “숯불갈비야 말로 감정 노동부터 불판 닦기까지 가장 많은 노동력을 요구하는 무서운 음식”이라는 사실도 알려준다. 갈비집과 감자탕집 등에서 일하는 여성 빈곤 노동자의 삶은 손님과 사장과 남편과 남자들에 치이고 무시당하는 삶이었다. 그런 여성 비정규직이 439만 명에 이른다고 한다. 자녀를 공부시켜 가난을 벗어볼까 하지만 이들로선 사교육비를 감당할 만한 처지가 못 되고, 계층 간 장벽은 갈수록 더욱 공고해지고 있는 게 우리 현실이다. ‘더러운 계급사회’를 체험해본 임 기자는 소감을 이렇게 적었다. “수많은 사람이 빈곤 노동으로 일생을 보내야 하는 사회구조를 만들어놨다는 점에 있어 우리 모두는 공범이다.”  

‘히치하이커 노동일기’를 쓴 안수찬 기자는 대형마트의 양념육 매대에서 일하면서 유리진열장 5m 공간을 하루 종일 오가는 ‘땀 안 나는 노가다’를 경험했다. 30대 중반의 나이 때문에 매장 동료들에게 ‘형님’으로 불렸는데, 마트 노동자에겐 일한 시간만큼 존중받아야 할 기술이나 지식 따위가 없기 때문에 나이에 따른 호칭만 있다 한다. 안 기자는 처음엔 알아보는 손님이 있으면 어쩌나 근심했다지만, “마트에 오는 손님들은 마트에서 일하는 노동자의 얼굴을 ‘아무도’ 쳐다보지 않았다.” 그렇게 보이지 않는 노동에 종사하는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의 비율은 갈수록 높아지고 있어서, 2004년 통계로는 고졸자의 경우 44.3%가 임시직, 38.7%가 일용직에 취업했다. 웬만해선 가난을 벗어날 수 없는 가난의 대물림이 안 기자가 들여다본 청년 취약계층 노동자의 현실이었다.   

정작 노동자는 이 책을 볼까
가구공장에서 일하다 엄지손가락에 못이 박히는 산재까지 입은 전종휘 기자는 동일노동에 대해서도 차별적인 임금을 받는 이주 외국인 노동자들의 ‘보호받지 못하는’ 고된 노동현실을 ‘불법사람 노동일기’에 기록했다. 한국사회에서 10여 년을 노동자로 살아도 여전히 ‘불법체류자’의 낙인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 그들의 현실이다.  

난로공장에서 전동 드라이버공으로 일한 임인택기자는 생산라인의 ‘노예’가 된 체험과 함께 아들의 대학 한 한기 등록금을 벌기 위해선 하루 8시간씩 137일의 노동을 해야 하는 생산직 노동자의 현실을 짚었다. 이런 것이 말 그대로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이다. 안타까운 것은 공장 노동자 대부분이 이런 기사도, 책도 볼 수 없을 거라는 점이다. 게다가 “이명박 정부의 위정자 누구도 기사 속 그런 노동자의 현실에 관심을 주지 않았다는 점은 아주 독한 절망이었다”고 임 기자는 적었다. 대안을 말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 절망과 불편한 현실에 대한 오랜 직시일 것이다. 

10. 05. 03.  

P.S. 시급은 좀 나은 편이지만 원고 노동자의 생활도 그리 권장할 만하지는 않다. '불안노동'이라는 점에서는 다르지 않고! 한편, 이번주 출판면에는 월간 <작은책>에서 펴낸 '일하는 사람들의 글쓰기' 첫 권으로 나온 <우리보고 나쁜 놈들이래!>(작은책, 2010)도 소개됐다. <작은책> 창간 15주년을 맞아 그간 실린 이야기를 세 권으로 묶었는데, 두 번째와 세 번째 책은 <누가 사장 시켜달래?>와 <도대체 누가 도둑놈이야?>란 제목으로 곧 나온다고 한다. '우리 시대의 리얼리즘'(박권일)이란 표현은 이 책들에도 들어맞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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