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세대 대학원신문에서 '러시아 혁명기 문학읽기'를 테마로 한 기획서평을 옮겨온다(http://www.dambee.net/news/read.php?section=S1N5&rsec=&idxno=8069). 서평의 대상이 된 책들은 이 시기 드라마 세 편을 묶은 <광장의 왕>(글누림, 2007)과 플라토노프의 <구덩이>(민음사, 2007)이다. 당초 작년 가을 러시아 혁명 90주년과 맞물려 기획된 것으로 아는데, 온라인 기사는 해가 넘어서야 올라왔다(나는 기사의 필자를 주선한 인연을 갖고 있다). 자료로 스크랩해놓는다(아래는 고리키 작 <태양의 아이들>의 한 장면).

 

연세대 대학원신문(157호) '사랑하는 자만이 불가능을 알며…’

20세기 초 러시아 문화 공간은 인류 예술사의 어느 지점보다 흥미롭고 역동적이다. 예술은 작품의 내적 공간을 넘어서 현실과 혁명의 과정에 역할하고, 정치적 현실은 때로는 예술을 위기로 내몰고, 때로는 화려한 부활의 기반이 되기도 했다. 이 시기, 혁명 이념은 예술의 모더니즘과 격렬하게, 그리고 행복하게 만나고 있었다. 1905년의 러시아 혁명(기든스나 아렌트의 시각에서 보자면 엄밀한 의미에서의 혁명이라 불릴 수는 없지만)을 이야기하는 세 편의 드라마가 수록된 『광장의 왕』과, 1917년 혁명 성공 이후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고자 하는 공산주의 ‘프로젝트’에 대한 보고서 『구덩이』는 당시 혁명과 문학적 삶의 관계를 보여주는 치열한 증거라 할 수 있다. 

실패한 혁명에 대한 세 편의 드라마 - 『광장의 왕』
『광장의 왕』에는 상징주의의 대표적 시인 블로크의 『광장의 왕』,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대가 고리키의 『태양의 아이들』, 은세기 극작가인 안드레예프의 『별들에게』가 수록되어 있다. 역자가 언급하듯, 이 드라마들에는 ‘1905년 러시아 혁명을 바라보는 세 가지의 서로 다른 시선’이 교차하고 있다.

블로크의 드라마 『광장의 왕』에는 실패한 혁명에 대한 비극적 인상이 지배적이다. 늙어버린 광장의 왕은 더 이상 이 세계를 구원할 수 없고, 등장인물들은 구원을 가져다 줄 배를 기다리고 있다. 아름다움과 조화가 발현되는 고대 사회를 희망하는 조드치와 고대 그리스적 미의 현현인 그의 딸(블로크의 시 ‘낯선 여인’의 형상과 유사하다), 그리고 광장의 왕은 유토피아적 이상을 상징하며, 배를 기다리는 광대와 ‘소문들’은 그와 괴리된 현실을 보여준다. 시인은 이들 사이에서 부단히 동요하고 있다. 결국 기다림에 지친 군중에 의하여 왕과 시인, 그리고 조드치의 딸은 파멸하게 된다.

『태양의 아이들』에는 소설가 못지않은 극작가로서의 고리키의 대가적 면모가 드러나 있다. 작가는 인텔리겐차와 프롤레타리아의 극복될 수 없는 거리와 서로에 대한 몰이해에서 1905년 혁명 실패의 근본적 원인을 찾고 있다. 콜레라가 창궐하고 혁명이 발발한 외부 세계, ‘야수들로 가득한 삶’과 철저히 차단되어 과학과 이성의 성벽 안에 갇혀 지내는 인텔리겐차들은 민중들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화학자 프로타소프는 자신을 해하려한 ‘민중’ 예고르를 혐오하면서, “사람들은 반드시 밝고 선명해야 해... 태양처럼......”(277쪽)이라고 말을 맺는다. 그렇지만 ‘인간’이라는 글자를 늘 대문자로 쓰곤 했던 고리키적 시각에서 이들 두 진영 어느 쪽도 아직은 진정한 의미에서의 ‘인간’, 즉 ‘태양의 아이들’은 아니었다.

