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의 윤리와 만민법'은 한가지 주제도 되지만 두 권의 책을 가리킨다. 피터 싱어의 <세계화의 윤리>(아카넷, 2003)와 존 롤스(롤즈)의 <만민법>(이끌리오, 2000)이 그 두 권의 책이다(<세계화의 윤리>의 원제는 그냥 <하나의 세계>이다). 알라딘에는 모두 품절/절판으로 나온다. 필요 때문에 며칠전 <세계화의 윤리>는 구입했고 <만민법>은 오래전에 구입해둔 책이지만 짐작엔 롤스의 다른 책들과 함께 박스보관도서여서 당장 손에 들지 못한다(말 그대로 '박스의 책'이다). 해서 관련자료를 검색해보다가 참고할 만한 기사들이 눈에 띄기에 스크랩해놓는다. 순서는 역순이다.

한겨레(00. 11. 20) '현실적 유토피아' 가능한가

IMF사태 뒤 우리는 한 나라의 주권마저 뒤흔드는 세계화의 영향력을 처절하게 실감하고 있다. 서구중심 신자유주의 사조에 대한 최근의 거센 비판또한 따져보면 경제논리로 간섭과 배제를 일삼는 국제관계의 타산적 변화가 주된 요인이다. 바꿔말해 그것은 곧 나라사이의 정의로운 관계가 과연 실현되고 있는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이라고 할 수 있다.

<정의론>으로 세계지성의 반열에 오른 정치철학자 존 롤스의 <만민법>(이끌리오·장동진 외 2인 옮김)은 정의를 갈구하는 보편적 이성에 기대어 정글화된 국제관계에 `죽비'를 때리는 연구서다. 명저 <정의론>(71년)과 <정치적 자유주의>(93년)에서 합당성과 공적 이성(Public Reason)을 토대로 한 사회의 분배정의를 역설했던 그의 도덕주의는 책에서 나라 사이의 공존과 평화를 좇는 만민법 개념으로 재생되고 있다.

저작을 구성하는 만민법과 공적 이성에 대한 두 논문들은 겉보기에 도덕군자의 규범론에 가깝다. 세계평화를 도덕적 명령으로 본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사색의 지렛대 삼았다는 점에서도 그렇다. 하지만 `만민법'은 롤스가 재정립시킨 윤리적 정의가 세계 시민의 유토피아를 이룩하기 위한 외교적 원칙으로 자리잡을 수 있음을 논리적으로 입증한다는 점에서 통찰의 깊이가 엿보인다. 일반적 사회계약론을 여러 나라간의 관계짓기로 확장시킨 셈이다. 그에 따르면 만민의 사회는 자유민주적인 만민의 사회와, 자유가 완전히 보장되지 않지만 여러 다원적 논의가 가능한 `적정수준의 만민의 사회', 무법적 사회로 나뉘어지는 데, 도덕적 가치를 실현하려는 인간이성의 특징 때문에 앞의 두 사회는 만민법에 동의할 것이라는 점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지만 `유토피아'가 전쟁과 학살로 얼룩진 국제정치 현실에서 가능하기나 할까. 롤스는 확답을 피하고 관용에 바탕한 만민법 이상이 실천과정에서 국제관계의 정의실현을 위한 가능성을 꾸준히 높인다는 전망을 내놓는다. 반전론보다 인권을 위해 무법적 나라에 대한 무력개입을 옹호하는 그의 견해는 이런 가능성을 염두에 둔 것이다. `공적이성의 재조명'또한 같은 맥락에서 종교와 인종 등의 가치관 차이를 넘어선 만민법의 합당한 고갱이로서 공적 이성을 다루고 있다. 관용에 뿌리를 둔 공적 이성이야말로 민주주의와 종교교리, 이해관계의 갈등을 완화하는 정의의 원칙이라는 것이다.

실천하는 이성의 권능을 믿는다는 점에서 롤스는 마치 21세기의 칸트처럼 비친다. “정의가 사라진다면 인간이 지구상에 살 가치가 없다”는 칸트의 명제는 그래서 담론의 중요한 전제이며 “정치적 개념이 본질적, 도덕적 가치로서의 정의를 포함해야 한다”는 그의 사상은 이성적 의지를 채찍질하는 중용의 정치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만 서구적 사고방식이 지고의 문화적 가치로 뿌리내린 현실에서 이 강단학자의 견해가 시국한담이나 서구우월주의의 근거로 잘못 읽힐 수 있는 점은 분명 경계할 대목이다.(노형석 기자)

