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언론의 북리뷰에서 초점이 된 책은 '킬링필드'의 악몽을 다룬 필립 쇼트의 <폴 포트 평전>(실천문학사, 2008)이다. 877쪽이니까 두께로도 눈길을 끄는 책이다(2005년에 나온 원저 자체가 560쪽에 이른다). 함부로 손에 들지는 못하겠지만 리뷰 정도는 챙겨놓도록 한다.

경향신문(08. 11. 08) 왜 캄보디아 사회는 ‘킬링필드’를 내버려뒀나

킬링 필드(Killing Field)’는 현대사에서 ‘악몽’의 다른 이름이다. 크메르루주가 정권을 장악한 1975년 4월부터 79년 1월까지 캄보디아 인구 700만명 가운데 150만명이 희생됐다. 상당수가 숙청당했고 나머지는 질병·강제노동·기아로 인해 사망했다. 지도자들의 정치적 야욕으로 단 한 번에 이토록 높은 사망률이 발생한 사례는 역사상 처음이다.

1988년 중국 남부 징강산에 있는 마오쩌둥의 옛 게릴라 기지를 방문한 폴 포트.

폴 포트(1925~98년)는 이 끔찍한 ‘악몽’의 최고기획자였다. 그의 기획은 극단적으로 과격했고 또 냉혹했다. 정권을 잡은 3년8개월 동안 250만명의 프놈펜 시민들이 지방으로 쫓겨났고 집산주의 정책으로 전 국민은 자유와 개성을 박탈당했다. 화폐·법정·신문·우편·해외 원거리통신은 폐지됐다. 집단 개념이 강조돼 ‘나’ 대신 ‘우리’라는 말을 써야 했고, 자기 부모를 ‘숙부’ ‘숙모’로, 다른 사람을 ‘아버지’ ‘어머니’로 불러야 했다. 

포트와 크메르루주의 혁명이 극단으로 치달은 이유는 무엇일까. 도대체 왜 ‘정의롭고 부유한 사회’를 향한 꿈이 ‘인류 최악의 참사’로 변했을까. <폴 포트 평전>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영국의 타임스와 BBC 등의 해외통신원으로 활동했던 저자는 크메르루주 핵심인물들과의 인터뷰와 프놈펜·베이징·하노이·모스크바·파리의 각 정부 및 당 문서자료를 바탕으로 영문 부제(‘Anatomy of a Nightmare’) 그대로 20세기의 ‘악몽’을 냉철하게 ‘해부’해 나간다.



책은 훗날 폴 포트로 불려지게 되는 살로트 소르의 일대기를 따라가는 형식을 취하지만 단순한 인물 전기를 넘어선다. 캄보디아의 비극이 어떻게 배태되고 진행됐는지를 캄보디아의 역사와 지정학적 위치, 종교와 문화, 정치·사회제도 등 다각도로 분석했다. 나아가 자국의 이익에만 몰두했던 베트남 등 주변국과 미·중·소 등 강대국과의 관계를 살피면서 캄보디아 현대사를 꼼꼼하게 되살려냈다. 문제적 인물을 통해 시대의 모순을 짚어내는 평전의 본보기라 할 만하다. 

저자는 비극이 잉태된 원인을 캄보디아의 독특한 문화와 사회 조건에서 찾는다. 소승불교의 규범이라는 ‘프리즘’을 통해 마르크스주의를 받아들였던 캄보디아 공산주의자들은 스스로를 “악인을 물리칠 선인의 화신”으로 여겼다. 사랑과 슬픔 등 모든 감정은 떨쳐버려야 할 개인주의의 소산으로 보고 일부 지역에서 웃거나 노래하는 것조차 금지한 것은 마치 소승불교에서 열반에 이르려면 속세의 번뇌에서 완전히 벗어나야 한다고 한 것과 비슷했다. 폴 포트가 육체노동을 강조한 것도 육체노동이 프롤레타리아 의식을 연마하는 수단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비극의 씨앗은 크메르루주가 농민을 기반으로 하고 있었던 데서도 찾을 수 있다. 저자는 “전 세계 역사를 살펴보면 농민혁명에는 도시에 대한 분노라는 특징이 들어 있다”고 지적한다. 프놈펜에 입성한 크메르루주에게 프놈펜의 ‘타락상’은 혐오와 분노의 대상이었다. 이들은 도시민이 땅으로 돌아가 스스로를 개조해야 도시생활에서 묻은 오물을 씻어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심지어 폴 포트는 “낡은 사상이나 이를 고수하려는 사람들이 ‘혁명의 불길’ 속에 사라지고 나면 캄보디아가 더 강해지고 깨끗해져서 공산체제의 본보기로 다시 태어날 것”이라고 봤다. 그러나 당시 폴 포트와 그의 동료들이 만든 것은 국민을 ‘벽 없는 감옥’에 가두는 ‘현대 최초의 노예제국가’였다.

