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미롭게도 한국일보의 '오늘의 책(7월 16일)'에서 <지젝이 만난 레닌>이 다루어졌기에 옮겨놓는다. 이유인즉 1918년 오늘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가 살해되었기 때문이다. 오늘 '니콜라이와 알렉산드라'(http://blog.aladin.co.kr/mramor/2187941)를 올려놓으면서도 날짜까지는 확인하지 못했었는데, 레닌이 1900년 스위스로 망명한 날과 겹친다고 하니까 이 또한 역사의 우연이라 할 만하다.    

한국일보(08. 07. 16) 지젝이 만난 레닌

7월 16일은 러시아혁명사에서 두 가지 중요한 사건이 일어난 날이다. 1918년 오늘 러시아의 마지막 차르였던 니콜라이 2세가 살해됐다. 그리고 1900년 오늘, 3년 동안 시베리아에 유형됐던 레닌이 스위스로 망명했다. 18년 사이 세계는 바뀌어버렸던 것이다.

1917년 2월혁명으로 퇴위한 니콜라이 2세는 당시 우랄산맥의 광산도시 에카테린부르크에 감금돼 있었다. 김학준의 <러시아혁명사>에 차르와 아내 알렉산드라, 아들 1명과 막내딸 아나스타샤 등 딸 4명의 살해 장면이 나온다.

“유로프스키는 10명의 무장한 사람들과 함께 나타났다. 그는… 이제 우리는 당신들을 사살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선언했다. 니콜라이 2세가 본능적으로 벌떡 일어나 ‘뭐라고’ 하면서 아내와 아들을 막아보려 했다. 그 순간 체카 대원들이 일제히 그를 향해 총을 쏘았다. 그는 즉시 죽었다… 그냥 기절해 쓰러졌던 아나스타샤가 의식을 회복하곤 소리를 질렀다. 다시 모든 체카 대원들의 난사가 뒤따랐다.” 광산 등에 흩어져 암매장됐던 차르 일가의 유골들이 확인된 건 80여년이 지난 1996년이 되어서다.

한 세기나 전, 러시아 마지막 황제의 죽음과 실패한 레닌의 혁명 이야기를 지금 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 현재 최고의 스타 마르크스주의 철학자인 슬라보예 지젝(59)이 <지젝이 만난 레닌>(2002)에서 던지는 질문도 바로 그것이다. 그는 레닌이 1917년에 쓴 핵심적 문건들을 이 책의 전반부에 모아놓은 후, 책의 후반부에서 21세기의 현실을 레닌의 텍스트들에 대입해 해석한다. “레닌을 재현실화한다는 생각에 대한 공중의 첫번째 반응은 물론 빈정거리는 폭소다”라고 지젝은 책의 첫머리에 쓴다.

그러나 그는 다가올 자본주의의 위기 상황이 1917년 레닌 앞에 놓였던 상황의 되풀이일지 모른다고 말한다. “우리는 목욕물을 버리면서 아기까지 함께 버린 것은 아닌가?” 레닌의 텍스트, 펜이 곧 무기였던 그의 글에 들어있는 ‘유토피아의 불꽃’은 여전히 우리 시대의 문제로 되살려내야 한다는 이야기다.(하종오기자)

08. 07. 16.

P.S. 아예 레닌을 주제로 한 학술심포도 얼마전에 개최된 바 있다. 이 관련기사도 스크랩해 놓는다(더 자세한 것은 http://www.greenbee.co.kr/blog/296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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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08. 07. 10) 왜 지금 레닌을 소환하는가?

