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자 조선일보 출판면에는 '출판시장, 좌파의 귀환?'이란 칼럼이 실렸다. '귀환?'이라면, 언제 사라졌다 다시 나타났다는 얘기인지는 모르겠지만, '우파들이여, 경각심을 갖자!'는 취지로 읽혔다. 이런 내용이다.  

현실정치에서는 친노(親盧)나 좌파세력이 권력을 잃었지만 출판계에선 최근 오히려 눈에 띄게 그런 성향의 책들이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반면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비교적 활발했던 우파 학자나 지식인들의 저술활동은 뜸하네요.

이런 현상은 대형서점의 '정치사회' 부문 베스트셀러 목록을 훑어보면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사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좌파진영이 강세를 보였던 분야는 '역사', 특히 한국현대사 쪽이었습니다. 대한민국 역사를 좌파의 시각으로 해석하는 현대사 뒤집어 보기, 거꾸로 보기 등이 유행한 때문입니다. 이런 흐름이 이제는 '정치사회' 쪽으로 이전한 셈입니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성공과 좌절》(1위), 《내 마음속 대통령》(3위), 《노무현 마지막 인터뷰》(11위) 등 노무현 전(前) 대통령 관련서들입니다. 노무현 정부에서 장관을 지낸 유시민씨가 지난봄에 낸 《후불제 민주주의》(5위)도 꾸준히 상위권을 지키고 있습니다.

'88만원 세대'론을 제창하며 좌파의 새로운 논객으로 떠오른 우석훈씨가 88만원 세대가 앞으로 어떤 식으로 운동을 펼쳐야 하는지를 담은 《혁명은 이렇게 조용히》가 4위, 백기완의 자서전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가 7위입니다. 8위와 9위도 우석훈씨의 책들입니다.

심지어 10월 말 출간 예정인 유시민씨의 차기작 《청춘의 독서》는 예약판매만으로 16일 종합순위 7위를 기록했습니다. 이 책은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 마르크스 엥겔스의 《공산당 선언》, 맬서스의 《인구론》, 베블런의 《유한계급론》 등 자신이 젊은 시절 영향을 받은 책들을 소개하는 책입니다.

한국 좌파는 이미 출판시장 장악으로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이한우 출판팀장)  

먼저, "김대중·노무현 정권 때 비교적 활발했던 우파 학자나 지식인들의 저술활동"이 무얼 지칭하는지 궁금하다.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건 우파 역사학자들의 <해방 전후사의 재인식>(책세상, 2006) 정도다. 하지만, 당시에 '우파' 지식인들이 득세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고 마지막 문장은 흥미롭다. '잊지 말아야 할' 주체가 '한국 좌파'가 아니라 '한국 우파'이기 때문이다. '한국 우파'(='우리는')이 암묵적인 주어인바, 이 문장은 본래 "우리는 한국 좌파가 이미 출판시장 장악으로 정권을 잡아본 경험이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라고 썼어야 명료했다. '출판시장 장악 -> 정권획득'으로 이어질지 모르니 현재의 출판동향을 예의 주시하며 경계해야 한다는 뜻이겠다.    

아무려나 기사 덕분에 유시민의 <청춘의 독서>를 검색해봤다. 교보에서만 예약판매를 하고 있는데, 책은 '오래된 지도'로 모두 14권의 책을 다루고 있다. 특이하게도 러시아 문학작품들이 포함돼 있어서 페이퍼 거리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목차만 봐도 대략의 내용은 어림해볼 수 있다). '청춘의 독서' 리스트다(맬서스의 <인구론>은 절판된 상태다). 재일 한국인 강상중 교수의 <청춘을 읽는다>(돌베개, 2009)도 근간 예정이므로 올가을 독서계에는 때아닌 '청춘'이 난무할 듯싶다.   

머리말 - 오래된 지도를 꺼내들다  



1. 위대한 한 사람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도스토예프스키, <죄와 벌>
- 가난은 누구의 책임인가
- 날카로운 첫 키스와 같은 책
- 다수의 평범함이 인류를 구원한다  



2. 권력의 유혹에 무엇으로 맞서야 하는가 : 리영희, <전환시대의 논리>
- 지하대학에서 배우다
- 벌거벗은 임금님을 발견하다
- 지식은 맑은 영혼과 더불어야 한다  



3. 청춘을 뒤흔드는 혁명의 매력 : 마르크스·엥겔스, <공산당 선언>
- 한 장의 정치선언문이 영혼을 뒤흔들다
- 교과서가 되어버린 혁명서의 비애
- 역사는 끝나지 않는다  