크메르루주 여성대대가 행군하는 모습(1974년쯤).

저자는 “폴 포트 정권의 잔혹성은 캄보디아 역사에 책임이 있다”고 밝힌다. 봉건적 전통질서가 여전한 상황에서 이들은 과격한 방법이 아니면 캄보디아가 변할 수 없다고 여겼다. 더욱이 캄보디아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운 상황이었기 때문에 이들의 결심은 한층 더 강했다. “힘없는 동물도 구석에 몰리면 본능적으로 쫓아오는 포식자에게 덤벼들듯이 폴 포트는 사투(死鬪)가 방책이라고 여겼다”는 설명이다. 

부관의 자녀들과 함께한 폴 포트.

그런데 ‘킬링 필드’의 책임이 모두 폴 포트와 그의 동료들에게만 있을까. 책은 자국의 이익만을 위해 전쟁을 야기하거나 지원한 외국 국가들에도 책임을 묻는다. 저자는 “‘베트남전쟁이 없었다면 크메르루주도 없었다’는 단순한 등식에도 부인할 수 없는 진실이 담겨 있다”고 말한다. 미국은 60~70년대 폴 포트에게 집권 동기를 마련해주었고 80년대 반(反)베트남 세력을 지원함으로써 폴 포트에게 계속 힘을 실어줬다. 중국은 베트남과 소련의 세력 강화를 막기 위해 크메르루주를 적극 지원했고 베트남의 공산세력도 자신들의 전쟁 승리를 위해 캄보디아 공산세력과 협력 및 결별을 반복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캄보디아의 슬픈 역사에는 프랑스 보호령이라는 제국주의 역사와 동서냉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개입되어 있다. 저자는 나아가 현 캄보디아 정부의 부도덕성과 부패를 묵인하는 국제사회에도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책은 그러나 가장 큰 책임이 캄보디아인에게 있음을 냉정하게 따진다. ‘악몽’을 기획한 폴 포트와 그의 동료들뿐만 아니라 이들이 약속한 미래상에 투자한 캄보디아 지식인층과 자신의 권력에만 몰두한 시아누크 국왕, 국내의 정적을 제거하려고 자국 국민들의 고통은 무시한 채 적국과 동맹관계를 맺었던 지도자들 역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신랄한 비판은 책의 첫머리에 던져졌던 질문을 떠올리게 한다. “도대체 왜 캄보디아 사회는 모두가 잘 알고 있는 자비심과 동정심, 선의와 품위를 저버린 채 끔찍한 만행이 자행되는 것을 내버려두었고 또 여전히 내버려두고 있냐”는. 그리고 이 질문은 또다른 곳을 향한다. 나치 독일에서부터 르완다, 보스니아, 팔레스타인 그리고 이슬람 근본주의로 무장한 테러조직에 이르기까지 21세기에도 여전히 이어지고 있는 또다른 ‘악몽들’에.(김진우기자)

08. 11. 08.

P.S. 한겨레의 리뷰는 '악몽으로 끝난 유토피아의 꿈'(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20596.html) 참조. 크메르루즈 통치에 대한 지젝의 분석은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 152-156쪽에서 읽어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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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1-09 04: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11-09 11:26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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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11-09 15:36   좋아요 0 | URL
캄보디아는 베트남의 식민통치를 언제나 벗어날 수 있을까요.힘도 없고 국제사회도 아무 관심이 없고...캄보디아가 베트남을 침략한 뒤 이것은 캄보디아를 침략한 것이 아니고 폴 포트의 압제에서 구해주려고 했다고 명분을 내세운 뒤 베트남 주민들을 캄보디아로 대량이주시켜 캄보디아에서 좋은 땅을 다 뺏고 상권까지 다 장악했어요.베트남의 캄보디아 침략 실상을 알고 난 뒤 역사허무주의자가 되지 않으려고 무진 애를 썼죠.하지만 공산국가에 대한 환상은 전혀 남지 않았습니다.애초에도 그다지 환상이 있던 것도 아니었지만.

로쟈 2008-11-09 20:51   좋아요 0 | URL
니체가 역사의 유해성이라고 한 게 떠오르네요. 굳이 공산주의사가 아니더라도 문명사 전체가 야만의 역사 아니던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