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침 오늘 아침 전철에서 읽은 책의 리뷰가 눈에 띄기에 옮겨놓는다. 도정일 교수의 '드문' 신간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생각의나무, 2008)이 그 책이다. 1995년부터 2007년까지 여러 잡지에 발표했던 글 6편을 묶은 것인데, 그나마 책으로 묶인 건 출판사측의 노고 덕분이다. "나는 내가 썼던 글들을 내 손으로 모으고 묶어서 출판을 시도한 적이 없다. 이 책도 내가 내자고 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라는 게 저자의 변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비유대로 이만한 '냉동고래'도 드물다. 여하튼 그래서 귀하고 드문 책이 나온 셈이니 아껴 읽을 만하다... 

한겨레(08. 09. 20) 시장의 독재에서자유를 선언하라

문학평론가 도정일(67) 경희대 명예교수가 새 저서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을 내놓았다. 지은이는 여러 매체에 왕성한 필력으로 글을 써왔지만, 그 글들을 묶어 책으로 펴내는 데는 극도로 인색한 모습을 보였다. 대담집이나 공저서는 여러 권 있었지만, 단독 저작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이번에 나온 책은 문학비평집 <시인은 숲으로 가지 못한다>(1994년) 이후 무려 14년 만에 펴낸 두 번째 단독 저작이다. 생각의나무 출판사가 기획한 ‘문(問)라이브러리’ 시리즈의 하나로 나온 이 저서에는 1990년대 후반에 쓴 에세이 다섯 편이 묶였다. 지은이는 머리말에서 “다시 읽어보니, 이건 꼭 내가 21세기에 부친 영혼의 안부편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라고 썼는데, 그 고백 그대로 이 책은 10년 세월의 풍화작용을 이겨내고 생기를 발한다. 아니, 세월이 지나 오히려 더 생생한 문제의식으로 빛나는 글이 됐다고 해야 맞을 듯하다.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어휘를 하나만 고르라면, 이 책의 제목으로 채택된 ‘시장전체주의’라는 말일 것이다. 지은이는 문화·교육·대학·문학, 그리고 다른 어떤 것보다 인문의 풍경을 통해 우리 시대를 관찰하고 거기서 시장전체주의의 암울한 징후를 적발해 분석한다. 인문학자의 시선이 미리 포착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살풍경이 이 책에서 묘사되고 있는 셈이다. 그가 말하는 시장전체주의란 “시장 논리의 지배가 확립된 사회”다. 시장이 유일 가치가 된 시장 유일체제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시장에서 팔리는 것만이 가치 있고 의미 있고 효용 있는 것으로 인정받는 사회가 그 사회다. 시장은, 바꿔 말하면, 돈이다. 돈이 모든 것의 주인, 모든 것의 척도, 한마디로 줄여 절대이념이 된 사회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그 사회가 ‘전체주의’인 이유를 지은이는 세 가지로 나누어 설명한다. 먼저 이 사회가 시장 논리, 시장 원리, 시장 가치를 향해 사회 전체를 훈육하고 재조직하며 채찍질하는 ‘동원 체제’이기 때문이다. “정치전체주의의 사회 동원 방법이 강제적·강압적인 것이라면, 시장전체주의의 사회 동원은 자율성과 자발성의 외피를 입고 있다.” 사회 구성원이 스스로 결정하고 선택한 것 같은 겉모습을 띠고 있지만, 그 체제만이 생존의 유일한 길임을 설득하고 납득시킴으로써 모든 구성원을 체제에 복속시킨다.

둘째로, 시장전체주의는 주민들을 겁주고 통제하고 관리하는 ‘감시 체제’다. 시장에 적응하고 순응한 자만이 이 무한경쟁 시대에 살아남을 수 있다고 강조하는 이 체제는 그런 이데올로기의 반복을 통해 구성원의 의식을 장악한다. 그리하여 “시장 원리를 수락하는 것은 시민의 ‘의무’가 되고 거기 적응하는 것은 시민의 ‘미덕’이, 그리고 그 적응력은 시민의 ‘능력’이 된다.” 여기서 ‘자기 감시’가 발동하게 된다. ‘시장의 신’이 내리는 명령을 ‘자기 자신의 명령’으로 받아들임으로써 “그 명령에 따른 의무·미덕·능력을 갖고 있는지 어떤지를 자기 스스로 점검하고 감시한다.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감시자·통제자·검열자가 된다.” 시장전체주의는 이렇게 작동하는 ‘자발적 감시 체제’다.

