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대 그리스에 대한 최고의 입문서'라는 책이 출간됐다. 이름이 입에 익지는 않은데, H. D. F. 키토의 <고대의 그리스, 그리스인>(갈라파고스, 2008)이 그것이다. 알고 보니 저자는 그리스 고전 비극의 번역자로도 잘 알려진 학자이다(내가 갖고 있는 옥스포드판 소포클레스도 그의 번역이다). 1951년에 출간돼 그간에 수백만 부가 팔려나갔다고 하니까 '고대 그리스'에 관한 가장 저명한 책이기도 할 듯하다. 소개기사를 옮겨둔다.

조선일보(08. 02. 23) 그리스인, 지시에 따르는 삶을 거부하다

1951년 펠리칸 총서의 하나로 발간돼 수백만 부가 팔린 고대 그리스 입문서다. 그리스의 형성, 암흑기를 거쳐 폴리스 성립, 아테네 민주정, 융성과 쇠퇴 등을 풍부하게 그려낸다. 평생을 그리스 연구에 바친 저자는 '폴리스'를 '도시국가'로 부르는 것은 나쁜 번역이라고 비판한다. 폴리스는 도시와 비슷하지도 않았고 국가와는 완전히 달랐다는 점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

그리스의 보통 사람들은 '일리아스'가 시작되는 장엄한 장면을 외우다시피했다. 시인, 조각가, 철학자, 과학자는 물론 농촌의 수공업자도 그랬다. "인간의 왕인 아가멤논과 위대한 아킬레우스의 첫 다툼부터 노래를 시작하라. 이들을 적으로 만든 것은 어느 신의 작품인가? 제우스와 레토의 아들 아폴론이다…."

유럽 최초의 시인 호메로스가 쓴 문학작품은 이렇게 건조하다. 그는 '일리아스'에서 전쟁의 일부를 묘사하려 하지 않았다. 곧장 주제로 달려들었다. 이런저런 감상들로 이야기를 채색하려 하지 않고 자신이 고른 주제, 즉 전쟁의 한 국면을 마치 원재료처럼 사용했다. 이런 특징은 고전기 그리스 시인들 모두에게서 발견된다.

'일리아스'를 만든 것은 전쟁 같은 외적 요인이 아니었다. 두 인간의 분쟁이 수많은 이들에게 고난과 죽음과 불명예를 안겨준다는 비극적 개념이 이 서사시의 뿌리였다. 원인이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 그의 주제였다. 트로이의 높이 솟은 성벽, 철썩거리는 스카만드로스강 같은 배경이 보이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그리스인들에겐 진지한 비극이 대중예술이었다. 그들은 지시에 따라야 하는 삶, 전문적인 기술에 몰두해야 하는 삶을 거부했다. 현실감각이 떨어지는 것 같지만 "역사상 처음으로 인생의 의미를 해석하고 지적 능력을 온전히 구사한 사람들"이다. 서양중심주의적인 표현들이 흠이지만 지식 너머에 있는 본질에 다가가려고 한 교양서다. 원제 'The Greeks'(박돈규기자)

08. 02. 25. 

P.S. 책을 '오래된 새책'으로 분류하는 것은 예전에 출간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 문화사: 그 역사와 문화>(탐구당, 1984)가 바로 그 책이다. 오래전에 서점에서 자주 보던 문고본인데 내가 소장하고 있는지는 불확실하다(현재 안 갖고 있는 건 확실하지만). '입문서'로서의 명성에 기대어 한번쯤 손에 들어봄 직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2)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