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역사 분야의 책으로 눈길을 끄는 건 김덕진 교수의 <대기근, 조선을 뒤덮다>(푸른역사, 2008)이다. '우리가 몰랐던 17세기의 또 다른 역사'가 그 부제. 18세기 조선사 출판붐이 19세기로 내려오고, 17세기로 올라가는 식으로 번져가는 듯한 양상이다. <대기근>은 1670년 경신 대기근을 소재로 하고 있는데, 과거 배운/읽은 한국사 책에 그런 내용이 있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러니 '우리가 몰랐던' 역사이며 새롭게 흥미를 가질 만한 주제다. 중고생들이 읽는다면 역사를 보는 시야를 조금 일찍부터 넓힐 수 있겠다.

경향신문(08. 12. 06) 17세기 ‘기후재앙’ 조선 정치판 뒤흔들다

1670년 새해 첫날. 서울 하늘에 속은 붉고 겉은 푸른 햇무리가 관측됐다. 사흘 뒤엔 달무리가, 이후 한 달간은 햇무리와 달무리가 관측됐고 저녁에 보이던 금성이 대낮에 보였다. 현종은 큰일이 닥칠 것이라 했고 신하들은 위망(危亡)과 쇠란(衰亂)의 징조라고 했다. 1월10일에는 붉은색 유성이 나타났다. 2월에는 꼬리가 18m나 되는 적색 유성이 굉음을 내며 빛을 발산했다. 유성우가 관측됐으며 평안도 중화에는 운석이 떨어졌다. 잦은 유성우로 태양은 빛을 잃었고 낮에도 하늘은 어두침침했다.

봄이 되었지만 우박과 눈비가 섞여 오고, 서리가 내렸다. 천둥·번개가 쳐서 벼락맞아 죽은 이들과 가축이 속출했고 고목과 건물이 부서지고 불탔다. 윤달 2월부터 가뭄이 본격화됐고 4월에는 냉해가, 5~7월에는 우박이 쉬지 않고 내렸다. 늦여름에는 물난리가 나고 가을에는 폭설이 쏟아졌다. 봄가뭄과 여름냉해, 수해에 풍해, 충해까지 겹쳐 작물피해가 속출했다. 게다가 1670년 내내 전국 곳곳에서 끊임없이 지진이 발생했다.

조선사에서 1670년(경술년)과 1671년(신해년)은 유래없는 대재앙의 시기였다. 경신대기근(庚辛大饑饉)이라 했다. 유독 이 두 해 동안에는 이상 기상현상이 속출했고 이로 인해 식량수급이 원활치 못했다. 전염병이 창궐하고 많은 사람들이 고향을 떠났다. 100만명에 달하는 사상자가 발생했고 국가재정이 파탄났다. 치안부재로 도둑질과 살상이 빈번했다. 자연변란의 조짐이 보였고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예언사상도 등장했다.

순식간에 나라를 마비시킨 경신대기근은 이른바 소빙하기에 일어났다. 소빙하기는 빙하기와 간빙하기가 주기적으로 되풀이되는 지구의 역사에서 대략 서기 1300년에서 1850년을 이른다. 17세기를 전후한 이상 기상현상은 조선뿐 아니라 청나라와 일본에도 마찬가지였으며 유럽에서도 재해로 인한 기근이 발생했다. <기후, 문명의 지도를 바꾸다> <기후는 역사를 어떻게 만들었는가> 등을 쓴 고고학자 브라이언 페이건을 비롯해 서구의 고고학자와 기후사학자들은 일찌감치 소빙하기가 인류에 끼친 영향을 주목했다.

이 책은 조선의 소빙하기를 본격적으로 주목한 책이다. 사학계가 <조선왕조실록> <증보문헌비고> 등을 통해 소빙기의 실체를 밝히는 기초연구가 없었다면 나오지 못했을 터이지만, 저자는 진휼사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대기근에 대한 연구를 한 차원 높여 전개한다.

전란과 북벌론, 반정, 예송, 환국, 대동법, 진휼청, 반란 등 17세기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이 대기근과 연관돼 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유례없는 기후변화는 정치판도를 바꿔놓았고 사회의 구조와 산업의 양상도 바꿔놓았다. 서인과의 권력싸움에서 밀려났던 남인들은 토지세 감면, 군사비 감축, 군포면제, 부채탕감 등 갖은 민생정책을 내놓으며 임금의 마음을 붙들었고 정권을 잡았다. 역병과 허기를 면하기 위해 백성들이 이동하면서 지역별 인구밀도가 달라지고 사회기반시설이 비교적 잘 갖춰진 서울은 대도시로 성장했다. 백성구제를 위한 납속과 공명첩의 발행이 성행하면서, 재력이 있으면 더 높은 신분을 살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

예송논쟁으로 대표되던 암흑의 17세기는 실은 ‘변화와 역동의 시기’였다. 다음 세기 ‘영·정조 르네상스’로 불릴 정도로 화려한 문화를 꽃피울 수 있었던 것은 바로 17세기 대기근으로 빚어진 모순을 수습하면서 사회안전망이 새로이 갖춰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다. 17세기의 생활상을 한눈에 그려볼 수 있을 만큼 풍부한 사료를 곁들여 차분하게 써내려간 문체가 연방 고개를 주억거리게 한다.(윤민용기자)

08. 12. 06.

P.S. 17세기 관련서로는 최근 김성환 교수의 <17세기 자연철학>(그린비, 2008)도 출간됐다. 이 분야의 전공자가 드물 듯싶은데, 예기치않게 나온 묵직한 책이다. 저자는 서문에서 이렇게 적었다. "17세기 자연 철학은 자연 변증법 때문에 관심이 싹텄다. 1980년대 한국 사회와 학계에 마르크스가 나타났다. 피가 끓어 흥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젊은 철학 연구자는 마르크스의 사회 철학에 몰렸다. 나는 다른 길을 찾았다. 자연 변증법이 보였다. 그러나 너무 낡았다. 제대로 뜯어 고치려면 과학을 알아야 했다. 과학의 역사부터 공부했다. 새 자연 변증법을 만드는 게 목표였고 17세기 자연 철학의 기계론은 타깃이었다. 적을 아는 데 20년 걸렸다. 아직 크게 부족하다. 그러나 적을 존경한다. 이 마음을 책에 담는다.” 국문학자 조동일 교수보다도 짧은 문장을 구사하는 경우를 나는 처음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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