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7월의 읽을 만한 책'으로 꼽아두기도 했지만,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여우와두루미, 2008)의 열풍이 심상찮은 듯싶다. 아마도 2008년의 키워드를 꼽더라도 '아고라'는 가장 강력한 후보 중의 하나가 될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언론에서 '아고라'가 언급되고서야 '아고라'의 존재에 대해서 알았을 정도이고 자주 들여다보지도 못했지만 책은 단박에 사들었다. 인터넷 자유토론장으로서 아고라의 역할을 지지하고 기념하기 위해서다. 대한민국의 '상식'을 더이상 정부나 의회에 기대할 수 없는 마당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기 위해서도 필독/필람해볼 책이다. '수익금은 시위구속자 위해 쓸 것'이라고 하니 서점에서 넘겨보지 마시고 현매하시길. 리뷰기사를 옮겨놓는다(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00837.html).

한겨레(08. 07. 26) 책으로 다시 지핀 ‘촛불’

책 한 권이 뜨고 있다. “17일 완성본을 받았다. 19일쯤 서점에 깔았는데, 23일인 오늘 벌써 1쇄 5천부가 다 나가 2쇄에 들어간다. 기록적이다. 책에 관한 누리꾼들 관심도 폭발적이다. 선집 등 후속작업도 준비하고 있다.” 사흘 전에 만난 그 책 기획자는 그렇게 말했다. 이쯤되면 대박이다. 여름에 올림픽이라는 ‘악재’까지 겹친 불황의 독서계를 자극할 이 책은 <대한민국 상식사전 아고라>(여우와두루미 펴냄).

촛불이 서울 중심가를 덮었던 두 달 전쯤 인터넷 포털 사이트 ‘다음’의 토론공간 ‘아고라’ 자유토론방 누리꾼 사이에 이런 수작들이 오갔다. “아직도 오프라인에서는 아고라가 뭔지 모르는 사람이 많고 … 하루빨리 책을 냈으면 하는데 …”(한글사랑나라사랑) “기대만땅 ~~~~^^* 아고라책이라 ~~~”(촛불살앙) “**놀랠 노자군요”(쥐발에편자) “이런 게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는데 … 저항의 방법은 다양하군요 …”(huraijin) “제가 생각하던 바를 현실로 옮기는 분이 계시다니”(누구세요) “여기는 지방 후진 동네라 아고라 잘 모르는 사람들 많습니다”(형형색색) “훗날 자식들에게도 산 역사의 서적으로 보여주고 싶은 책이 될 듯합니다”(비랑) “나오면 바로 털릴 준비하세요 … 몽땅 사버릴거얌 ㅎㅎㅎㅎㅎ”(스피릿) “아고라 아줌마부대도 넣어주세요 …ㅜㅜ”(약속해줘) “여기 미국인데 어떻게 받아볼 수 있을까요?”(박수진) “수고하셨습니다. 저도 아고라에 올라오는 주옥같은 글들을 모아 책을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고으니)

이처럼 ‘완벽한’ 시장조사를 거친 <… 아고라>는 주문자들의 입맛에 딱 맞췄다. 경쾌하지만 결코 가볍지 않고, 비장하지만 결코 구질구질하지 않다. 구호들은 의표를 찌르고 풍자와 해학은 참신하고 쿨하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대박의 이유를 파악하기 어렵다. 책의 내용과 출간이 갖는 의미까지도 아울러 제대로 짚으려면 몇 달 전부터 시작된 한국 역사상, 어쩌면 인류 역사상 초유의 ‘브로드밴드(광대역) 민주주의’를 선취한 기념비적인 사태를 되짚어봐야 한다.

5월 아고라에 이런 글이 떴다. “100년의 어둠에서 겨우 꽃피우려던 10년의 민주주의가 단 3개월 만에 짓이겨지는 모습에 눈물 흘렸소. 허허, 그러나 이젠 눈물을 거두려오. 그 짓이겨진 꽃은 아고리언 손에 하나하나 나뉘어 이젠 대한민국을 온통 꽃밭으로 만들고 있잖소. 당신들. 고맙소.”(꼬마와장군)

