품위 있는 사회와 모욕사회

내일자 '책읽는 경향'은 아비샤이 마갈릿의 <품위 있는 사회>(동녘, 2008)를 다루고 있다. 저자의 이름은 이 책을 여러 번 언급한 지금도 입에 익지 않지만, 저자의 문제의식은 우리 사회에서도 요효하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선정자도 같은 생각이었을 텐데, 필자가 조국 서울대 교수로 돼 있다. 그러고 보니 '품위 있는 사회'에 대한 문제의식이 '보노보 찬가'와 맞아떨어지는 부분도 있을 듯싶다(<보노보 찬가>의 부제가 '정글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인간으로 살아남기'이다).  

경향신문(09. 10. 13) [책읽는 경향] 품위 있는 사회  

이명박 대통령은 ‘국격’을 높이자고 강조하며 그 방안으로 법질서 준수를 들고 있다. 대통령 자신이 과거에 얼마나 법을 잘 지켰는지는 별도의 문제로 놓더라도, 품격있는 국가와 사회의 요체가 무엇인지 되돌아볼 필요를 느낀다. 



예루살렘 히브리대 교수인 아비샤이 마갈릿은 <품위 있는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을 물리적으로 학대하지는 않지만 제도적으로 모욕하는 ‘규제하는 사회’, 제도가 사람들을 모욕하지 않는 ‘품위 있는 사회’를 구분한다. 그는 ‘품위 있는 사회’를 “구성원들이 자기가 모욕당했다고 간주할 만한 근거가 있는 조건에 맞서 싸우는 사회”라고 규정한다.

생존권을 외면하는 재개발을 추진하고, 이에 반대하는 철거민들을 ‘도시 테러리스트’로 규정하고 강경진압하는 현 정부의 행태를 정당한 법치라고 볼 수 있을까. ‘공무집행’의 외관을 띤 정부의 행위야말로 ‘제도적 모욕’의 예이다. 그리고 장례도 미루고 7개월 이상 이러한 모욕에 맞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이야말로 ‘품위 있는 사회’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품위 있는 사회’를 재화와 가치의 분배가 공정하게 이루어지는 ‘정의로운 사회’와도 구별한다. 즉 ‘품위 있는 사회’는 정의로운 분배만이 아니라 그 분배의 절차와 방식이 모욕적이지 않기를 요구한다. 사회적 약자를 ‘동정’으로 돕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받을 ‘권리’가 있다고 인정하며 분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는 최근 ‘친서민정책’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 정책이 기존의 부자 감세와 대기업 규제 완화 등 편향적 재화·가치 분배정책과 조화될 수 있을지, 이 정책이 ‘품위’를 실현하는 방향으로까지 나아갈 것인지 등에 대해서는 회의가 든다.(조국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09. 10. 12.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