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 의사의 순국 100주년이어서 관련서가 많이 나오고 있다. 하지만 정작 그의 사상과 행적에 관한 연구는 부끄러운 수준이라는 고백이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의 소감을 스크랩해놓는다. '영웅'이나 '장군' 안중근보다는 동양평화론 사상의 주창자로서 더 주목되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경향신문(10. 03. 26) "안중근 의사 옥중투쟁 기간 독립운동 철학 제시”

100년 전 오늘 중국 뤼순감옥에서 숨진 안중근 의사는 독립운동이 좌우로 나눠지기 이전에 의거를 일으키고 순국해 남북한 양측에서, 그리고 한국사회 내에서 정치적 입장과 상관없이 존경을 받는다. 그래서인지 이매뉴얼 칸트의 <영구평화론>에 영향을 받은 평화주의 사상가였다거나 ‘장군’으로 불러야 마땅한 상무정신의 소유자라는 극과 극의 평가가 상존한다. 하지만 안 의사는 역사상 가장 많이 거론되는 독립운동가들 중 한 명이지만 유해가 어디 있는지조차 모르고, 그의 사상을 전체적으로 규명하는 학계 작업이 부족해 이름에 걸맞은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는 안중근 의사 순국 100주기를 맞아 안 의사 의거에 대한 관심이 많지만 중요한 것은 안 의사가 제시한 ‘동양평화론’이라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안 의사에 대한 관심이 끓어올랐다 냄비처럼 식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독립운동사 연구자인 장석흥 국민대 교수(53)는 “대목 만난 듯 안중근을 팔아먹는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다. 그런 열기에 비해 한국 학계의 척박한 수준이 그의 사상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하지 못하는 것 같아 연구자의 한 명으로 안 의사께 부끄럽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이토 히로부미를 죽인 극적인 사건에 대한 주목을 넘어 의거 후 5개월 동안 그가 벌인 옥중투쟁에 대한 연구가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안 의사의 옥중투쟁이 “일제강점기 내내 이어질 ‘독립운동의 철학’을 제시한 높은 수준의 인도주의”를 영글게 한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그 철학은 동양평화론이다. “동양평화론은 서양의 침략을 맞아 동양평화를 유지하려면 동양 국가들이 독립을 유지한 가운데 단결해야 한다는 논리로 한·중·일은 물론 태국·버마까지 포괄했다”고 한다. 

동양평화론은 종종 서양인에 대항하는 동양인을 부각한다는 점에서 인종주의의 혐의가 덧씌워진다. 장 교수는 이를 단호하게 반박한다. “동양평화론이 동양 민족과 국가를 위한 것만이 아닙니다. 서양 침략을 막아야 한다는 논리는 동양을 침략하는 서양 제국주의에 대항해 독립과 평화를 지키자는 것이지, 서양 그 자체를 배척, 부정하는 게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안 의사가 “일본 국민을 구원하기 위해 이토를 처단했다”고 한 법정 진술의 연장선 위에서 이해할 수 있다. 같은 논리로 ‘서양인들을, 나아가 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동양 삼국이 독립을 유지한 채 단결해야 한다고 했던 것이고, 이는 동서양을 떠나 국가, 민족 간 전쟁의 원인을 제거하자는 데 뜻이 있는 높은 이상이었다는 것이다.

대통령까지 나서서 안 의사 유해 자료를 찾으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장 교수는 “부디 이 시점 이후에도 잊지 말고 유해자료 발굴에 계속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는 유해자료를 찾는 것을 “산에서 산삼 찾기”에 비유했다. “유해자료를 찾자고 누구나 얘기 하지만 실제로 직접 찾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적어도 사료를 읽을 줄 아는 연구자가 6개월 정도 일본에 체류하면서 그 일에만 매달려야 찾을 수 있을까 말까 하기 때문입니다.” 



장 교수는 의거 100주년이었던 지난해부터 안 의사를 ‘장군’으로 불러야 한다거나, 의거 배후에 고종이 있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것에 대해 학문적이지 않다며 비판적이다. 이 주장들은 이태진 서울대 명예교수가 적극 개진해온 것으로 육군이 최근 계룡대 육군본부 지휘부 회의실을 ‘안중근 장군실’로 바꾸거나, 안 의사를 소재로 한 뮤지컬 <영웅>에서 고종이 의거를 지시한 것으로 그려지는 등 현실에 바로 영향을 주고 있다. “군사 없는 장군이 어디 있습니까? 본인이 법정에서 육군 중장이라고 했다는 이유 때문에 그를 장군으로 부른다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의사라는 호칭이 더 격이 높고 폭이 넓지 않습니까. 그리고 고종 배후설도 말도 안됩니다. 고종은 안 의사 의거 소식을 듣고 밥 먹던 숟가락을 떨어뜨렸던 사람입니다. 자신의 주장에 사실을 꿰어맞추려는 것은 학문적이지 않습니다.” 



장 교수는 이 모든 소극이 학계의 연구가 성숙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는 10여년간 모은 사료들에 기초해 안중근 평전을 쓰는 작업에 들어갔다. 오는 10월에는 최서면 국제한국연구원 원장, 한시준 단국대 교수, 한철호 동국대 교수, 최기영 서강대 교수 등 독립운동사 연구자들과 함께 ‘안중근 연구 100년의 성과와 과제’를 주제로 학술대회를 열 예정이다. 그는 “의거 100주년, 순국 100주기의 분위기가 잠잠해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안 의사의 이름이 잊히지 않길 바란다”고 말했다.(손제민기자) 

10. 03. 26. 

 

P.S. 관련서는 적지 않지만, 아직 부끄러운 수준이고 제대로 된 '안중근 전집'도 나오지 않은 형편이라 하니 더 이 분야에서도 할일은 태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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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아 2010-03-26 15:24   좋아요 0 | URL
인문 분야에선 우리 학계가 할일이 너무나도 많은것 같습니다만, 사회적 관심이나 지원은 언발에오줌 누기 수준이니, 안타깝기만 하네요.

로쟈 2010-03-26 22:43   좋아요 0 | URL
비교적 관심을 받는 분야가 이 정도니까 갈길이 멉니다...

2010-03-26 19:0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6 22:4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27 0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10-03-27 16:04   좋아요 0 | URL
이태진은 고종이나 민비를 비판하면 식민사관에 물든 사람이라고 공격합니다.

로쟈 2010-03-27 18:25   좋아요 0 | URL
안의사의 의거가 고종의 밀령에 의한 것이란 얘기도 그래서 나오나 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