'촛불 시대에 다시 생각하는 레닌과 러시아혁명.’ 8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그린비 출판사가 주최한 학술심포지엄의 주제다. 왜 지금 갑자기 레닌인가? 이진경 서울산업대 교수는 발제문 ‘레닌의 정치학에서 외부성의 문제’에서 “지금 레닌을 불러낸다는 것은 뼈아픈 실패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거기서 혁명 혹은 혁명적 사유에 대해 다시 사유하는 것”이고 “그 실패를 통해 새로운 출구를 찾는 것”이다. 이 교수는 모든 혁명은 자신의 시대와 대결하고, 주어진 세계를 전복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반시대적 사유’일 수밖에 없다며, 따라서 현실 사회주의 몰락 이후 혁명 자체가 낡은 것으로 간주되는 지금이야말로 레닌과 혁명에 대해 사유하기에 좋은 시대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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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노자 오슬로대 교수는 ‘민주주의자로서의 레닌’에 주목했다. 박 교수는 그 이유로 자본주의가 새로운 주기적 위기를 맞고 있는 지금의 대의 민주주의 위기상황을 들면서, ‘촛불집회 정국’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줬다고 했다. 그는 촛불을 든 민초들의 ‘직접적 참여 민주주의’가 건강권과 주권 문제 등에서 국회를 대신해 정국을 일변시켰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촛불 민주주의가 미국산 쇠고기 수입이나 대운하 계획 등을 반대하고 저지할 수는 있지만 “신용을 잃어가는 대의 민주주의 기관(국회 등)들을 대신하는 ‘대안적 집권기관’”이나 “구체적인 민중적 주권행사 기관”으로 발전하진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가 내놓은 대안은 노동자 또는 주민 평의회, 곧 소비에트다. 물론 ‘대안적 권력 창출’을 이야기할 단계가 아니지만, 그는 “비정규직과 정규직, 대기업과 소기업 소속 등을 초월하는 ‘노동자 평의회’ 건설과 지역정치에의 활발한 참여는 한국 민주주의의 심화에 상당한 공헌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지금의 헌정질서 안에서 그것은 ‘시민단체’의 외형을 띠면서 권력화가 아니라 계급적 연대 수준에 머물겠지만, 그럼에도 “고용형태, 성별, 연령, 소속 기업 규모 등의 구분을 뛰어넘어 대자적인 계급으로서의 새로운 성숙을 의미할 수 있을 것”이라 전망한다. 그는 그러면서 볼셰비키당의 권력독점과 혁명의 왜곡으로 귀결된 정당 정치인 레닌이 아니라 <국가와 혁명>을 쓸 당시의 레닌을 살려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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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닌의 제헌권력, 그 열림과 닫힘’이란 글을 발제한 조정환 다중네트워크센터 대표도 <국가와 혁명>에 주목했다. 조 대표는 한때 한국 사회를 풍미한 사상가 레닌이 급속히 잊혀진 주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한국에 도입된 레닌이 <두 가지 전술>, <무엇을 할 것인가>의 레닌, 말하자면 1905년 부르주아혁명 단계의 레닌이었지 <국가와 혁명>, <4월 테제>의 레닌, 곧 1917년 프롤레타리아 혁명 단계의 레닌이 아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1987년 체제’와 함께 제헌의회파의 주장은 힘을 잃었으며, 신자유주의적 자유화와 함께 확장된 형식적 민주화는 비합법 전위정당 노선과 부르주아 민주주의 혁명가 레닌의 용도 폐기를 낳았다는 것이다.

그러면 <국가와 혁명> 단계의 레닌이 답인가? 조 대표는 권력, 무장력, 폭력, 민주집중제, 소비에트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제헌권력 등 레닌의 개념들은 근대적 부르주아 사회체제 범주를 벗어날 수 없다며, 낡은 의회조직이나 국가는 “삶 속에서 제기되는 문제들에 대한 다중들 자신의 직접적 토론과 행동적 표현을 통한 직접적 제헌적 결정과정”으로 대체하고, 이를 제도화할 절대 민주기관을 창출해야 한다고 제안한다.(한승동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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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17 12:45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8-07-17 12:49   URL
비밀 댓글입니다.

노이에자이트 2008-07-17 23:11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이 심포지움에 나온 사람들의 주장은 초대교회정신으로 돌아가자는 기독교인들과 비슷하군요.

로쟈 2008-07-18 13:52   좋아요 0 | URL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