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주간 북매거진 SKOOB 11호에 기고한 글을 옮겨놓는다. 책은 아직 받아보지 못해서 어떻게 편집/교정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원고와 큰 차이는 없을 거 같고, 다만 목차를 보니 타이틀은 '왜냐고 물으신다면에 관한 합리성의 두 가지 잣대'로 붙여졌다(보통 원고의 제목은 편집자들이 붙인다). 지난달에 출간된 <왜 버스는 세대씩 몰려다닐까>(한겨레출판)와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 두 권에 대한 간략한 리뷰가 나의 몫이었는데, 후자는 관심을 갖고 있던 책이었기에 덥석 청탁에 응했다. 더불어 아주 짧은 분량이기도 했고. "주요 온라인 서점의 상위 5% VIP 고객 중 선착순 5만 명에게 격주로 배포되는 프레스티지 도서문화잡지"이기에 접하지 못할 분들이 많을 것이므로 공개해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다(*책이 와서 찾아보니 제목은 '세상은 아무 죄가 없나니'이고, '왜냐고 물으신다면...'이 부제이다).
스쿱(11호) 왜냐고 물으신다면에 관한 합리성의 두 가지 잣대
리처드 로빈슨의 <왜 버스는 세대씩 몰려다닐까>(한겨레출판)와 마이클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바다출판사)는 부피는 서로 달라도 유사한 제목으로 흥미를 끄는 책 두 권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인 두 저자는 각각 ‘머피의 법칙’과 ‘사이비 과학’에 과학적 설명이라는 합리성의 잣대를 갖다 댄다. 그리고 ‘세상’은 실상 아무 죄가 없으며 문제는 ‘우리’ 자신에게 있다는 것을 밝혀준다.
인간은 복잡하고, 변덕스럽고, 우연적인 세계에서 끊임없이 의미와 패턴을 찾으러 다니는 동물이다. 그러한 속성이 진화과정에서 우리에게 유리한 기제로서 유전되었다. ‘얄미운 짓’을 하는 사물들에 대한 짜증과 이상한 것들에 대한 믿음은 그런 기제에 의해 양산된다. 하지만 이 기제는 완벽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수유를 하지 않는 남자에게도 젖꼭지가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합리적 명분보다는 진화론적 타산을 따른다. 물론 젖꼭지는 수유를 하는 여자들에게만 필요하지만 자연의 입장에서는 남자와 여자의 유전적 구조가 다르게 재구성하기보다는 남자가 불필요한 젖꼭지를 갖도록 하는 것이 훨씬 쉽고 ‘비용’이 덜 든다.
자몽 즙이 튀면 왜 꼭 눈 속으로 들어가는가? 실제로 즙이 눈 속으로 들어갈 확률은 매우 희박하지만 한번이라도 그런 경험을 갖는다면 우리의 뇌는 언제나 그 기억을 환기시킨다. 불운이 언제나 세 가지씩 짝을 지어 다니는 것도 마찬가지다. 불운은 조금씩 꾸준히 찾아오지만 기억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다른 기억들과 연계되면서 ‘세 가지’ 불운을 부지런히 찾아낸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세대씩 몰려다니는 버스는 조금 다른 성격의 사례다. 이 경우는 잘못 계산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 근거를 갖는 것이기 때문이다. 첫 번째 버스가 승객을 태우는 동안 두 번째 버스와의 거리는 더 가까워지는 식이 되기에 결과적으로는 세대씩 몰려다니게 되기 때문이다.
‘세 대의 버스’와 ‘세 가지 불운’에 대한 사고는 각각 인과적 사고와 마술적 사고로 대비될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이 마술적 사고가 남자의 젖꼭지처럼 불가피한 산물이라는 점이다. “우리는 비판적 사고와 패턴 찾기가 필요하기 때문에 마술적 사고와 미신을 가진다. 둘은 서로 떼어놓을 수 없다.”고 ‘회의주의자’ 마이클 셔머는 말한다. 우리 뇌의 ‘믿음 엔진’은 야누스의 얼굴을 갖고 있는 것이다.
과학의 세기라고는 하지만 아직도 미국인의 96퍼센트가 신의 존재를, 90퍼센트가 천국의 존재를, 그리고 79퍼센트가 기적을, 72퍼센트가 천사의 존재를 믿는다고 답했다. 목록을 좀 달리하면 우리도 크게 다르지는 않을 듯싶다. 비록 중세 유럽에서보다는 훨씬 덜 미신적이지만 현대인들 또한 여전히 미신적인 것. 그런 미신의 폐해를 완전히 제거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줄여나가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우리 자신을 좀더 잘 이해할 필요가 있다.
07. 12. 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