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시사IN에서 출판리뷰를 스크랩해놓는다(http://www.sisain.co.kr/news/articleView.html?idxno=2614#). 최근 출간된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너무북스, 2008)를 다루고 있는데, <백범일지> 정본 연구의 진일보한 성과라고 한다. 현재로선 백범의 진의에 가장 가까운 판본인 듯하므로 주목을 끌 만하다. 현재까지는 도진순 교수가 교열한 <백범일지>(돌베개, 2002)가 표준본 역할을 했었다.
시사인(08. 08. 05) 당신은 백범을 정확히 아는가
우리나라 학계와 출판계의 취약점 가운데 하나가 바로 정본(定本)이다. 정본은 연구나 인용을 하는 데 가장 믿을 수 있는 본문을 제공하는 서적, 고전 텍스트의 여러 다른 판본 가운데 검토하고 교정해 원본과 가장 가깝다고 판단한 표준이 될 만한 책이다. 어떤 텍스트에 ‘관하여’ 연구한 책을 쓰는 것보다, 그 텍스트의 정본을 만드는 게 몇 십 갑절 더 어렵다. <올바르게 풀어쓴 백범일지>는 백범일지 정본 텍스트에 성큼 다가선 성과다.
엮은이는 논쟁적인 문제나 시대적 배경 이해가 필요한 내용을 자세히 해설했다. 이러한 깊이 읽기가 58개에 달하며 기존 출간본의 잘못을 바로잡거나 원문의 맥락을 설명하는 해설도 132개에 달한다. 예컨대 기존 출간본 주석에는 ‘조선 중기 해서 지방의 유명한 문인 유응두’로 설명돼 있는데, 엮은이는 유응두를 조선 중기 문인이 아니라 대한독립의군부 황해도 대표를 역임한 유학자로 바로잡았다.
백범일지 원문에 나오는 ‘정각에 소위 부문(赴門)-과거장을 개방-을 한다는데’가 기존 출간본에는 ‘정면에 있는 과거장 입구로 선비들이 열을 지어 들어갔다’로 돼 있다. 엮은이에 따르면 이는 정각을 정면으로 잘못 풀이했고, 과거장 문을 개방한다는 뜻의 ‘부문’도 잘못 이해했다. 당시 과거제도는 수험번호와 지정 좌석이 없었기 때문에 서로 먼저 들어가려는 다툼이 심했다. 이를 ‘쟁접’이라 하는데, 기존 출간본은 과거제도의 폐단을 묘사하는 백범일지 원문의 취지를 살리지 못했다.
이렇게 꼼꼼하게 고증하는 엮은이의 관심이 백범 신화화가 아니라 백범을 정확하게 보고 평가하는 데 있는 건 당연하다. 그런 관심은 이광수가 윤문한 국사원본에서 새롭게 만들어진 백범일지 첫 문장, ‘우리는 안동 김씨 경순왕의 자손이다’에 대한 비판적 지적에서도 드러난다. 친필원본의 첫 문장은 ‘우리 선조는 안동 김씨로 김자점씨의 방계 후손이다. 김자점씨가 반역죄를 저질러 온 집안이 화를 입을 때’이다. 이렇게 달라지면서 백범이 보여준 평민의식과 저항의식의 근거가 희박해져버린다. 이런 부분이 백범일지의 순수성을 훼손하고 비판적 백범 읽기를 방해한다.
“젊은 아내 팔아 한 끼 밥 맛나게 먹고 싶다”
이승만에 대한 백범의 인식은 어땠을까? 서대문 감옥에 갇혀 있을 때 이승만이 설치한 옥중 도서실의 서적을 보고 백범은 ‘이 박사의 손때와 눈물 흔적이 묻은 책을 볼 때마다 책의 내용보다는 배알치 못한 이 박사의 얼굴을 보는 듯 반갑고 무한한 느낌이 들었다’. 백범이 친필원문의 여백에 적어둔 글이다. 백범일지 전체를 통해 이승만에 대한 비판적인 언급은 없다. 적어도 백범이 일지를 기록한 1920년대 말에는 이승만을 존경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이에 비해 특히 하권으로 갈수록 백범은 공산주의에 대한 분명한 비판을 자주 한다. 엮은이는 백범일지가 매우 정치적인 텍스트라고 지적한다.