드라마 『별들에게』에서 안드레예프는 혁명에 대한 아버지와 아들 세대의 대립적 관계를 보여준다. 인간 이성과 영원성에 대한 천문학자 테르노프스키의 확신은 혁명에 의한 현실 전복을 꿈꾸는 아들 니콜라이와 그의 약혼녀 마루샤의 실천적 유토피아 이념과 대립된다. 극의 종결부에서 죽은 니콜라이를 따라 혁명으로, 즉 ‘삶으로 가겠노라’는 마루샤의 말에 테르노프스키는 “얼굴을 가지고 있지 않은 야수들만 죽는다. 죽이는 자들만 죽는다. 하지만 죽임을 당한 자, 찢긴 자, 불태워진 자들은 영원히 산다. 인간에게 죽음은 없다, 영원의 아들에게 죽음은 없다(148쪽)”며 죽음을 통한 불멸의 테마를 역설한다. 

세 작품을 지배하고 있는 비극적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작가들이 실패한 혁명에서 절망만을 보고 있지 않았음은 명백하다. 고리키는 “인텔리겐차와 프롤레타리아 사이의 심연이 아무리 깊다고 해도, 이 심연을 넘는 다리를 놓는 것이 아무리 어렵다 해도”, 민중출신이면서 “점차로 고양되어 지식의 정상에 도달한” 인텔리겐차의 등장으로 이 간극이 극복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다(고리키의 인터뷰, 287쪽). 작가의 이러한 믿음은 이후 장편 『어머니』(1906)에서 파벨의 형상을 통해 체현되며, 1917년 혁명 이후에는 수많은 프롤레타리아 출신의 인텔리겐차가 나타남으로써 현실이 된다. 그 가장 적합한 예가 바로 안드레이 플라토노프이다.

‘잉여의 사랑’, 또는 ‘성취의 멜랑콜리’-『구덩이』
플라토노프(1899-1951)는 그야말로 ‘혁명이 길을 열어준’ 프롤레타리아 작가였다. 뼛속까지 스스로를 공산주의자라고 여겼던 플라토노프는 역설적이게도 대표적 ‘반소비에트 작가’로 취급되며, 발표하는 작품마다 냉소적이고 풍자적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1930년대 대숙청의 시기에 스탈린은 작가의 열다섯 살 된 아들을 반체제 음모죄로 유형을 보내고, 아들 플라톤은 유형지에서 얻은 폐결핵으로 사망한다.

그럼에도 부단히 스탈린의 유토피아와 화해하려했던 작가는 그와 같은 의도를 담은 단편 「귀향」(1946)마저 ‘저주받을 작품’이라는 비난에 처하자, 더 이상 회복되지 못할 정도의 타격을 입고 아들에게 감염된 폐결핵으로 죽게 된다. 『체벤구르』, 『구덩이』, 『행복한 모스크바』를 비롯한 주요작품들은 작가 생존시에 출판되지 못했지만, 사후 영미문학권을 중심으로 번역, 출판되기 시작했고, 페레스트로이카 이후에는 러시아에서도 각광받기 시작했다.



프레데릭 제임슨의 『시간의 씨앗』에도 언급되듯이, 『구덩이』는 비슷한 시기의 장편 『체벤구르』와 더불어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디스토피아 소설 중 하나로 읽힌다. 가상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하는 자먀틴이나 오웰, 헉슬리 등의 소설과 달리 『구덩이』는 1920년대 말 스탈린의 ‘대변혁기’ 당대의 현실을 그린다. ‘전체인민의 집’을 짓기 위해 모인 노동자들은 건물의 토대가 될 구덩이를 파고 있다(소설제목은 건물을 짓기 위한 기초 공사용 구덩이를 뜻한다. 러시아는 동토라 건물을 지을 때, 토대를 깊고 넓게 판다). 소설 후반부는 부농 척결과 집단화가 진행되는 농촌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의 언어와 사건들은 너무나 현실적이기에 오히려 그로테스크하며 낯설다. 잘 읽히지 않는 소설 언어는 브로드스키가 일찍이 번역이 불가능하다고 말했던 ‘시대의 언어’, ‘유토피아의 언어’였다. 이 서걱거리는 말들은 스탈린적 유토피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개인의 사유를 방해하는 국가의 말은 주인공들의 의식에 침투하고, 작가는 이들의 말을 자기 서술에까지 확대함으로써 유토피아가 강제하는 이념적 속성을 노출한다.

