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때보다 좀 일찍 귀가해서 저녁을 때우고 주말 북리뷰들을 잠시 둘러본다. 이 주에 나온 책들 가운데 딱 두 권만 손에 들 수 있다면 나로선 별다른 주저없이 마이클 월저의 <정치철학 에세이>(모티브북, 2009)와 함께 닉 레인의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2009)를 고르고 싶다('월저' '왈저' '왈쩌' 등의 표기는 하나로 좀 정리되면 좋겠다).   

개인적인 독서 취향에 맞기 때문인데, 거기에 덧붙여 일단 둘 다 두껍다. 월저의 책은 600쪽이고, 레인의 책도 530쪽이 넘는다. 이 정도면 넉넉한 시간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일주일은 꼬박 읽어야 할 분량이다. 장바구니에 넣어두긴 했지만 연휴가 긴 탓에 직접 읽어보기까지는 시간이 좀 걸리겠다(하지만 정말로 읽을 시간이 있을까?). 그래서 리뷰라도 챙겨놓는데, <정치철학 에세이>에 관해서는 아직 읽을 만한 리뷰가 올라오지 않았다. <미토콘드리아>만 일단 갈무리해놓는다. 사실 미토콘드리아가 '인간 생명의 비밀'을 쥐고 있다고 하므로 한 살 더 먹게 되는 설날과도 잘 어울리는 책이다. 한편으로 미토콘드리아, 하면 세포내 공생진화설의 주창자인 린 마굴리스 여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그녀의 <공생자 행성>(사이언스북스, 2007)까지 같이 읽어주면 더 좋겠다.

 

한겨레(09. 01. 24) '인간생명의 비밀’ 미토콘드리아가 쥐고 있다

대장균은 환경이 좋으면 20분마다 한 번꼴로 분열한다. 대장균 한 마리의 무게는 약 1조분의 1그램. 대장균 한 마리가 하루 72번 분열하면 그 수는 2의 72제곱, 곧 10의 21.6제곱 마리가 된다. 그 무게는 4000톤. 단 이틀 만에 5.977×10의 21제곱 톤인 지구의 질량을 능가하게 된다. 이런 놀라운 번식력을 지닌 세균은 지구 나이와 거의 같은 세월 동안 극한의 환경에도 적응하면서 번성해왔다.

하지만 생화학적 능력에선 한계가 없을 정도로 진화한 세균들은 40억년이 지나도록 몸집을 불리거나 복잡하게 진화하진 못했다. 약 20억년 전 지구에서 진화의 빅뱅이 시작됐다. 그때 진핵세포 곧 핵을 지닌 세포가 출현했고, 이후 지금까지 지구를 지배해온 건 진핵 다세포 생물들이다. 사람은 물론 조류·균류·풀·나무 등 우리 눈에 띄는 지구상 거의 모든 생명체들의 직계 어버이는 20억년 전 기적과 같이 등장한 진핵세포다. 영국 과학저술가 닉 레인은 <미토콘드리아>(뿌리와이파리 펴냄)에서 이 진핵세포의 진화를 “우연한 사건이며, 지구에서만 단 한 차례 일어났던” 아주 특별한 일이라고 했다. 따라서 설사 우주가 수많은 생명체들로 넘쳐난다 하더라도 그들은 세균과 같은 형태로 존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왜? <미토콘드리아>는 세포학·진화론·고인류학·생화학·생리학·발생학·미생물학·의학 등의 경계를 넘나들며 추리소설 쓰듯 그 이유와 의미를 추적해간다. 미토콘드리아를 통해서 본 지구생물역사 최신판이다.  

세균들은 왜 40억년 동안 본래의 단순구조를 벗어나지 못했을까? 그 엄청난 번식 속도에서 답을 찾을 수 있다. 성장을 멈추고 죽은 듯이 기다리던 세균 개체군에 영양이 공급되고 폭발적인 분열이 시작되면, 유리한 쪽은 분열 속도가 빠른 세균. 가장 빨리 분열한 세균들이 개체군을 지배하고 상대적으로 느린 쪽은 설 자리를 잃는다. 세균의 분열 속도는 디엔에이(DNA, 유전체) 복제 속도가 결정한다. 유전체를 경쟁자들보다 더 빨리 복제하려면 유전체를 더 작게 만들고 몸집도 줄여 에너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동원해야 한다. 복제 속도에 방해가 된다면 당장 필요 없는 유전자들까지 버린다. 극한의 다이어트다.