그 전인 4월6일. 이명박 대통령 취임 46일 만인 그날 아고라에 고등학생 누리꾼 ‘안단테’가 ‘【일천만명 서명】 국회에 이명박 대통령 탄핵을 요구합니다’를 띄웠다.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을 위한 정치를 하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지난 3개월 동안 이명박 대통령은 국정에 성의를 다하지 않았습니다. 대운하, 몰입식 교육, 보험 민영화, 고소영, 물가정책 …. 국민과 국가와 자존심을 갖다 버리신 대통령님 이런 대통령을 우리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4월15일 교육과학부가 ‘학교 자율화 조치’라는 이름의 교육시장화를 강행했다. 사흘 뒤인 18일 미국산 쇠고기를 전면 개방한 한-미 쇠고기협상이 마무리됐다. 19일 4·19 묘지 앞에서 학교 자율화 반대 촛불문화제가 벌어졌다. 26일 서울 청계천 소라기둥 앞에서 집회가 열렸고, 28일 촛불집회를 하자는 제안이 떴다. 대통령 탄핵서명 개시 26일 만인 5월2일 서명자 50만을 돌파했다. 바로 이날 마침내 청계광장 촛불집회가 중·고등학생들 선도로 시작됐다. ‘미친 소, 미친 교육 반대’ 팻말이 뜨고 ‘되고송’이 떴다. “0교시 하면 잠 못자면 되고, 쇠고기 수입하면 광우병 걸리면 되고, 죽으면 대운하에 뿌려지면 되고~”

산업사회적 상상력을 해체하는 새 세대의 역동성이 화두로 떠오르고, 세상을 편집해온 언론의 서열이 네티즌의 손으로 재편되기 시작”했음을 알린 전대미문의 대사건 촛불시위의 출현은 아고라의 등장과 표리일체를 이뤘다. 그것은 또한 “우리 사회를 이끄는 힘이 순식간에 대중에서 다중으로, 공간 공동체에서 시간 공동체로, 정치에서 문화로, 지도와 계몽에서 집단지성으로 이동”(김형수)했음을 의미했다. 열흘 뒤인 5월13일 탄핵 서명자가 130만을 넘었다.

14일 경찰이 대통령과 광우병에 관한 ‘인터넷 괴담’을 퍼뜨렸다는 누리꾼들 신원을 확인하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그날 경찰청 인터넷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이 “내가 안단테다. 잡아가라.” “저도 잡아가주세요.” 등의 1만5천여 ‘자수’ 게시물로 뒤덮였다. 그때 한 누리꾼(peladona)은 “안단테 변호사비, 우리가 대주자”며 이런 계산을 올렸다. “서명인원 130만 × 100원= 1억3천만원.” 같은 셈법으로, 순식간에 수백 수천명이 접속하고 짧은 시간에 수백만명이 찾는 토론방 누리꾼들이 주목한 책이라면 뜰 만하지 않은가. 집단토론을 통해 자발적 실천지침을 도출한 아고라는 20년 전 “6월항쟁의 국민운동본부 같은 실질적 상징적 운동의 중심”이었다. 5월24일 거리로 진출한 시위는 이후 참여자가 연일 수천~수만을 헤아리다 수십만~일백만명이 모인 6월10일, 7월5일을 정점으로 경찰의 원천봉쇄 속에 소강상태에 접어들었다.

<… 아고라>가 겨냥하는 것은 두 가지다. 먼저 집단토론과 집단실천으로 이어지는 이 모든 과정의 진수를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순식간에 페이지가 넘어가 버리는 초스피드의 사이버 공간에선 사태의 전모를 파악하기 어렵고 인터넷 접근이 원활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은 짐작할 수도 없다. 그런 한계를 인쇄매체를 통해 돌파하자는 것이다. 책에 집약된 아고라를 통해 브로드밴드 직접민주주의, 촛불혁명을 언제든 되살리고 추체험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그 궁극의 목표는 바로 촛불혁명의 완수다. ‘촛불의 추억’은 아직 섣부르다. 촛불은 꺼지지 않고 원천봉쇄 완력 앞에 웅크리고 있을 뿐이라는 게 기획자들 생각이다. 거기엔 드물게 한국인들이 선두에 선 이 장대한 인류사적 실험이 정치적 탐욕의 희생물이 되도록 내버려두진 않겠다는 기백이 스며 있다.(한승동 선임기자)

‘아고라 폐인’ 채수범·나명수씨 “수익금은 시위구속자 위해 쓸 것”

