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의 탄생>(개마고원, 2008)에서 우석훈이 예언한 바에 따르면, 현재 우리에게 도래할 가장 개연성 높은 미래는 중남미식 저성장 비효율 국가이고, 더 이상 통제할 수 없는 괴물로서의 ‘MB파시즘’이다. 그 파시즘이 'MB식'인 것은 30%도 못 되는 지지율을 가지고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무력화시키고자 획책하기 때문이다. 그런 파시즘을 '프렌들리 파시즘' 혹은 '부드러운 파시즘'이라고도 부른다는데, MB식 '프렌들리'가 상당히 다양한 함축을 가지고 있었다는 걸 뒤늦게 깨닫게 된다('비즈니스 프렌들리'만이 아니었던 것이다!). 짐작엔 MB법안의 처리가 예정돼 있는 2-3월이 '프렌들리 파시즘'이 본격화되느냐, 아니면 그에 대한 국민적 저항이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느냐의 분기점이 될 듯싶다. 우리에게 닥치고 있는 일이 무엇인지 자주 짚어볼 필요가 있으며 그런 취지에서 관련기사를 스크랩해놓는다...  

위클리경향(09. 01. 20) 전체주의는 어떻게 부화하는가

미네르바가 잡혔다. 이에 대해 <중앙일보>는 미네르바를 ‘일그러진 인터넷 영웅’ ‘돌팔이 의사’로 지칭하면서 그를 사기꾼으로 몰아붙였다. <조선일보>는 박씨의 실명까지 밝히면서 그의 행적을 ‘허점 많은 논리’ ‘공포심 자극’ ‘기득권에 대한 반감’으로 요약했다. 반면 누리꾼 ‘아슈라’는 “이번 수사의 쟁점은 ‘체포된 미네르바의 진위’가 아니라 헌법에 명시된 국민의 기본권인 ‘표현의 자유’가 침해를 당하는 것”이라며 “더불어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하게 위협받고 있다는 사실”이라고 말했다.

집권세력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공권력이 시민의 입에 재갈을 물리는 어이없는 상황은 한국만의 일이 아니다. 전문가들은 민주주의 최일선을 달리는 미국에서조차 민주주의 위기와 파시즘 대두를 경고하고 있다. 실례로 2006년 6월 미국 환경운동가 스티븐 하워드는 아들을 피아노 레슨에 데려다주는 길에 당시 부통령 딕 체니 일행이 쇼핑몰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했다. 하워드는 체니에게 다가가 ‘당신의 이라크 정책은 비난받을 소지가 있다’는 취지의 말을 했다. 10분 뒤 하워드의 손에 수갑이 채워졌고, 그는 ‘부통령을 공격한 혐의’로 기소됐다.  



미국의 사회운동가 나오미 울프는 2007년 펴낸 <미국의 종말>에서 2001년 이후 미국에서 이와 같은 사례가 빈번히 발생했다고 지적하면서 부시 행정부 시기 미국 사회가, 민주주의가 ‘파시즘으로 이행하는’ 심각한 위기를 겪었다고 진단했다.

부시정부 미국사회도 파시즘 대두 경고
1920년대 이탈리아와 1930년대 독일에서 대두한 파시스트 정권은 기존의 민주적 제도를 합법적으로 활용하면서 권력을 장악했다. 먼저 의회에서 시민의 자유와 권리를 제약하는 법을 제정하고 문화적 압력을 행사하면서 사법기구와 친위 기구를 동원해 시민들에 대한 일상적인 사찰과 공포 심리를 조성했다. 그러면서도 대외적으로는 법치를 강조했다. 히틀러는 합법적 절차를 거쳐 1933년 총통의 지위에 오른 지 일 년 뒤 뉘른베르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명확히 말하건대, 국가사회주의 정부의 기초는 국가사회주의 법률이다”라면서 나치 독일을 가리켜 “질서, 자유, 법의 나라”라고 불렀다.

시민들의 사생활을 훔쳐보려는 것은 파시즘의 전형적인 속성이다. 1927년 이탈리아 파시스트들은 전화를 도청하고 교황까지 비밀 사찰 대상으로 삼았다. 1930년대 독일의 복지 관련 공무원들은 ‘비사회적 시민’의 명단을 작성했다. 2005년 12월 16일자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미 재무부 관리들은 2006년 한 해 동안 CIA의 도움을 받아 영장이나 소환장 없이 수백만 건의 개인 은행거래 내역을 조사했다.

언론에 대한 압박도 파시즘의 주 메뉴다. 1923년 이탈리아 파시스트의 지역 조직들은 어떤 신문이 국내외에서 국가의 신뢰를 해치는 보도를 했거나 여론을 자극하여 질서를 교란했다고 판단될 경우 해당 신문사의 재산을 압류하고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권리를 얻었다. 1933년 나치 독일의 선전상 괴벨스는 불과 6개월 사이에 국영 라디오 방송 직원의 13%를 해고했다.

부시 지지자인 케니스 톰린슨은 미국 공영방송 PBS의 재정을 지원하는 재단 회장으로 임명된 뒤 직원이나 출연자 들의 정치적 성향을 조사하는 작업을 벌였다. 2006년 7월 PBS 어린이 프로그램 <굿나이트 쇼> 진행자 멜라니 마르티네즈는 부시의 음주운전 경력을 풍자한 금주 교육 프로그램에 출연한 것이 빌미가 돼 해고됐다.

