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바로 구해놓았지만 다른 책들에 밀려 아직 읽지 못한 책은 웬디 브라운의 <관용: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갈무리, 2010)이다. 마땅한 리뷰가 올라왔기에 워밍업으로 미리 읽어둔다. 관용이 언제나 '강자'의 미덕이라는 상식을 새삼 상기시켜준다.   

   

서울신문(10. 03. 06) 관용이란 말에 속지 말라, 그 속에 정치·폭력 숨었다

이런 예를 들어 보자. 당신은 최근 같은 팀의 한 동료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처음에는 불쾌감과 함께 심한 거부감을 느꼈지만, 곧 그의 정체성을 인정하고 전처럼 함께 일을 해 나가기로 했다. 소수자의 권리와 사람들 사이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관용의 정신’을 발휘해서 말이다. 이런 경우 당신은 아마 스스로의 드넓은 포용력에 만족하며 “잘한 일이다.”라고 뿌듯해할 것이다. 
  
그러나 ‘관용-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승철 옮김, 갈무리 펴냄)을 펴낸 정치철학자 웬디 브라운 미국 캘리포니아대 교수는 이를 두고 “관용의 탈정치적 전략에 속았다.”고 평가할 것이다. 그러면서 “관용을 운운하기 전에, 소수자에게 느끼는 불쾌감의 근거가 무엇인지, 또 그것이 관용만으로 해결이 될 문제인지를 고민하라.”고 요구할 것이다. 

 

홍세화 한겨레신문 기획위원이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비 펴냄)를 통해 한국에 처음 소개한 ‘관용(톨레랑스·Tolerance)’이란 개념은, 1995년 책 출간 당시부터 우리 사회에 진지한 성찰을 요구하며 크게 유행했다. 각종 갈등의 씨앗을 품고 있던 한국 사회에서 서로 다른 것의 가치를 인정한다는 관용은 주목받는 단어가 될 수밖에 없었다. 관용은 한국 사회는 물론 세계 각 지역에서 여전히 결코 의심받지 않는 가치 중 하나로 존재한다.  



하지만 브라운 교수는 이렇게 관용에 절대 가치를 부여하는 행위를 경계한다. 그는 관용이 ‘자유’나 ‘평등’의 동의어가 아님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관용이란 이름 뒤에 숨은 정치적인 계산들과 헤게모니 투쟁, 심지어 그 이름으로 자행되는 폭력의 실태를 낱낱이 고발한다. 그는 최근 20년간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사건들을 예로 들며, 이런 ‘관용의 폭력’이 우리 일상에 깊숙이 들어와 있음을 지적한다. 책에서 설명하는 관용의 탈정치성은 앞서 예로 든 성적 소수자에 대한 관용과 비슷하다. 성적 소수자에 대한 인식 문제는 정치적·사회적으로 이해해야 할 요소가 분명 있다. “동성애자는 불쾌하다.”는 차별적 인식을 갖게 한 사회 구조는 무엇인지, 또 이런 차별을 어떻게 해결할지의 문제는 개인이 아닌 국가나 사회가 나서서 해결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관용은 이러한 국가나 사회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는 논리로 이용되고 있다고 브라운 교수는 말한다. 인종차별, 동성애 혐오 등 사회적 문제를 단지 관용이 부족한 개인의 탓으로만 돌린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이에 대한 본격적인 정치 논쟁을 피하고, 소수자들을 배려받아야 할 수동적 위치로만 몰아가면서 이들이 정치세력화되는 것도 막는다.

나아가 브라운 교수는 책의 부제로 붙였듯 이런 식으로 관용이 현대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이 될 수 있음도 지적한다. 관용을 전략적으로 활용하면, 사실상 소수자를 포함한 국민의 권리 보장과 계층 간의 소통을 책임져야 할 국가는 교묘하게 이 책임을 회피할 수 있고, 기득권에 대한 도전 역시 사전에 막을 수 있다.

브라운 교수는 관용이 제국주의적 침략 전쟁에도 활용되고 있다고 전한다. 그의 설명에 따르면 미국이 중동 국가를 상대로 벌인 수많은 전쟁에는 아이러니하게도 관용의 논리가 적용됐다. 미국은 이슬람국가나 후진국의 문명은 불관용적이기 때문에 서구 선진 국가의 관용적인 문명이 이들을 처단하고 민중을 해방시켜야 된다는 논리로 침략 전쟁을 일으켰다. 관용의 범위를 자의적으로 정하고 그것을 벗어나는 것들에는 거리낌 없이 폭력을 행사한 것이다.

책에서 브라운 교수는 계보학의 방법을 통해 관용 담론이 전략적으로 사용된 흐름을 추적해 간다. 애초 종교개혁 이후 종교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사용된 때부터 인도주의로 의미가 확장되고 또 최근 다문화주의의 한 담론이 되기까지, 다양하게 변화한 관용의 용법을 소개한다.(강병철기자) 

10. 03.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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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잡담] 관심가는 책 '관용 :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from High enough! 2010-03-06 21:00 
    다문화제국의 새로운 통치전략 - 로쟈의 저공비행관용, 일명 똘레랑스.어쩐지 좀 멋있고, 어쩐지 좀 유식해 보이고, 어쩐지 좀 있어 보이는 그런 말이다. 사회의 소수자에 대한, 또는 대립적인 어떤 세력들 간의 적대적인 태도 대신 그저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인다는 좀 뿌듯하고 멋있는 그런 개념이랄까 뭐 그렇다.오, 하지만 저 책의 시점은.'왜 소수자에 대한 시각이 불편한 거지?' 같은 근원적인 문제 해결은 없다는 거 알고 있니-라고 한...
 
 
노이에자이트 2010-03-06 20:40   좋아요 0 | URL
개인이 먼저 바뀌어야 하느냐 사회가 먼저 바뀌어야 하느냐는 오래된 논쟁이 생각나는군요.브라운은 사회가 바뀌어야 한다는 소신인 듯합니다.하지만 사람은 가만 있고 사회가 바뀌나요? 개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면 기존체계는 그대로 유지하게 하는 보수적인 주장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이 있는데...글쎄올시다 입니다.

로쟈 2010-03-07 09:37   좋아요 0 | URL
저는 그 개인도 강대국의 개인이냐, 약소국의 개인이냐가 다르다고 생각합니다. 주장만을 펼친 게 아니라 실질적으로 관용의 담론이 어떻게 사용됐는가를 보여주는 게 책의 강점이라고 생각하고요...

돈케빈 2010-03-07 01:05   좋아요 0 | URL
에이미 추아 <제국의 미래>도 중심키워드가 '관용'이더라구요.

로쟈 2010-03-07 09:37   좋아요 0 | URL
관용은 제국의 필수적인 미덕이기도 하지요...

2010-03-07 05:57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7 09:30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0-03-07 17:40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