지은이가 시장전체주의의 세 번째 특징으로 꼽는 것이 ‘사회적 이성의 마비’다. 시장의 효율·효용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되는 모든 이성적·비판적 담론들을 ‘헛소리’로 밀어내 버리고, 도구적·기능적 이성 이외에는 어떤 것도 ‘이성적’이거나 ‘합리적’인 것으로 보지 않는 사회가 시장전체주의 사회다. “과거 정치전체주의가 사회적 이성의 학살을 중요한 정치적 목표로 삼았던 것과 유사하게 시장전체주의에서도 공적 이성은 학살 대상이 되고 그 사용 능력은 마비된다.” 지은이는 우리 시대가 그 ‘광기’의 사회를 향해 반성 없이 맹목적으로 내달리고 있다고 말한다.

지은이가 이 지점에서 강조하는 것이 인문정신과 인문가치이고, 그 정신과 가치의 담지자인 인문학이다. 인문학은 그 본질적 속성상 인간의 인간다움 실현을 주제이자 목표로 삼는다. 인문학은 시장의 효율·경쟁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러므로 시장의 신은 인문학을 무가치한 것으로 보기 십상이다. 시장의 제국에는 인문학을 위한 자리가 없다. 여기서 지은이는 인문학이 시장과 돈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외면하는 것이 아님을 환기시킨다. “인문학은 돈을 경멸하는 것이 아니라 돈밖에 모르는 사회를 경멸한다. 인문학은 시장을 과소평가하거나 시장 논리를 전면 거부하지 않는다. 인문학이 문제 삼는 것은 시장이 아니라 ‘시장전체주의’이고 시장 논리가 아니라 ‘시장 논리의 유일 논리화’이다. 인문학은 돈 버는 사회를 우려하는 것이 아니라 돈에 미친 사회를 우려한다.”

교육이 사람다운 사람을 키우는 것을 목표로 하지 않고 ‘돈 버는 인간’의 생산을 목표로 할 때, 대학이 학문을 닦는 곳이 아니라 오직 ‘지식 인력’만을 공급하는 훈련소가 될 때, 문학이 시대의 비인간성과 맞서지 않고 시장 논리에 함몰돼 한낱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할 때, 문화가 인간성의 풍요로운 성찰이 아니라 ‘문화자본’의 상품으로 그칠 때, 그때가 바로 시장전체주의가 도래하는 때다. 시장전체주의는 그 맹목성과 야수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자기 자신을 잡아먹게 된다고 지은이는 말한다. 문민정부 시절 날이면 날마다 ‘세계화’를 외치다가 결국 외환위기를 맞아 정권이 파산하고 국가가 부도났던 것이 시장의 자기파멸성을 증거한다. 지은이는 이 시장의 광기를 제어할 것은 비판적 이성이며, 비판이성을 가동할 주체는 시민사회라고 강조한다. “21세기를 통틀어 한국인에게 부과되는 중요한 사회적 과제 중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것은 민주사회의 유지·발전·계승이다.” 그 사회를 감당할 민주시민을 길러내지 못하는 한, 우리에게 미래는 없다고 지은이는 말한다.(고명섭 기자)

시대에 대한 6가지 질문과 대답 ‘문라이브러리’

생각의나무 출판사의 ‘문라이브러리’ 시리즈는 도정일 교수의 <시장전체주의와 문명의 야만>을 포함해 모두 여섯 권을 1차분으로 내놓았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의 <정의와 정의의 조건>,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 장회익 서울대 명예교수의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 강수돌 고려대 교수의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 그리고 윤평중 한신대 교수의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가 1차분에 포함됐다.

‘문라이브러리’는 1980년대 사회과학출판사들의 ‘신서’ 시리즈와 2000년대에 새롭게 등장한 문고본을 통합한 형식이라고 할 수 있다. 예리한 사회적 문제의식을 단출한 문고본 틀에 담아냄으로써, 가독성과 진지함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전략이다. 문라이브러리는 크게 세 가지 하위그룹으로 나뉜다. 1차분으로 나온 것이 인문적 담론의 마당을 펼치는 ‘휴머니티’ 시리즈이고, 예술 분야의 저술을 펴내는 ‘아트’ 시리즈, 문학적 에세이를 펴내는 ‘리터러처’ 시리즈가 따로 나올 예정이다. 문라이브러리는 ‘문’(問), 곧 ‘시대에 대한 물음’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나름의 물음을 품고서 시대와 대화하는 가운데 얻은 답변이 책의 본문을 이룬다면, 그 답변 자체가 또다른 물음을 잉태하고 출산한다는 뜻을 품고 있다고 출판사는 밝혔다.


