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강은 코앞이고 할일은 산더미인지라 가급적 '서재질'을 자제하고 있는데(덩달아 도서 구입도 자제하고 있다. 그래봐야 플래티넘 회원에서 떨어지는 건 요원하지만), 그럼에도 어떤 책들은 손가락을 가만 내버려두지 않는다. 어쩌면 '비열한 유전자' 탓인지도 모르겠다(책에 대한 호기심을 유독 주체하지 못하는 걸 보면 비열하면서도 좀 특이한 유전자이겠다). 문제의 책은 테리 번햄의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갤리온, 2008)이다.

 

 

 

 

부제는 '예측할 수 없는 시장을 꿰뚫는 현대 경제학의 새로운 패러다임'이고 '경제이론서'로 분류돼 있는데, 사실 이런 분야의 관심도서는 내 경우 일년에 몇 권 되지 않는다. 게다가 분류는 '이론'이지만 "하버드 경제학 교수가 쓰고, 노벨 경제학상 수상으로 증명된 실전 투자 경제학"이란 소개를 참조하면 오히려 '실전'에 가까운 책(이런 책을 내가 손에 드는 건 몇 년에 한 권 될까 말까이다!).

알라딘의 소개는 "주류 경제학의 맹점을 통렬하게 비판하고, 복잡하고 비합리적인 시장과 개인의 투자 패턴 및 경제적 선택을 날카롭게 분석한다. 또 지금 독자의 투자 패턴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일깨운다. 주식, 부동산, 채권, 모기지, 인플레이션, 저축 등 구체적인 분야를 살피며, 어떻게 돈을 벌 수 있는지 지금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효과적인 투자법을 제시한다."로 돼 있고, "시골 의사의 부자 경제학'의 저자 박경철, 카이스트 정재승 교수, 미래에셋투자교육연구소 이상건 이사가 강력히 추천하는 화재의 책!"이란 광고도 곁들여져 있다. 형편이 '투자'와는 전혀 무관한지라 나로선 "복잡한 시장을 알기 쉽게 풀이하는 탁월한 교양서"정도로 접수할 참이다.

사실 '비열한'이란 제목이 뭔가 상기시키는 바가 있어서 찾아보니 저자는 예전에 <비열한 유전자>(너와나미디어, 2003)를 공저한 바 있다. 그맘때 적은 '최근에 나온 책들'(http://blog.aladin.co.kr/mramor/878617)을 보니 이렇게 적어놓았다.

테리 번햄과 제이 펠란 공저의 <비열한 유전자>(너와나 미디어). 이건 어제 강남 영풍문고에 들렀다가 우연하게 집어든 책이다. 아무런 사전정보가 없이 제목이 눈에 띄어 집어들었는데, 에드워드 윌슨의 세 줄짜리 추천사가 없었다면, 그냥 싸구려 과학서로 내려놓을 뻔한 책이다. 저자들은 모두 윌슨의 제자들로서 하버드에서 경영학과 생물학 학위를 했다. '유전자 안내서(매뉴얼)'로 분류될 책의 서론에서 저자들은 "우리 자신과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지그문트 프로이트를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찰스 다윈을 연구하는 것이다."(19쪽)라고 말한다.

내가 왜 '븐능적'으로 <비열한 시장과 도마뱀의 뇌>란 책에 끌렸는지 이 정도면 알 것 같다. 나의 관심은 진화론과 경제학의 만남에 있는 것. 감이 안 오는 분들은 당시의 한 리뷰기사도 참조해볼 수 있겠다.  

"지방이 가득한 음식을 좋아하고,아내 아닌 다른 여자를 탐하는 것은 자신의 몸 속에 있는 유전자 탓이다. 카지노에서 월급을 탈탈 털려 버려도 또 도박을 하고 싶은 것도 마찬가지다." <비열한 유전자>는 이 같은 인간의 탐욕과 도박 심리, 불안 등 생활 전반에 나타나는 현상을 진화론을 들어 설명하고 있다.

이 책은 사람들이 저축하기 힘든 이유를 이렇게 설명한다. 원시시대에 가장 훌륭하고 쉬운 저축 수단은 사냥을 하는 즉시 먹어 치우는 것이었다. 저장해 놓을 곳도,저장해 놨다고 해도 남에게 곧 빼앗길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이렇게 우리 유전자가 진화해왔기 때문에 지금도 저축은 힘들다고 한다. 몸은 여분의 영양분을 지방으로 바꿔 저장한 뒤 굶을 때 사용한다. 포르노도 성적인 본능을 이용한다고 해석했다. 저자는 원초적인 욕망이 유전자에 의해 나타나고 때로는 자제할 수 없게 되는 경우가 많지만, 그럼에도 의지력을 발휘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이 동물과 구별되는 큰 차이라고 해석한다. 


 

 



문제는 이 '비열한 유전자'가 남도 아닌 우리 자신을 구성하고 있다는 것(우리 안의 도마뱀!). 이 점은 '실전 투자자'들뿐만 아니라 '인문학자'들도 좀더 유의해야 할 대목이라고 나는 생각한다(이게 다윈주의 좌파의 문제의식이기도 하고. 이에 대해서는 http://blog.aladin.co.kr/mramor/1486776 참조. '다윈의 대답'은 왜 계속 이어지지 않는 걸까?)...

08. 0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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