“책 정가의 10%를 인세로 받게 돼 있는데, 사진값 원고료 등 제반 출판비용을 충당하고 남는 돈은 불법 연행, 불법 구금, 불법 구속된 사람들을 변호하고 바른 교육과 바른 언론을 지원하는 일에 쓰겠다.” 책을 만들자고 처음 제안한 사람은 ‘한글사랑나라사랑’이란 닉네임을 단 채수범(37·사진 오른쪽)씨. 부산 출신으로 외국계 건설회사에 다녔고, 한때 <딴지일보>에서 활약하기도 했던 토목기사 채씨는 “올해 안에 한방에 끝장내고 싶었다”고 했다. “추석 때 고향집에 내려갈 때 다들 사 갖고 가서 두고 왔으면 좋겠다. 나이 드신 분들은 인터넷 접속도 할 줄 모르고 해서 그분들이 처음 접하는 매체가 조·중·동이기 십상이다.”

책 출판을 위해 모인 임시 조직 아고라 폐인의 또다른 유력 멤버로, 채씨가 ‘형님’으로 모시는 닉네임 ‘권태로운창’은 원주 출신 나명수(47·왼쪽)씨. “아고라는 금방 페이지가 넘어가버리면 사람들이 제대로 접속도 해보기 전에 쌍방향 즉흥성, 창의성 뛰어난 그 좋은 내용들이 사라져버린다. 인쇄매체를 활용해 온라인의 장점을 제대로 보여주고 싶었다. 언제든 다시 꺼내 살펴볼 수 있고 인터넷을 제대로 활용할 수 없는 사람들, 아고라가 뭔지도 모르는 사람들에게 아고라의 진수를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5월12일께야 아고라에 참여했다는 속독·논술학원 원장 나씨는 “학원 선생님들한테서 아고라 얘길 들었고, 다음에 가입했다. 그 전엔 인터넷 토론을 해본 적도 없다. 아고라라는 게 있는지도 몰랐다”고 했다.

이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이 아고라의 대표성을 갖고 있는 건 절대 아니라면서, 다만 여론 주도층은 있기 마련이고 거기엔 지신들도 속한다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책 만드는 일엔 10여명이 참여했고 그중에서도 간사 1명을 포함해 5명 정도가 주도했다. 수록 글 선정 기준은 “창의적 발상, 기성관념으론 안 되는 참신함과 생산성을 담은 것, 시대문제를 파악하고 실천으로 이어간 글”로 잡았다. 기획부터 출간까지 두 달 정도 걸렸다. 또 하나의 원칙은 “있는 그대로 쌩으로 보여준다”는 것. 간간이 나오는 해설성 안내글들은 채씨 등이 썼다. 원문을 그대로 살리느라 오타도 그냥 뒀다.

촛불 동력이 떨어졌다는 얘기들에 대해 나씨는 “동력 자체가 쇠한 것은 아니다. 잠재돼 있고 행동으로 표출될 기회를 노리고 있을 뿐이다. 연대의식과 의사표현 능력은 더 강해졌다”고 했다. 동력이 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은 경찰의 원천봉쇄 때문이라며, “원천봉쇄하겠다고 나서는 건 그만큼 저들의 위기의식이 강하다는 걸 말해준다”고 덧붙였다. 채씨는 “동력이 떨어졌다는 식의 보도 자체에 문제가 있다”며 줄줄이 터져나올 다음 사건들이 기다리며 쉬고 있을 뿐이라고 했다.

이들은 아고라 최대의 힘은 정치인이나 언론이 거짓말을 할 수 없게 만든 것이라고 했다. 과거 비리나 약속 위반들이 모두 폭로되고 지금의 태도 변화와 비교되는 현실에서 그걸 두려워하는 자는 부패한 자라며, 심 아무개, 이 아무개 등 정권 실세들의 실명을 거론했다. “우리가 반정부 세력인 것이 아니라 저들이 반국민 집단”이라는 말도 했다.

정부가 추진 중인 정보보호 종합대책, 사이버 모욕죄 등에 대해선 “원천적으로 눈과 귀를 막겠다는 것”이라며, 과도한 통제로 인터넷 후진국이라 손가락질당한 중국 같은 처지로 퇴보하는 짓이라고 비난했다. 이들은 탄압이 계속되면 나라 밖에 서브를 구축하는 ‘아고라 망명정부’까지 구상하고 있다고 했다.

08. 07.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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