1차분으로 나온 책들은 국내 인문·사회과학계의 1급 학자와 논객을 불러내 이 물음과 답변을 들려준다. 시리즈 첫 권인 김우창 교수의 <정의와 정의의 조건>은 이 시리즈의 성격에 정확히 들어맞는 경우다. 김 교수는 ‘우리 사회의 가장 중심적인 화두’인 정의의 문제를 다룬다. 그는 좋은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라고 잘라 말한다. 그러면서도 “‘극단의 정의가 극단의 손상’이 될 수도 있다는 가능성도 생각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여러 경우의 수를 찬찬히 따져보는 그의 사유 방식이 여기서도 어김없이 드러난다.

최장집 교수의 <한국 민주주의 무엇이 문제인가>는 지은이가 정년퇴임 후 펴낸 첫 책이다. 최 교수는 이명박 정부의 등장과 촛불집회 같은 최근의 사례에 대한 평가를 통해 자신의 지론인 정당 민주주의 강화론을 펼친다. 그는 촛불집회를 민주주의 제도 실패의 결과로 보면서, ‘운동’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바와 그 한계를 함께 살핀다. 장회익 교수는 <온생명과 환경, 공동체적 삶>에서 그의 고유한 생태사상인 ‘온생명 사상’을 풀어놓는다. “진정한 의미의 생명은 낱생명 속에서가 아니라 온생명과 낱생명의 관계 속에서 찾아야 한다는 새로운 생명 이해에 도달할 때, 인간 중심의 관념에서 형성된 국가관의 제약을 좀더 쉽게 벗어날 수 있다.” 장 교수는 생태계 파괴의 문명을 극복할 실천방안으로 대안공동체 운동을 제시한다.

강수돌 교수는 <경쟁은 어떻게 내면화되는가>에서 상품경쟁·생존경쟁·시장경쟁은 결국 우리를 합리적으로 분열시키는 메커니즘에 불과하며, 경쟁에서 누가 일등을 하는지와는 무관하게 모두가 권력과 자본의 지배 아래 종속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윤평중 교수의 <극단의 시대에 중심잡기>는 ‘한국 사회에 만연한 편향적 사유의 중심잡기’를 시도한다.(고명섭 기자)

08. 09. 19.

P.S. 세기말에 씌어진 첫번째 글 '밀레니엄, 오, 밀레니엄!'(1999)에는 주요 미래소설들, 혹은 반(反)유토피아 소설들이 언급되고 있는데, 첫 타자는 러시아작가 예브게니 자미아친의 <우리들>(1923)이다. '자미아친'은 'Zamyatin'을 읽어준 것으로 보통은 '자먀친'이나 '자먀찐'이라고 읽는다('자먀틴'이라고 읽기도 한다). 그리고 <우리들>은 1920년에 씌어진 소설이어서 '1923'이란 연도의 출처는 모르겠다.

"러시아 작가 예브게니 자미아친이 그린 이 26세기의 세계에는 단 하나의 국가(이름도 '단일국'이다)만 있고, '대시혜자(大施惠者)'라 불리는 단 한 사람의 통치자가 그 거대 단일국을 다스린다."(15쪽)  

이 원조 반유토피아 소설의 국역본을 따르자면, '단일국'은 '단일제국'이고 '대시혜자'는 '은혜로운 분'이다. 그리고 소설의 배경은 '26세기'가 아니라 '29세기'이다. 어차피 미래소설이니 그게 그거이긴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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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19 22:10   좋아요 0 | URL
인문학의 위기를 논하면서 결국은 연구비를 더 달라고 국가에 요구하는 것도 시장전체주의의 한 모습이 아닐까요?

로쟈 2008-09-20 20:21   좋아요 0 | URL
인문학자뿐 아니라 지식인 일반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최장집 교수의 인터뷰에 이런 지적이 나옵니다. "이를테면 학술진흥재단과 같은 국가기관이 많은 학술사업을 재정적으로 뒷받침하면서, 어떻게 보면 지식인들은 거대한 국가기구의 하나의 관료적 고리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시민사회의 자율성, 시민운동을 이야기하지만 그렇게 말하는 예전에 운동을 실제로 했던 지식인들이 과연 국가로부터 얼마나 자율적 거리를 유지하면서 스스로 비판적 거리를 가질 수 있느냐 하는 점에서도 회의적입니다." 저 또한 회의적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9-20 15:32   좋아요 0 | URL
하기야 이공계를 살리자면서 그 분야도 똑같은 요구를 하더군요.결국은 이런 식으로 하면 국가에 포섭된다는 말씀이지요?

로쟈 2008-09-20 20:24   좋아요 0 | URL
소위 지식인의 국가비판이 한낱 '행세'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 국가체제 바깥에서 일상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므로 대안이 있을 성싶진 않고, 다만 그에 대한 자의식을 갖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