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관련서 얘기가 나온 김에 지난주에 나온 <차이위안페이 평전>(김영사, 2009)도 기억해 둠직하다. 차이위안페이(채원배)는 베이징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교육자이자 사상가라고 한다(아래 기사에서도 도산 안창호와 비교하고 있다). 하지만 시대사를 다룬 책으로도 읽을 수 있을 듯싶다.    

세계일보(09. 04. 11) 중국 교육 근대화의 아버지

우리나라엔 도산 안창호와 오산학교를 세운 남강 이승훈이 있었다면 중국엔 차이위안페이(蔡元培·1868∼1940)가 있었다. 베이징대학교 초대 총장을 역임한 차이위안페이는 시대를 앞서간 사상가, 뜨거운 애국자, 5·4운동의 아버지 등 호칭도 다양하지만, ‘근대 중국의 초석을 마련한 선구적 교육자’가 가장 적합하다.

‘차이위안페이 평전-시대보다 먼저 현대중국을 준비한 위대한 지식혁명가’는 26세 때 과거에 급제해 한림원 관리로 나섰던 차이위안페이가 1894년 갑오전쟁에서 중국이 일본에 패하자 낙향해 교육자로 변신하는 과정, 독일과 프랑스에서의 유학생활, 귀국 후 두 차례의 교육부 장관과 베이징대 총장으로서의 활동 등 그의 삶 전반을 조명한다.

쑨원의 신해혁명 이후 교육부 장관을 맡은 차이위안페이는 경전강독만 중시하는 구교육을 배척하고, 남녀의 교육평등과 근대적 학제를 과감히 도입하는 등 낡은 교육체계를 하나하나 뜯어고쳤다. 프랑스 유학 중에는 일하며 공부하자는 ‘근공검학운동’을 주도했다. 200여명의 중국 유학생이 참여한 이 운동에는 훗날 중국 공산당의 지도자가 된 마오쩌둥, 저우언라이, 덩샤오핑도 포함돼 있다. 마오쩌둥은 차이위안페이가 총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베이징대학 도서관 사서로 일했으며, 저우언라이와 덩샤오핑은 근공검학회의 후원으로 유럽 유학을 마칠 수 있었다.

안중근 의사에 대한 차이위안페이의 평가도 명문으로 전한다. “아! 역사가 나라를 위해 죽으니 호연지기가 흥기하누나. 당년에 북쪽으로 가서 손가락을 잘라 굳게 맹세하고 큰 뜻에 비장한 노래를 불렀다. 한번 가서 다시 돌아오지 않는 역수의 결의를 다지고 일격에 수치를 씻고 몸은 오히려 죽게 되었다….”(조정진 기자) 

09. 04. 19. 

 

P.S. 덧붙여, 중국철학자 펑유란(풍우란)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손에 들고 있었다는 책, <현대 중국철학사>(이제이북스, 2006)도 참조해볼 만하다. "차이위안페이, 후스, 천두슈를 비롯해 장빙린, 쑨원, 마오쩌뚱, 슝스리에 이르기까지 현대 철학자들을 아우르는 철학사이면서, 서세동점의 시기 ‘동아시아에서의 근대성이란 무엇인가’ 라는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중국현대사"이기도 한 이 책에는 '신문화운동의 창시자이자 교육자이며 철학자-차이위안페이'란 장이 포함돼 있다. 찾아보니, 주저인 <중국철학사>(까치)를 간추린 <간명한 중국철학사>(형설출판사, 2007)도 출간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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