서대문 감옥에서 고문받으며 배가 너무 고파 ‘젊은 아내를 팔아서라도 한 끼 밥을 맛나게 먹었으면 좋겠다’고 당시 심경을 고백하는 백범. 안악사건으로 투옥됐을 때 며칠 밤을 새워 자신을 고문하는 일본 경찰을 보고, ‘평소 애국자라고 자부하던 자신은 저렇게 나라를 위해 밤을 새워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는가’ 반성하는 백범. 그 진솔함이야말로 <백범일지>의 백미다.
엮은이가 보기에 백범정신의 백미가 있다면 그것은 자신의 허물까지도 숨기지 않고 세상의 비판을 달게 받겠다는 정신이며, 백범의 삶이 우리에게 던지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는 ‘대가리 싸움을 하지 말고 발이 되라’는 겸허의 정신과 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물고기가 되라는 ‘역수어 정신’이다.(표정훈_출판 평론가)
08. 08. 07.
P.S. 소설가 김별아씨의 신작 <백범>(이룸, 2008)도 눈길을 끈다. 엊그제 읽은 기사를 옮겨놓는다.
경향신문(08. 08. 05) 역사장편 ‘백범’ 낸 김별아씨 “문제적 인간 백범 그렸죠”
“문학적으로 접근할 때 백범은 ‘문제적 인간’이었어요. 하지만 그동안 출간된 ‘백범일지’나 관련 서적을 보면 영웅으로 묘사하잖아요. 또 생애 마지막에 정돈된 모습을 보여줘 인간으로 이해하기에는 어려운 측면이 있었죠.”
광복절을 앞두고 ‘건국 60주년이냐, 정부수립 60주년이냐’ 논란이 일고 있는 시점에 소설가 김별아씨(39)가 백범 김구를 소재로 한 장편 ‘백범’(이룸)을 발표했다. 소설은 백범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해 1945년 11월23일 백범이 중국 상하이 강만비행장에서 미군정비행기를 타고 귀국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고 있다.
4일 열린 간담회에서 작가는 “백범을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끌어 내리는 데 주력했다”고 강조했다. 첫장과 마지막장을 제외한 10개의 소제목에는 ‘냉혹한 슬픔’ ‘쓰라린 슬픔’ ‘아련한 슬픔’ ‘자욱한 슬픔’ ‘거룩한 슬픔’ 등 슬픔이라는 공통단어가 붙어 있다. 백범을 영웅이 아닌 인간으로 읽어내려는 작가의 시선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저도 일반대중과 마찬가지로 백범에 대해 애국자, 영웅이라는 이미지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백범일지’를 읽다보니 내용이 너무 많더라고요. 슬플 겨를이 없을 정도죠. 사실 집필 중에 백범이 강한 모습을 보이면 보일수록 마음이 아프더라고요. 무엇이 도대체 인간을 이렇게 강하게 만드는가, 끝까지 가게 만드는가 하는 의문이 생겼는데 이건 끝까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겠지요.”
김씨는 이 작품을 캐나다에서 썼다. 2005년 ‘미실’로 세계문학상에 당선된 후 “좁은 세계에서 벗어나 다른 세계에 살고 싶어” 캐나다로 떠났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가을 작업하기로 마음 먹고 자료를 찾다보니 의외로 한국근대사 관련 자료가 많지 않았다. 결국 근대기 상하이와 문화사 등에 관한 영문서적을 읽으며 세계사적 시각에서 한국사 살피기 공부를 했단다.
그는 백범이 자신과의 싸움을 끝까지 멈추지 않은 점을 높이 평가했다. “백범은 횃불 같은 존재입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에 제일 낮은 자리에서 끝까지 싸웠기 때문이죠. 그러나 백범이 처음부터 그랬던 건 아닙니다. 스스로 계속 질문을 던지고 상실의 시대에 갈 길을 찾아 자신의 자리에 올랐다고 저는 해석합니다.”
‘미실’ ‘논개’ ‘영영이별 영이별’ 등 그간 일련의 역사소설을 발표해온 작가에게 ‘백범’은 네번째 역사소설. 근대를 소재로 한 첫 역사소설이기도 하다. 근대기 무정부주의자에 관한 소설을 비롯, 앞으로 근대에 관한 작품을 두어편 더 쓸 생각이다. 백범의 경우 사료도 비교적 많고, 많은 대중들이 기억하는 까닭에 소설로 재구성하기가 어렵지 않았을까. “소설을 쓰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니, 모두 자기가 알고 싶은 백범의 모습만 기억하고 있더군요. 총제적인 모습은 없어요. 사료가 많든 적든, 소설의 몫은 따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웅을 해체하는 작업이 문학이라고 했다.(윤민용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