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종이 울렸네, 새아침이 밝았네."란 가사로 시작하는 '새마을노래'는 아직도 귀전에 생생하다. 초등학생 때 귀에 못이 박히도록 들었기 때문이리라. 그 새마을운동에 대한 생활사적 연구서가 출간됐다. 김영미의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역사, 2009). 바우만의 '액체근대'에 견주자면, 한국식 '고체근대'에 관한 한 가지 보고서로도 읽을 수 있겠다. 

한겨레(09. 06. 11) “새마을운동은 농촌 몰락의 시작이었다”

“새마을운동을 성공한 농촌 근대화운동으로 미화하든 농민에 대한 억압적 동원체제로 비판하든, 정부 정책에 초점을 둔 국가중심적 접근이란 점에선 마찬가지입니다. 농민이란 존재는 철저히 지워져 있어요.”

<그들의 새마을운동>(푸른역사)은 새마을운동에 대한 역사학계의 첫번째 연구서라는 점 말고도, 민중의 경험세계를 통해 사건에 접근하는 생활사적 접근 방식을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한 책이다. 새마을운동 시기 모범 마을로 선정돼 두 차례나 포상을 받은 경기 이천군의 작은마을 아미리와, 새마을운동의 기수가 돼 <대한뉴스>에까지 보도된 농촌운동가 이재영씨가 책의 주인공이다. 책을 쓴 김영미(42) 국민대 연구교수의 논지는 “새마을운동 이전에 ‘새 마을’과 ‘새 농민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아미리는 1930년대 일제가 펼친 농촌진흥운동에서도 모범 부락이었습니다. 과거부터 근대화를 위한 자발적 노력이 꾸준히 있어 왔던 곳입니다. 이재영씨 역시 1950년대 서울에서 고교를 졸업한 뒤 애향청년회라는 계몽조직을 만들어 활동하던 농촌운동가였습니다. 새마을운동은 박정희정부의 정책보다 훨씬 오랜 역사성을 갖고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이런 자발적 흐름이 박정희 정부 시기 가시적 결실을 맺게 된 데는 정부의 물질적 지원과 평가, 포상이 모두 마을 단위로 이뤄짐으로써 마을공동체의 자치력과 마을간 경쟁심을 최대한 동원할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하게 작용했다. 또 하나의 요인은 당시 마을공동체의 주도권을 둘러싼 신구세력간 권력 갈등이다.

“이농이 본격화되기 전이라 당시 농촌마을에는 중등교육을 받고 군대를 다녀와 근대성을 내면화한 청년 주체들이 세력을 형성하고 연장자 중심의 마을 권력과 경쟁 관계에 있었습니다. 정부는 발전과 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충일된 청년들과 손잡음으로써 운동의 자발적 주도 세력을 확보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청년들은 유신체제를 마을로 이식한 존재들이기도 했다. 연장자 중심의 마을공동체를 움직이기 위해선 국가의 권위와 행정력을 등에 업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과정에서 청년들은 자기 마을을 박정희 정부의 지배체제 안으로 끌어들이는 구실을 했다는 얘기다. 물론 여기엔 3선개헌을 계기로 뚜렷하게 하락한 도시지역 지지율을 만회하기 위해 농촌을 체제 유지의 거점으로 활용하려 했던 박정희 정부의 의지 또한 작용했다. 이런 점에서 새마을운동의 동원 방식은 소외계층의 욕망을 자극해 체제의 자발적 동조자로 포섭한 파시즘의 대중 동원과도 유사하다고 김 교수는 지적한다.

그런데 정작 농촌 마을은 새마을운동을 통해 그토록 원하던 발전과 부를 성취했을까? 김 교수는 말한다. “거주 환경이야 나아졌죠. 문제는 새마을운동을 계기로 농가부채가 급증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정부 시책에 따라 앞다퉈 고수익성 작물 재배에 뛰어들었는데 설비투자 비용은 물론 불투명한 판로와 널뛰는 가격 탓에 피해가 고스란히 농민에게 돌아갔던 것이죠. 80년대가 되면서 청년들은 더 빠른 속도로 고향을 등졌고, 농촌은 희망이 사라진 노인들의 휴식처로 전락합니다. 새마을운동은 역설적이게도 농촌 피폐화의 시작이었습니다.” (이세영 기자) 

09. 06. 11 

 

P.S. 같은 저자의 책으로 <동원과 저항 - 해방 전후 서울의 주민사회사>(푸른역사, 2009)에도 덩달아 눈길을 주게 된다. 저자는 역사 대중화에도 많은 관심을 가져 <한국생활사박물관> 시리즈도 기획했다고 한다. 앞으로의 작업도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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