그렇지만 소설은 현실에 대한 풍자로만, 또는 블로흐식의 이미 이루어진 것들에 대한 회의, ‘성취의 멜랑콜리’로만 읽히지 않는다. ‘진실 없이 살아가는 삶에 대한 부끄러움’이라는 보쉐프의 말에서 볼 수 있듯 작가는 유토피아 건설의 이념을 인간 존재 방식 전체에 대한 의문으로 확대하고 있기 때문이다.

소설 말미에 사회주의 건설의 상징이자 노동자들의 희망이던 소녀 나스탸는 갑자기 죽게 되고, 미래의 집을 위해 파내려간 구덩이는 소녀의 무덤이 된다(아이의 희생이라는 테마는 다분히 도스토예프스키적이다). 작가는 당시의 정치적 상황에서는 일견 무모해 보이기까지 하는 이러한 결말이 대상에 대한 부정적 관계(풍자)에서가 아니라, 반대로 ‘잉여의 사랑’에서 나온 것임을 강조한다. “소녀의 죽음으로 사회주의 세대의 파멸을 묘사한 것은, 작가의 실수일 수도 있다. 그렇지만 이 실수는 단지 그의 상실이 모든 과거와 미래의 파멸과도 같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잉여의 불안감 때문이다.”(『구덩이』의 에필로그)

암울했던 혁명과 내전의 시기를 겪어낸 러시아의 1920년대는 다양한 예술적 실험들이 가능한 ‘대화와 대안의 시대’였다. 혁명이념에 고취되어 새로운 세계 건설의 기대에 들뜬 예술가들은 저마다의 유토피아를 꿈꾸면서 실험적 작품들을 선보였다. 국내에도 번역된 불가코프, 자먀틴, 필냐크, 올레샤 등의 작품에서 볼 수 있듯, 당시의 산문들은 형식과 내용, 문체에 있어서 마치 누보로망의 그것처럼 현란하다. 이런 맥락에서 플라토노프의 소설도 아직은 대화가 가능했던 시기의 예술적 시도로 볼 수 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이러한 ‘대화와 대안’의 실험들은 1934년 사회주의 리얼리즘 강령의 발표 이후 오직 하나, ‘독백’의 길로 귀결된다.



포스트-포스트소비에트 시대의 소비에트 문학읽기
지상에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던 공산주의자들의 실험은 20세기의 종결과 더불어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린 듯하다. 실패한 역사의 흔적들을 재빨리 폐기하는 것, 맥도날드 표지와 레닌 초상이 함께 찍힌 티셔츠를 팔면서 과거로부터 자유로운 척하려는 제스추어에서 우리는 포스트소비에트 시대 러시아의 문화적 경향을 읽을 수 있었다. 그런데 페레스트로이카 이후 이십년 가까운 시간이 흐른 포스트-포스트소비에트 시대에는 친소비에트/반소비에트라는 말조차 더 이상 유표가 아니다. 고리키의 『어머니』도, 솔제니친의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도 이제는 이념적 맥락에서 읽히지 않는다. 이들은 추리소설이나 연애소설, 또는 『해리포터』에 밀려 서가의 뒤편에 나란히 꽂혀 있다.

그렇지만, 그럼으로 해서 소비에트러시아문학은 오늘날 새롭게 읽힐 수도 있다. 혁명을 꿈꾸지 않는 시대, 혁명이란 말에 무감각한 독자들이 ‘문학’과 ‘유토피아’가 동의어였던 혁명기 러시아 문학을 만날 때에, 진정 이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예술적 체험이 가능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만이 불가능을 알고, 그 불가능한 것을 죽도록 원한다. 그리하여 마침내 이를 가능케 할 것이다......”(플라토노프, 「태양의 후예들」)라는 젊은 공산주의자의 낭만에 가득한 선언이 혁명이 불가능해 보이는, ‘아름답지만 여전히 광포한 이 세상’에서 어떤 식의 힘을 발휘할 수 있을지 의문이지만 말이다.(윤영순_경북대 노문과 강사)

08. 01. 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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