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출간된 서구 정치사상서/정치사상사 두 권에 대한 소개가 발 빠르게 올라와 있기에 옮겨놓는다. '정치 혐오시대'를 성찰해보는 데 도움이 될 만하다(월린의 <정치와 비전> 원서의 목차와 해제는 http://press.princeton.edu/chapters/s7767.html 참조).

경향신문(07. 12. 25) 정치 혐오시대 비전은 없는가…서구민주주의 비판서 잇단 출간

“대의제도는 더 이상 유권자들을 대변하지 않는다. … 선거는 기업들이 지배하는 언론매체를 통해 걸러진 국내외 정치 정보를 갖고 있는, 기껏해야 절반에 불과한 유권자들의 눈길을 끌어왔던, 엄청난 정부예산의 지원을 받는 ‘행사 아닌 행사’가 되었다.”

미국의 저명한 정치사상가 셸던 월린(85)이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막 시작됐던 2003년 5월 ‘더 네이션’에 기고한 글의 일부다. 이듬해 월린은 자신이 1960년에 써서 서구 정치사상사의 고전이 된 ‘정치와 비전-서구정치사상사에서의 지속과 혁신’을 반세기 만에 대폭 증보해 다시 내놓았다. 이 책에서 월린은 지금의 미국 민주주의를 ‘전도된 전체주의’로 규정했다. ‘전도됐다’는 것은 나치 독일의 경우 전체주의 성향의 난동꾼들이 ‘거리’를 점령했으며 민주주의적인 것은 오직 정부뿐이었던 반면, 현재 미국의 경우 진정한 위험은 구속받지 않는 정부에 있고 민주주의가 가장 살아있는 곳은 ‘거리’라는 통찰에서 나왔다.



-“오늘의 미국 전도된 전체주의”-
월린의 ‘정치와 비전’(후마니타스)이 최근 국내에 소개됐다. 강정인 서강대 교수 등이 총 3권 분량 중 1권을 먼저 번역했다. 1권에는 철학에 대한 정치철학의 관계, 플라톤 정치철학, 로마공화정의 공간과 공동체, 루터와 칼빈 시대의 정치적인 것 등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 책에 담긴 월린의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은 전체 유권자의 30% 정도 되는 지지로 차기 대통령에 당선된 이명박씨가 ‘대통령 직선제 실시 이후 2위 후보와 최다 표차로 당선된 후보’로 연일 회자되는 한국사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과연 선거는 민주적인가, ‘데모스(Demos)’가 ‘시민’에서 ‘간헐적인 투표자’로 전락한 것을 어떻게 봐야 할까 하는 의문을 갖고 있는 이들에게 이 책은 2500년 전 이래의 서양 정치사상의 현재적 의미는 물론 ‘정치에 대한 혐오’를 벗고 어떻게 ‘비전’을 상상할 것인지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사상가 월린 제도밖 참여 강조-
‘정치적인 것의 귀환’을 쓴 샹탈 무페나 ‘어떤 민주주의인가’를 쓴 최장집과 마찬가지로 월린의 과제 역시 ‘정치적인 것’의 재활성화다. 다만 앞의 두 사람과 달리 월린은 제도나 체제 밖의 운동적 참여를 강조한다. 그는 ‘정치적인 것’의 본질을 자본이나 기업이 가진 ‘사적 이익 추구 속성’이 아닌 ‘공통적이거나 일반적인 것’ ‘공적인 것’과 같은 것으로 보지만, 대의제 민주주의나 헌정 민주주의로 대표되는 현대 서구 민주주의가 진정한 시민됨의 가치를 살리지 못한다고 본다. 그에게 진정한 민주주의적 경험은 펠레폰네소스 전쟁에서 아테네가 패하기 전까지 실현된 기원 전 5세기쯤 아테네 민주정과 17세기 영국 내전 당시 민주적 반란기, 19세기 미국 민중주의자들의 경험, 1960년대 미국 신좌파의 경험 등이다.



-근대 정치철학 망라 개론서도-
비슷한 시기에 나온 ‘서양 근대 정치사상사-마키아벨리에서 니체까지’(책세상)도 ‘정치 혐오의 계절’에 읽을 만한 책이다. 이 책은 강정인·김용민(한국외대)·황태연(동국대) 교수 등 12명의 국내 학자들이 니콜로 마키아벨리, 토머스 홉스, 존 로크, 장 자크 루소, 이마누엘 칸트, 에드먼드 버크, 카를 마르크스, 프리드리히 니체 등 근대국가의 권력을 논했던 21명의 정치사상을 각 장별로 알기 쉽게 소개한 정치사상 개론서다. 지금은 폐간된 ‘계간 사상’에 실렸던 16편의 논문에 3편을 새로 추가해 펴냈다.

특히 ‘근대 보수주의의 원조’로 불리는 에드먼드 버크에 대한 글은 이명박씨의 당선으로 ‘신보수 시대’로 접어든 한국사회와 관련해서도 음미할 부분이 많다. 이 외에도 이 책에는 미국 연방 헌법을 비준하기 위해 해밀턴, 매디슨, 제이가 신문에 기고한 글들을 묶은 ‘연방주의자 논설’을 미국 헌법이 얼마나 다양한 정치철학적 유산에 빚지고 있는지의 관점에서 분석한 ‘페더럴리스트’에 대한 분석 등이 담겼다.(손제민기자)

07. 12. 25.

P.S. 월린의 책으로 <정치와 비전>과 함께 눈에 띄는 건 <토크빌>이다(http://press.princeton.edu/titles/7132.html). <두 세계 사이의 토크빌: 한 정치적 이론적 삶의 역정>(보급판 2003) 정도가 원제다. 664쪽 분량이니까 '토크빌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손색이 없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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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경 2007-12-26 18:40   좋아요 0 | URL
기사중에 두번째 문단에 '구속받지 않는 정부'에 눈이 걸리네요. 구애나 '구속되지' 않는 정도로 읽히는데 별로 중요한 건 아닌데 ^^;;

로쟈 2007-12-26 21:35   좋아요 0 | URL
원문은 어떤지는 나중에 확인해봐야 알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