위의 사례들은 서유럽의 고전적 파시즘 체제와 울프가 ‘파시즘 이행기’였다고 규정한 부시 행정부 시기 미국에서 일어났던 일들의 일부에 불과하다. ‘민주주의의 위기’가 공공연하게 사람들의 입에 오르는 2009년 한국 사회는 이와 어떤 차이가 있을까.

<미국의 종말>을 번역한 성공회대 김민웅 교수는 “민주주의와 파시즘 간의 싸움이 벌어지고 있다”고 단정했다. 그는 파시즘을 “자본주의 체제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집권 세력과 대자본이 동맹을 맺는 체제”로 규정하고 “영구적인 권력을 획득하려는 정치 권력과 영구적인 경제적 이익을 취하려는 자본의 입장에서 민주주의는 최대의 장애물”이라고 말했다. 신문방송 겸영과 재벌의 방송 참여를 허용하는 방송법과 인터넷 여론을 통제하려는 사이버모욕죄 도입 시도는 이를 위해 민주주의를 무력화하려는 수단이라고 봤다. 김 교수는 “지금 정부가 속도전을 강조하면서 지하벙커를 만드는 행태를 보면 지금 같은 절박한 위기 상황에서 토론과 합의 같은 민주적 절차는 한가한 놀음이라는 인상을 주려는 것이 아닌가”라고 비판했다. 



서구학자들 ‘프렌들리 파시즘’ 표현
중앙대 신진욱 교수는 “엄밀히 말해 파시즘 체제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어떤 체제를 파시즘이라고 규정하려면 정권에 대한 광범위한 대중적 지지가 있어야 하는데, 권위주의적 권력 행사 이외에 파시즘이라고 단정할 만한 요소를 찾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신 교수는 “군사독재 시기에도 자유민주주의 이념 자체를 부정하지는 못했다”면서 “한나라당이 강경파의 압력 속에서도 어떤 식으로든 야당과 합의를 도출한 걸 보면 집권세력이 더 이상 한계를 넘어서기는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그럼에도 파시즘의 징후들이 나타나고 있는 것은 사실”이라고 말했다.

그는 촛불집회 이후 의회를 건너뛰고 관료와 검경 등 선출에 의한 대표성을 띠지 않는 기구들이 전면에 나서 강제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점과 ‘조계사 횟칼 테러’에서처럼 우익세력의 대중동원 양상이 나타났다는 점을 그 징후로 꼽았다. 신 교수는 “역사적으로 대비한다면 현 정부는 대처 시절의 영국, 레이건이나 부시 시절의 미국에 가깝다”고 진단했다.  



대처의 영국이나 부시의 미국은 파시즘과 무관한 것일까. 서강대 손호철 교수는 “대처와 레이건 정부가 등장했을 때 서구 학자들은 ‘프렌들리 파시즘’ ‘부드러운 파시즘’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말했다. ‘부드러운 파시즘’이란 전통적인 파시즘처럼 공개적 의미의 독재라고 볼 수는 없지만 일을 진행하는 방식이나 멘탈리티가 정상적인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먼 측면을 지칭하는 개념이다.

파시즘이라는 개념은 대단히 복합적이기 때문에 어떤 체제를 쉽게 파시즘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파시즘 연구의 대가 로버트 O. 팩스턴은 “모든 사람을 남김없이 만족시킬 수 있는 파시즘 해석은 지금까지 하나도 없었다”고 썼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조금씩 이전과 다른 억압적 분위기로 흘러가고 있는 것만은 분명하다.  

연세대학교 나임윤경 교수는 “파시즘의 특성은 전체주의라기보다 구성원 사이에 차이를 조장하면서 상호 불신과 반감을 조장하는 이데올로기라고 본다”고 말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노동·경제 정책은 사회 구성원들이 사회를 비판하기보다 경쟁 구도 안으로 자발적으로 흘러들게 유도하고 있는 것 같다”면서 “정작 자신의 정체는 드러내지 않으면서 사람들을 이런 방식으로 움직이게 하는 것이 파시즘의 정체가 아닐까”라고 우려했다.(정원식 기자) 

09. 01.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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콩세알 2009-01-18 23:06   좋아요 0 | URL
미국뿐 아니라 보수당 당수가 '우리에겐 풍자의 전통이 있어 히틀러같은 사람은 나타날 수 없다'고 장담하던 영국에서조차 몇년전부터 국가에 의한 파시즘을 경고하는 드라마와 영화가 넘쳐나고 있어요. 가끔 몸서리칠 정도로 공포를 느끼는데 인터넷에서 만나는 일련을 사람들을 제외하고 주변의 친구들은 전혀 관심도 없는 것 같고 그런 것이 이 정부가 이렇게 막무가내로 나가는 것을 부추기는 것 같아 화가 나요.

로쟈 2009-01-19 23:07   좋아요 0 | URL
오늘 부분 개각이 있었는데, '나대로' 독주 의사가 확고해보입니다. 누군가 '선지자 리더십'이라고 불렀지요.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지 않는 것, 주변의 반대는 오히려 극복해야 할 고난으로 간주하는 것. 어디가 끝장인지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