4. 불평등은 원래 자연의 법칙인가 : 맬서스, <인구론>
- 냉혹하고 기괴한 천재, 맬서스
- 자선이 세상을 구할 수 있을까
- 자연은 생존권을 인정하지 않는다
- 편견은 천재의 눈도 가린다  



5.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 푸시킨, <대위의 딸>
- 로맨스를 빙자한 정치소설
- 희극으로 그려낸 반란의 풍경
- 얼어붙은 땅에서 꽃이 피어나다
- 위대한 시인의 허무한 죽음  



6. 진정한 보수주의자를 만나다 : 맹자, <맹자>
- 역성혁명론을 만나다
- 백성이 가장 귀하다
- 아름다운 보수주의자, 맹자의 재발견
- 이익이 아닌 가치를 탐하는 태도  



7. 어떤 곳에도 속할 수 없는 개인의 욕망 : 최인훈, <광장>
- 대한민국의 민족사적 정통성
- 혁명 없는 혁명 국가
- 주사파, 1980년대의 이명준
- 심장의 설렘을 포기할 수 없는 자의 선택  



8. 정치는 인간에게 왜 필요한가 : 사마천, <사기>
- 사기의 주인공, 한고조 유방
- 사마천의 울분
- 새 시대는 새로운 사람을 부른다
- 권력자의 인간적 비극
- 정치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하다  



9. 고통도 힘이 될 수 있을까 : 솔제니친,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
- 굶주림과 폭력으로 가득한, 지극히 평범한 하루
- 슬픔과 노여움의 미학
- 이반 데니소비치 탄생의 비밀
- 노동하는 인간은 아름답다  



10. 인간은 이기적인 존재인가 : 다윈, <종의 기원>
- 해설을 먼저 읽어야 할 고전
- 다윈과 월리스, 진화론의 동시발견
- 다윈주의는 진보의 적인가
- 이타적 인간의 가능성  



11. 우리는 왜 부자가 되려 하는가 : 베블런 <유한계급론>
- 부富는 그 자체가 목적이다
- 사적 소유라는 야만적 문화
- 일부러 낭비하는 사람들
- 지구상에서 가장 고독했던 경제학자
- 인간은 누구나 보수적이다  



12. 왜 가난한 사람들은 사라지지 않을까 : 조지, <진보와 빈곤>
- 뉴욕에 재림한 리카도
- 꿈을 일깨우는 성자聖者의 책
- 타인을 일깨우는 영혼의 외침  



13. 다른 사람들이 보는 나는 ‘진짜 나’인가 : 뵐, <카타리나 블룸의 잃어버린 명예>
- 보이는 것과 진실의 거리
- 명예 살인
- 언론의 자유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14. 사회는 진보하는가 : 카, <역사란 무엇인가>
- 랑케를 떠나 카에게로
- 회의의 미로에 빠지다
- 식자우환識字憂患
- 이 격려를 다시 받아들여야 할까

후기 - 위대한 유산의 계보  

09. 10. 17. 

 

P.S. 유시민 전 장관의 '노무현 시민학교 특강' 취재 기사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27261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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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1: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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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1: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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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1: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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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2:1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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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2:53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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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2:5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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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3:1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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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3:2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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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3:2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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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3:3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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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9-10-17 21:2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올해 초만 하더라도 진보파들이 노무현과 그 측근 때리기가 유행이라서 후불제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욕을 먹더니 참...염량세태란...

2009-10-17 22:1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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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2:38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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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7 22:55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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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밤바 2009-10-18 15:1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저도 조선의 저 기사 읽고선 마지막 문장 주어가 없어서 아리송 했는데..
로쟈님 글 보니까 심증이 확증이 되는군요. ㅎ

로쟈 2009-10-18 15:18   좋아요 0 | URL
네, '우석훈 지못미'라고 쓰신 거 저도 봤습니다.^^

2009-10-19 13:57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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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0-19 17:3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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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속에 책 2009-12-03 19:0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청춘의 독서> 지금 막 다 읽고 혹시 로쟈님이 이 책에 대해서 뭔가 코멘트 해놓으신게 없나해서 들어와봤는데 조선일보에서 이런 기사를 다 썼군요. 마지막 문장이 제겐 커다란 웃음을 선사하네요..어이없는 웃음을 말이죠 ^^;;
그러찮아도 여기 나온 책들을 한번 정리해보아야겠다 했는데, 깔끔하게 먼저 정리를 하셨네요. 감사히 참고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