또 하나는 이른바 ‘기하학의 걸림돌’. 생명체의 동력은 1929년 카를 로만이 발견한 아데노신삼인산(ATP)이다. 에이티피 끝에 붙은 인산기가 떨어져 나갈 때 많은 양의 에너지가 방출된다. 이 에이티피 합성 원동력이 산화환원 반응 중에 일어나는 양성자와 전자 이동(양성자 기울기)인데, 내부에 다른 동력원이 없는 세균은 외막을 통해 에너지를 빨아들여야 한다. 그런데 세균이 만약 크기를 두 배로 늘리면 표피면적은 네 배로 늘어나고 부피는 8배로 늘어난다. 이렇게 되면 단위 부피당 표피면적 비율은 현저히 떨어진다. 에너지 수입 통로인 표피면적이 줄어들면 생존이 위태로워진다.

20억년 전에 일어난 진핵세포 등장이라는 대이변은 이런 한계들을 돌파함으로써 가능했다. 그 핵심은 에너지를 세포 외막이 아니라 세포 안에서 조달하는 것. 세포 내 발전기만 있으면 된다. 미토콘드리아가 바로 그 구실을 했다. 본디 세균이었던 미토콘드리아가 메탄 생성 고세포와 공생하면서 그 내부로 들어가 앉는 순간 진핵세포 시대가 열렸다. 지은이는 미토콘드리아의 조상인 발효세균 알파프로테에박테리아가 옛날옛적 산소가 거의 없는 깊은 바다 속에서 메탄 생성 고세포를 만나 서로에게 이득이 되는 상보관계로 어울려 살다가 결국 고세포 몸속으로 들어감으로써 대이변이 시작된 사연을 온갖 가설들을 동원해가며 설명한다. 세포 내 에너지 생산이 가능해지면서 세균처럼 세포 바깥을 싸고 있던 딱딱한 세포벽이 필요 없게 되고 유연한 세포막은 에너지 생산에서 해방돼 신호전달, 운동, 식세포 작용 등 다른 일들을 할 수 있게 된다. 진핵세포의 출현과 미토콘드리아 등장은 선후를 가릴 수 없을 정도로 동시에 진행됐다.

이에 따라 차원이 다른 기동성을 확보한 진핵세포는 환경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한 유전정보량도 대폭 늘리면서 세균보다 평균 1만~10만배나 몸을 불렸다. 에너지 문제를 해결한 세포들로 구성된 동물들의 체적은 대형화할수록(지탱할 수 있는 골격의 한계 등으로 제약을 받지만) 대사율에서 더욱 유리해져 몸이 커질 때마다 필요 에너지의 양은 상대적으로 적어진다. 예컨대 쥐는 사람보다 체적 대비 7배나 더 많이 먹고 장기들을 가동해야 생존할 수 있다. 지구의 다세포생물들이 왜 ‘복잡성의 비탈’을 올라갔는지, 그 의문에 대한 열쇠를 쥐고 있는 것도 결국 미토콘드리아다. “근래에 나온 그 어떤 학자의 추정보다도 광범위하고 포괄적인 내용을 담았다”는 지은이의 철저한 환원주의적 해석엔 창조주의 설계를 들먹이는 종교적 예정설 같은 건 들어설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에 따르면 왜 암·수컷 두 성으로 성이 분화됐는지, 그 비밀도 미토콘드리아에 있다. 호흡연쇄를 통한 에너지 획득 속도와 효율을 좌우하는 세포 내 핵과 미토콘드리아 유전자들의 돌연변이 속도 차이로 인한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미토콘드리아가 한쪽 부모에게서만 유전자를 물려받아, 유성생식으로 무작위적으로 뒤섞이는 핵 유전자와 한 벌의 짝을 이루게 하는 양성전략이 가장 안전하단다. 이 때문에 미토콘드리아 디엔에이는 모계를 통해서만 유전되는데, 이런 특성 때문에 모든 인류의 어머니 ‘미토콘드리아 이브’가 약 17만년 전 아프리카 대륙에 살았다는 것도 추정해낼 수 있었다.

늙음과 죽음 등 인간 생로병사 비밀도 미토콘드리아가 쥐고 있다. 우리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궁극의 의문까지, 미토콘드리아한테서 그 답을 들을 수 있다고 지은이는 첨단과학을 동원해 설명한다.(한승동 선임기자) 

09. 01. 23. 

 

P.S. 저자의 다른 책으론 <산소>(파스칼북스, 2004)가 먼저 소개됐었지만 이미 절판됐다. 아직 소개되지 않은 책은 <영하 상태의 생물>(2004)인데, 공저이고 600쪽이 넘는 분량이다. 단독 저작으로 근간 예정인 책은 <생명의 등정>(2009). '진화의 열 가지 위대한 발명'이 부제다. 이 역시 흥미를 끄는 책이다...


댓글(0) 먼댓글(1)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1. 죠커의 생각
    from jokka's me2DAY 2009-01-29 15:39 
    미토콘드리아와 삶의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