 

주간동아(04. 01. 15) 국가 초월한 지구촌 웰빙 지침서

2003년 지구는 어느 때보다 다양한 세계화 현상들을 겪었다. 그 가운데서도 절망적인 상황이주를 이루었다. 유례없는 반전열풍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영국이 이라크를 침공했다. 테러는 일상적인 일이 되었으며,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세계무역기구(WTO) 각료회의는 개발도상국들이 강대국의 일방적인 경제 세계화에 반발해 결렬되고 말았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열린 유엔 기후변화협약은 지구온난화 방지를 위한 교토의정서를 미국에 이어 러시아까지 거부하면서 파행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희망도 샘솟았다. 최근 이란에 엄청난 지진 피해가 발생하자 세계 각국에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세계의 수많은 선량한 손길이 지구 저편의 곤궁한 이웃을 돕고 있다.

자국의 사소한 일 하나도 그 나라만의 문제일 수 없는 지구촌 시대다. 이제 문제는 세계화의 수용 여부가 아니라 ‘어떻게’ 세계화를 진행시킬 것인가에 초점이 모아지고 있다. 실천윤리학의 거장인 피터 싱어는 근저 ‘세계화의 윤리’(원제 One World: The Ethics of Globalization)에서 “우리가 어떻게 전 지구화의 시기를 잘 겪어낼 것인가 하는 문제는 결국 윤리적 문제다”라고 지적한다. 윤리적 문제라는 것은 예컨대 우리 개인적으로는 가난하고 약한 나라를 돕는 윤리의식이, 세계 전체로는 합법적인 노동기준과 환경기준을 ‘잘 관리할’ 지구적인 단체가 필요하다는 말이다.

물론 이런 전 지구적 공동체 윤리를 가지려면 전제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이제까지 전가의 보도처럼 중시된 ‘민족국가(nation-state) 중심 시각’을 버려야 한다는 것. 이제까지 우리들의 행동윤리는 국가라는 공동체 범위 안에서의 일이었다. 그러나 국가간의 통합 문제가 주요 이슈로 떠오를 만큼 세계화가 진척된 상황에서 민족국가 중심 개념은 세계를 힘의 논리에 따라 비윤리적으로 재편할 방편이 될 수 있다.

피터 싱어는 미국을 그 예로 든다. 미국이 강제하는 전 지구적 평화주의인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가 아무리 건전한 원칙과 고매한 이상을 가졌어도 전 세계 60억 인구의 지구를 3억 인구의 나라가 지배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것, 그리고 독재적으로 행사하는 권력을 막을 견제와 균형의 장치도 없는 상황은 우려할 만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미국이 보인 그간의 행동을 보면 믿음이 생기지 않는다고 싱어는 꼬집는다. 예컨대 미국이 교토의정서에 서명하기를 거부한 것은 대표적인 이기주의의 사례라는 것. 또한 집단살해죄와 인도에 반하는 죄로 기소된 자들을 재판하는 국제형사재판소의 설립에 미국이 반대하는 행동도 정치적 목적에 따라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이라크 침공을 감행한 논리였던 대량살상무기는 이라크에서 발견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더 나은 세계를 위해 필요한 실천 가능한 방법들은 무엇일까. 싱어는 크게 네 가지 주제를 살펴보고 그 방법들을 제시한다. 첫째, 지구온난화 문제. 이산화탄소 배출권 거래를 현실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보여주고, 미국의 교토의정서 탈퇴와 같은 강대국의 전횡을 막기 위해 국제기구의 강화를 제안한다.

둘째, 환경과 인권 등의 가치보다 경제적 가치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며 국가 주권에까지 개입해온 WTO를 개혁하기 위해 노동자의 권리 옹호, 환경 보호, 동물권리 보호 등에 대한 전 지구적 기준과 이를 시행하는 기구를 마련하자는 것.

셋째, 집단살해 등 개별 국가의 특정 사안에 대한 국제적인 개입은 어떤 경우에 가능한지를 제시한다. 그 결정은 반드시 한 국가가 아니라 합당한 절차에 따라 유엔을 통해서만 이뤄져야 한다는 것.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왜 비윤리적인지를 짚어내는 대목이다.

