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세상을 떠난 솔제니친과 관련한 칼럼이 눈에 띄어서 옮겨놓는다. 인권에 관한 책들을 연이어 출간하고 있는 조효제 교수의 칼럼인데, '진보의 복합적인 현실인식'을 주문하고 있다. '모든 억압에 대한 저항'을 진보로 포용하자는 취지이다.

한겨레(08. 08. 08) 솔제니친과 진보의 복합적 현실인식

며칠 전 타계한 솔제니친만큼 평생을 격렬한 논쟁 속에 산 사람도 없을 것이다. 소련 당국은 그를 반역자로 몰았다. 그의 러시아 민족주의 경향은 사르트르와 같은 서구 좌파 지식인들의 신경을 건드렸다. 그를 반소 지성인의 상징으로 칭송하던 서구의 우파 지식그룹은 그가 구미의 도덕적 타락과 방종, 물신숭배를 비난하기 시작하자 반자유주의자로 낙인찍었다. 일각에서는 그를 반유대주의자라고 비판했다. 1994년 그가 오랜 망명생활 끝에 귀국하자 전통주의의 부활을 우려하던 <모스크바 타임스>는 ‘호메이니의 귀환인가?’라는 기사를 싣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설왕설래에도 불구하고 그의 사상의 핵심은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신뢰였다. 로버트 인차우스티가 보기에 그는 사라진 사람들과 억눌린 사람들의 관점에서 역사를 새로 쓴 현대의 사가였다. 이렇게 본다면 그는 민주파들이 경청할 가치가 있는 인물이다. 그런데도 우리 진보·개혁 진영에서 솔제니친은 많이 읽히지도, 크게 주목받지도 못했다. 왜? 이 질문에 답하는 것은 한국 현대사의 질곡이 우리의 비판적 지성계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를 알아보는 것과 같다.

우선, 솔제니친이 세계적인 명성을 날리던 때 우리는 군부독재 치하에서 신음하고 있었다. 반독재 투쟁을 벌이고 있던 민주화 진영은 솔제니친의 메시지에 관심을 기울일 여력이 없었다. 둘째, 한국의 극우보수 세력이 솔제니친을 철저히 자기들 입맛에 맞게 왜곡했다. 문화계의 이데올로그들은 그를 최고의 반공작가로 떠받들었다. 남한에 있었더라도 반체제 민주인사가 되었을 인물을 엉뚱한 존재로 둔갑시켰던 것이다. 이런 왜곡된 시대상황에서 진보·개혁 진영이 솔제니친을 균형 있게 인식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되기 어려웠다. 그러나 솔제니친의 서거를 계기로 이제 우리 진보·개혁 진영의 지적 역량에 얼마만한 여유 공간이 있는지 점검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예컨대 모든 정치권력은 어떤 이념이든 억압적인 측면이 있을 수 있고, 그 모든 억압에 저항하는 것이 진정한 진보라는 복합적인 인식을 가져보면 어떨까?


진보·개혁 진영이 이런 태도를 지닐 때 진보 대 보수의 이분법을 넘어 현실의 뉘앙스와 아이러니를 깊이 이해하는 세련된 세력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 어째서 그런가? 그런 태도는 사울 알린스키의 표현대로 일반대중의 욕망과 희비의 결을 ‘그래야만 하는’ 렌즈가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렌즈로 볼 수 있게 해 주기 때문이다. 또한 그런 태도는 진보·개혁 진영에서 등에 구실을 하는 사람이 더 많이 나오도록 장려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 진보·개혁 진영은 더욱 풍부한 콘텐츠로 미래를 기약할 수 있다. 가령 서울시 교육감 선거를 보라. 그것은 지난해 말 대선과 올봄 총선에 이은 보수 선거혁명 3부작의 완결판이었다. 한국 보수세력의 능수능란함이란! 비비케이(BBK), 인사파동, 광우병, 촛불집회, 남북관계, 독도주권, 외교참패 등 현실정치의 온갖 악재를 선거 이벤트로써 단숨에 돌파하지 않았는가. 대선에선 항의 성향 투표를, 총선에선 욕구 지향 투표를, 교육선거에선 계급 취향 투표를 교묘하게 동원하여 기어코 권력의 핵심 제도들을 움켜쥐고야 마는 저 모습을 보라.

이게 우리의 솔직한 현실이다. 단기간의 선명한 투쟁만으론 이길 수 없는 현실이다. 싸울 때는 안경 벗고 싸우더라도 세상을 읽을 때엔 다초점 렌즈로 볼 줄 알아야 한다. 최근 어느 진보적 출판인으로부터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바로 이런 것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가 아닐까 한다.(조효제 성공회대 사회과학부 교수)

08. 08. 08

P.S. 칼럼 말미에서 언급되고 있는 아서 케슬러의 소설 <한낮의 어둠>(한길사, 1983)은 한길 세계문학의 한 권으로 묶여서 출간된 적이 있다. 최승자 시인의 번역이었다. 이 책에 대해서는 '폭력이란 무엇인가'(http://blog.aladin.co.kr/mramor/1747960)란 페이퍼에서 언급한 적이 있다.

어느 진보적 출판인이 아서 케슬러의 <한낮의 어둠>을 번역·출간할 계획을 갖고 있다는 사실이 "복합적인 현실인식의 좋은 사례"로 지목된 것은 이 책이 스탈린시대의 숙청을 비판한 일종의 '반공문학'으로 읽힐 수 있기 때문이다. 메를로퐁티는 <휴머니즘과 폭력>(문학과지성사, 2004)에서 이러한 케슬러의 입장을 비판한 바 있다('쾨슬러의 딜레마'). 이 문제에 대해서는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새물결, 2008)이 가장 유익한 참고문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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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이에자이트 2008-08-08 12:43   좋아요 0 | URL
저는 부하린 재판과 박헌영 재판을 비교연구해보고 싶습니다.저의 필생의 소원입니다.문학작품으로는 부하린 재판을 다룬 한낮의 어둠.그리고 박헌영 재판을 직접 다루진 않지만 해방공간에 미군정이 남로당 핵심에 정보원을 심었음을 소설가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마쓰모도 세이죠<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연구목록에 넣고 있습니다.이 소설은 북한에서도 남로당 노선비판할 때 중요한 교재로 쓰였습니다.

