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본성에 대하여 사이언스 클래식 23
에드워드 윌슨 지음, 이한음 옮김 / 사이언스북스 / 2000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몇 년전에 나온 자서전 <자연주의자>(민음사)를 읽으며 '개미학자'이자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에 대해서 조금 자세하게 알게 됐지만, 그와의 만남은 그보다 몇 년을 더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3인의 과학자와 그들의 신>(정신세계사)이란 책에서 다루고 있는 3인의 과학자 중의 한 명이 에드워드 윌슨이었던 것이다. 그 책을 읽은 이후 나는 그에 관한 모든 책들을 검색했고, 복사했고 사들였다...

해서 번역서든 원서이든 내가 갖고 있지 않은 그의 책은 데뷔작인 <곤충의 사회들>과 공저로 나온 또다른 책 한두 권뿐이다. 민음사에서 나온 <사회생물학>을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사서 읽고(물론 서론과 결론만) 오탈자를 지적하는 편지를 출판사에 보내기도 했다. 그래서 '너무 늦었다'는 <인간 본성에 대하여>에 대한 글에 감히(?) '에드워드 윌슨과 나'란 제목을 붙인다.

사실 이 책 동안 비교적 얇은 원서의 복사본을 <프로메테우스의 불>이란 책과 함께 나는 가지고 있다. 물론 읽을 틈을 내진 못했지만, 대략적인 내용의 윤곽은 잡고 있었는데, 짧은 시간에 번역본을 통독하면서 그 윤곽이 크게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한다. 그런 의미에서 보자면, 굳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이기도 하다. 리차드 도킨스의 책들도 열심히 읽은 나로서는 그리고 마빈 해리스의 <문화유물론>까지 읽은 나로서는 이 책의 내용이 한걸음 더 나아간 것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다. 물론 1978년에 나온 책이니까 좀 옛날 책이긴 하다!

상식적으로 보이는 책의 내용이 불만섞인 서평들을 적잖게 거느리고 있는 걸 보면, 아직도 우리 사회엔 '너무 빨리' 책이 나온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적대적인 동료인 스티븐 제이 굴드가 <사회생물학>을 평하며 생물학적 '잠재론'과 '결정론'으로 자신과 윌슨을 구별지었지만, 그가 '유전자는 문화를 가죽끈으로 묶어놓고 있다. 끈은 상당히 길지만, 가치들은 자신들이 인간의 유전자 풀에 미치는 결과에 따라서 불가피하게 속박될 것이다'(233쪽)는 주장에까지 반대하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아마 둘 사이에 의견 차이가 있다면 그 끈의 길이에 대해서일 것이다.

윌슨은 문화의 다양성과 상대성에 대해서 부인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유전적 이익과 무관할 수 없음을 강조하고 있을 따름이다. 적어도 이 정도는 이제 상식으로 대우받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정한 프로메테우스적 과학정신은 인간에게 물리적 환경을 지배할 몇 가지 수단과 지식을 줌으로써 인간을 해방시키는 것을 의미한다'(285쪽)는 결론적인 '희망'에 동의하지는 않더라도 말이다.

게놈 프로젝트의 결과들이 밝혀지고 있고 그에 대한 해석들이 분분하다. 스티븐 제이 굴드는 단백질을 만들어내는 유전자 수가 생각보다(10만-14만개) 적다(3만5천-4만개)고 하여 의기양양해 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유전자의 주도권(결정권이 아니다!)마저 의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문제는 'After Wilson'이어야 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이 책은 우리가 완성해야 할 '진화 서사시'의 결론이 아니라 서장이다. 그 첫걸음마저 긴가민가하기에는 갈길이 너무 멀다. 에드워드 윌슨과 같은 탁월한 길잡이가 있을 때 발길을 좀더 재촉해야 하지 않을까? 너무 늦지 않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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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쟈 2004-06-11 17:50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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