넷째, 지구상의 극빈상태를 해소하기 위해 각국이 GNP의 1%를 해외원조로 내놓아야 한다는 것. 그 방식은 정치적 목적이 아닌 저소득국가 중심으로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도덕적인 ‘하나의 세계’를 위한 싱어의 생각은 구체적이면서도 이상적이다. 그래서 어려운 수치와 논리가 전개되면서도 호소력이 있다. 마치 존 레논이 ‘이매진(Imagine)’에서 ‘나라가 없다고 상상해본다 … 온 세계를 함께 나누는/ 모든 사람을 상상해본다’고 노래했듯, 그도 이 책을 통해 더 나은 세계를 위해 노래 부르고 있다.(정현상 기자)

08. 08. 31

 

 

 

 

P.S. 피터의 싱어의 책에는 롤스의 두 저서인 <정의론>과 <만민법>에 대한 논평이 포함돼 있어서 눈길을 끈다. 먼저 <정의론>에 대해서: "윤리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얼마나 변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자우주의적이 미국이 성립되는 과정에서의 정의에 대한 20세기 후반의 사고를 대표하는 롤스의 <정의론>을 살펴보아야 한다. 1971년 출판된 직후에 읽었을 때, 나는 거의 600쪽에 이르는 이 책이 서로 다른 사회들 사이에 존재하는 극단의 빈부 간의 부정의(injustice)를 전혀 논의하고 있지 않다는 것에 놀랐다."(32쪽) 말하자면 롤스의 '정의'는 사회'간' 정의가 아니라 사회'내' 정의에 국한되고 있다는 것.

"원초적 선택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면서 롤스는 선택하는 사람들 모두가 동일한 사회에 속해 있으며 그 사회 내에서 정의를 이룩하는 원칙을 선택하고 있다는 것으로 단순하게 가정한다.(...) 만약 정의롭게 선택하려면 사람들은 자신이 어느 나라 국민인지도 몰라야 한다는 것까지 롤스가 받아들인다면, 그의 이론은 세계의 가장 가난한 사람들의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향상시킬 강력한 논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에서 씌어진, 정의에 대한 가장 영향력 있는 저서인 <정의론>에서 이 문제는 언급조차 되지 않고 있다."(32-33쪽)

롤스가 이 문제를 비로소 제기하는 것은 <만민법>에 와서인데, 여기서도 문제는 없지 않다. 싱어에 따르면, "그의 접근방식은 무엇이 정의로운지를 결정하는 단위가 오늘날의 민족국가 같은 것이라는 생각에 확고하게 뿌리 박고 있다. 롤스의 모델은 국제적인 질서의 모델인지, 전 지구적인 차원의 그것이 아니다. 이러한 그의 가정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33쪽, 이에 대한 부연설명을 싱어는 226-231쪽에서 제시한다). 두 철학자간의 쟁점이 무엇인지는 분명해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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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9-02 23:05   좋아요 0 | URL
싱어의 롤스 비판! 궁금하네요.강정인 씨도 한국의 롤스 열기가 문제있다는 글을 쓴 적이 있죠.존슨 행정부의 복지정책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책이 정의론인데 국내학자들이 이런 맥락을 알려주지 않았다고 지적했죠.롤스가 고교윤리의 사상과 철학 편에 소개된지도 20년 가까이 된 것 같아요.

로쟈 2008-09-03 08:29   좋아요 0 | URL
'롤스 열기'도 옛날 얘기 같은데요. 그것도 한때 주저들이 번역되고 학위논문들이 많이 나온다는 정도 같습니다. 그의 자유주의적 정의론조차 국내에선 '좌파', 혹은 빨갱이 이론으로 낙인이 찍히겠죠...

딸기 2008-09-03 17:49   좋아요 0 | URL
세계화의 윤리, 전 너무 재미있게 읽었어요 >.<

로쟈 2008-09-04 23:39   좋아요 0 | URL
네, 리뷰를 봤던 기억이 나네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3 21:15   좋아요 0 | URL
롤즈가 쓴 논문 중에 시민불복종운동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한 게 있었는데 문득 이 논문 보면서 분노하는 사람들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우리나라 사람중에는 히틀러도 좌익으로 구속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춘 이들도 있겠죠.

로쟈 2008-09-04 23:39   좋아요 0 | URL
남아도는 게 그런 실력이죠...

노이에자이트 2008-09-05 15:56   좋아요 0 | URL
그런 실력을 필요로 하는 나리들이 계시니까요.

로쟈 2008-09-06 08:51   좋아요 0 | URL
임기제 대통령이 아니라 총통을 모시는 듯싶어요...

노이에자이트 2008-09-06 16:38   좋아요 0 | URL
반대자들 다루는 모양이 구사대 동원하여 진압하는 식이죠.이 정도인줄은 몰랐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