로쟈 2008-08-08 14:46   좋아요 0 | URL
지젝의 <전체주의가 어쨌다구?>를 꼭 읽어보시길...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08   좋아요 0 | URL
전체주의가 어쨌다구에 나오는 부하린 재판을 비롯한 대숙청 작업에 대한 스탈린 주의적인 해석은 결국 숙청도 혁명을 위해 역사적으로 불가피했다는 식의 변명이라고 봅니다.지젝이 카프카를 인용한 것은 스탈린 식의 이런 변명을 거부하면서 부하린을 비롯한 당시의 숙청대상자들은 난 데 없이 죄인이 되었다는 비판이죠. 그 밑바탕엔 당시 재판정에 선 피고들은 소련을 무너뜨리려는 외국세력의 앞잡이라는 소련 당국측의 견해 자체가 신뢰할 만하지 않다는 것이 전제되어 있습니다.하지만 남로당 지도부는 상당수가 미군정에 포섭되어 있었음이 해제문서를 통해 밝혀졌습니다(정창현 <인물로 보는 북한 현대사>).임화도 그렇고 이강국도 그렇구요.물론 박헌영 자신이 포섭된 것은 아니라고 해도 말이죠.그래서 제가 <북으로 간 시인 임화>를 언급한 겁니다.거기엔 연세대 설립자 집안인 언더우드가가 미군정의 앞잡이로 나옵니다.

로쟈 2008-08-09 00:05   좋아요 0 | URL
미군에 포섭됐었다는 건 확정적인 건가요? 한데, 만약에 사실이 그랬다면 아무런 미스터리도 없는 것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09 00:14   좋아요 0 | URL
예.우리나라 신문에서도 그게 나왔습니다.정창현 책엔 그 문서 번호까지 나와 있구요.방선주와 기광서가 확인했습니다.정병주 씨도 인정했구요.그런데 학계에서는 아직도 수용을 안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작년에 나온 심지연<이강국>에서도 이강국이 북한에서 희생되었다...그런 식이구요.여하튼 마쓰모도 세이죠는 문서해제가 되기 전에 거의 정확히 짚은 거죠.

로쟈 2008-08-10 00:31   좋아요 0 | URL
미 군정문서인가 보군요. 그 경우엔 소련측 문서보다는 신빙성이 있을 거 같은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01   좋아요 0 | URL
그렇습니다.미군 방첩대 문서죠.하지만 저는 북한 것을 복사한 것이나 한민전(이런 단체가 실제로 있었는지는 지금도 의문입니다)에서 나온 남로당 비판서는 적당히 에누리해서 읽습니다.박헌영 재판 기록은 구할 수 있습니다만 그걸 소재로 삼은 소설이나 논문이 없고 부하린 재판을 다룬 소설이나 평론은 있는데 국내에선 재판기록을 구할 수 없지요.부하린 기소의 이유가 독일과 일본의 간첩들이 준동한다! 였는데 아예 첩보의 역사를 읽어보려고 해요.박헌영 사건도 아예 남과 북 그리고 미군정 첩보전까지 다뤄보려고 합니다.인문 사회 하는 이들은 군사 첩보분야를 멀리하고 군사 첩보 연구하는 이들은 인문 사회적 시각이 부족하여 문제이니 아예 두 분야를 함께 해보려구요.
제가 부하린 재판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리나라 연구서인 김남국<부하린:혁명과 반혁명의 사이>(문학과 지성사1993)을 읽은 후부터예요.이 책을 통해 <한낮의 어둠>과 <휴머니즘과 테러>에 대해 알게 되었죠.

로쟈 2008-08-10 21:33   좋아요 0 | URL
저도 철학적으론 관심있는 테마인데, 엄두는 잘 나질 않습니다. 김홍우 교수의 <현상학과 정치철학>에도 관련 논문이 들어 있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0 21:55   좋아요 0 | URL
오...감사합니다.내일 낮 도서관에서 한 번 찾아보겠습니다.

로쟈 2008-08-10 22:03   좋아요 0 | URL
시립도서관들은 보통 월요일에 휴무 아닌가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1 11:31   좋아요 0 | URL
격주로 쉬니까 문 연 곳에 가면 됩니다.오전 일 끝내고 이제 왔습니다.저쪽 도서관은 오늘 쉬는 날!

로쟈 2008-08-11 20:09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18   좋아요 0 | URL
현상학과 정치철학 중 관심가는 논문을 봤습니다.케슬러가 인간을 콤미싸르 형과 요기 형으로 분류하여 후자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태도는 이사야 벌린의 자유관과 비슷하더군요.그리고 이 책의 제일 첫번 논문인 행태주의에 관한 글은 경제학의 방법론까지 다루어 매우 유용했습니다.이 부분을 좀 더 정독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사회실재론과 사회명목론의 대결은 최근에 관심을 갖는 쟁점이라서요.

로쟈 2008-08-12 23:21   좋아요 0 | URL
기회가 되면 나중에 세미나라도 해야겠습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8-12 23:48   좋아요 0 | URL
근데 메타이론 쪽의 독서는 두뇌소모가 엄청나서 괴롭습니다.개별학문 분과를 넘어서 버리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