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에 챙겨둘 만한 교양과학서는 로버트 새폴스키의 <스트레스>(사이언스북스, 2008)이다(알라딘에는 뇌과학서로 분류돼 있다). 원제는 '왜 얼룩말은 위궤양에 걸리지 않을까’(Why zebras don’t get ulcers). 부제가 '당신을 병들게 하는 스트레스의 모든 것'이고, '모든 것'에 합당하게 760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이것도 필독해야 한다면 스트레스 받겠다!). 그냥 주섬주섬 읽는 게 좋을 만한 책인데, 요점 중의 하나는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받으면 성장에 지장이 있다는 것이므로 스트레스를 많이 주는 부모들이 좀 읽어보면 좋을 책이다. 스트레스 덜 받는 아이들을 위해서...

한겨레(08. 12. 06) 스트레스는 아이들 성장도 멈추게 한다

사랑하는 13살 아들이 사고로 죽었다. 여인은 몇년 동안 앓아 누울 정도로 절망과 비탄에 빠졌다. 또 다른 6살 난 아들한테는 무관심했다. 둘째아들이 어느 날 방으로 들어오자 그는 죽은 큰 아들로 착각해 말한다. “데이비드, 너로구나. 그런데 네가 어떻게? 오, 너밖에 없어.” 그런 일은 반복됐다. 그의 유일한 위안은 큰 아들이 자라서 타락하지도 않고, 순수한 소년의 상태로 죽었다는 거였다. 살아남은 아들은 어머니를 기쁘게 하기 위해 성장을 멈췄다. 어른이 돼서도 150cm밖에 자라지 않았고 결혼도 하지 않았다. 이 소년이 수많은 어린이들의 사랑을 받는 <피터팬>의 작가 J. M. 배리였다. 스트레스성 왜소 발육증의 예로 회자되는 이야기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덜 큰다는 내용이다.

스트레스는 만사 공공의 적. 아이의 발육은 물론 성인의 성욕도 감퇴시킨다. 여성은 배란불순·유산을, 남성은 발기부전을 부른다. 또한 면역력이 억제돼 각종 질병에 노출된다. 전장에서 중상을 입은 것도 모른 채 돌진하는 병사처럼 고통을 느끼는 능력도 둔화된다. 감각은 변화한다. 공포영화를 볼 때 문이 삐걱거리는 소리에 소스라치게 놀라는 게 그런 경우다.

스트레스 전문가인 지은이 로버트 새폴스키 박사는 스트레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 아프리카 사바나를 예로 든다. 햇볕이 따스한 오후, 간식으로 뭘 먹을까 생각하며 초원을 거닌다. 숲 속 과일나무가 문득 떠오른다. 숲 언저리에 발을 디딘 순간 나무 밑에서 낮잠 자는 사자와 부닥친다. 비상상황. 걸음아 나 살려라. 도망치기 위해 심장박동이 증가하면서 다리 근육에 산소와 에너지가 마구 공급된다. 당장 생존에 필요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신체의 모든 기능이 연기된다. 스트레스는 우리 목숨을 지켜주는 ‘좋은 친구’였다. 문제는 ‘초원을 달리던 시대’에서 ‘장기간에 걸쳐 집값을 값아야 하는 시대’가 되면서 정신적 스트레스가 장기화·만성화되어 병을 부르는 ‘나쁜 적’이 되었다는 것.

유의점은 스트레스 강도는 통제 또는 예측 여부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이다. 자동차보다 비행기 타기를 무서워하는 사람이 많다거나, 지독한 치과치료에서 “두 번만 하면 끝나요”라는 귀띔을 받은 사람과 그렇지 않는 사람사이에 통증을 느끼는 정도가 달라진다거나 하는 게 그 예증이다. 또 스트레스를 해소하거나 함께 나눌 수 있느냐의 여부도 주요 변인이다. 직장의 사슬을 떠올리면 이해된다. 윗사람 비위를 맞추면서 생기는 욕구불만을 부하직원한테 터뜨리고 언제 그랬냐는 듯 사람 좋은 웃음을 웃는 자는 ‘능력 있는 직장인’. 괴롭힘을 받아 위궤양으로 고생하면서 동료의 어깨에 기대어 울거나 잡아주는 손과 위로의 말 한마디에서 위안을 받는 자는 ‘무능력 진상’으로 찍히는 따위.

해결책은 스트레스의 속성에 이미 내재돼 있다. 요체는 스스로 진심으로 원해서 상황을 바꾸는 것이다. 지은이가 제시하는 관리법은 아주 평범하다. “소비자의 20%가 소비자 80%의 불평을 제기한다”는 원칙 적용하기. 첫 단추 20%가 스트레스의 80%를 경감시킨다는 것이다. 그것은 길거리에 서서 텔레토비의 대사 읊조리기가 될 수도 있다.

그런데 스트레스는 신체의 어떤 메카니즘에 의해 발현될까. 스트레스원이 생기거나 그런 일을 생각하면 뇌의 아래부분인 시상하부가 반응한다. 부신피질자극호르몬방출호르몬(CRH)은 부신피질자극호르몬(ACTH)을 방출하게 하고 그것은 핏줄을 통해 부신에 이르러 스트레스로 인한 체내변화를 일으키는 당질 코르티코이드를 방출하게 한다. 하지만 그것까지 알 필요는 없다. 스트레스 받는다. 그러나 지은이는 그것까지 시시콜콜 속속들이 말한다. 그래서 책이 무척 두껍다.(임종업 선임기자)

08. 12. 06.

P.S. 흠, 찾아보니 <우리개 스트레스 없이 키우기>(보누스, 2008)란 책도 있다. 적당한 스트레스는 물론 '좋은 친구'로서 우리에게 필요하다지만 아이들을 요즘처럼 '스트레스 만땅'으로 키우는 건 반성해볼 일이다. 개만도 못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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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2-06 16:06   좋아요 0 | URL
강아지나 고양이 좋아하세요? 좋아한다면 무슨 종류인가요?

로쟈 2008-12-06 19:22   좋아요 0 | URL
전혀 좋아하지 않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12-06 22:28   좋아요 0 | URL
어....대한민국 1%에 속하시네요. 대체로 좋아하던데...귀여워요.한 번 이뻐해 보세요.몽글몽글 토실토실...혹시 털 알레르기가 있나요?

로쟈 2008-12-07 08:28   좋아요 0 | URL
아파트에 사는 동안은 어렵지 않을까요? 도시에 사는 개나 고양이를 보는 것도 별로 흡족한 일은 아니고요.--;

노이에자이트 2008-12-07 17:02   좋아요 0 | URL
아파트에 살면 햄스터나 고슴도치가 좋지요.개나 고양이는 좀 실례를 하는 통에...

로쟈 2008-12-07 17:09   좋아요 0 | URL
책도 제대로 간수를 못하는 형편인지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