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의 소설이라고 할 만한 책은 아프간 출신의 작가 할레드 호세이니의 <천 개의 찬란한 태양>(현대문학, 2007)이다.  책은 지난달에 나온 논픽션 <카불 미용학교>(길산, 2007)을 바로 떠올리게 했는데(http://blog.aladin.co.kr/mramor/1607006), 두 책의 공통점은 최근 미국 출판시장의 베스트셀러라는 것. 그러니까 아프가니스탄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미국에 대해서 말해주는 책들이 아닌가 한다. 조선과 중앙에서 크게 다루고 있는 기사를 옮겨놓는다. 작품 자체로도 흥미를 끄는 소설이다.  

중앙일보(07. 11. 24) 그녀들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다

여기 두 여자가 있다. 태어난 곳도, 살아온 환경도 다르지만 아프가니스탄의 중심 도시 카불 한구석에 지붕을 맞대고 살아온 두 여자가 있다.

# 마리암
부잣집 하녀인 어머니는 주인의 아이를 가졌다. 태어나는 순간부터 ‘하라미(후레자식)’란 이름으로 배척받는 사생아. 그것이 나였다. 어머니는 혼자 나를 낳아야 했다. 가족에 편입되지 못하고 평생 좌절감에 몸부림치던 어머니는 내가 열다섯 되던 해 자살했다. 혼자가 된 나는 아버지와 그의 세 부인들에게 의지해야 했지만 그들에게 나는 망신스런 존재일 뿐이었다. 그들의 종용에 못이긴 나는 서른 살 많은 홀아비의 후처가 됐다. 남편의 이름은 ‘라시드’. 아들을 몹시 바라던 남편은 내가 유산을 거듭하자 개처럼 다루기 시작했다. 1979년 소련의 침공으로 시작된 전쟁은 끝도 없이 계속됐고 도시는 폐허로 변해갔다. 어느 날 앞집에 로켓탄이 떨어졌다. 그 집에 살던 부부는 죽고 딸아이만 간신히 살아남았다. 나는 심하게 상처 입은 소녀를 집으로 들이고 치료해줬다. 못난 나와 달리 예쁜 소녀. 남편은 소녀를 두 번째 부인으로 삼았다. 죽어가는 것을 거뒀더니 소녀는 내 남편을 뺏고 이내 아이까지 임신했다. 소녀가 죽도록 미웠다.

# 라일라
내가 나고 자란 카불은 아름답고 자유로운 도시였다. 여자들은 공부하고, 직장을 가졌다. 부르카(몸 전체를 가리고 눈만 망사로 돼 있는 아프간 여성 전통의상)를 입는 사람은 드물었다. 아빠의 지론대로 나는 열심히 공부했고 우등생으로 인정받았다. 지하드(聖戰)에 참전하기 위해 집을 떠난 두 오빠 대신 나를 돌봐주던 사람은 옆집에 사는 ‘타리크’ 오빠였다. 우리는 함께 자라면서 연인이 됐다. 내가 열 네 살이 되던 92년 전쟁은 극심해졌고 단짝친구 기티가 거리에서 폭사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 해 여름 타리크 가족은 파키스탄으로 피난을 떠났다. 헤어지기 전날 타리크와 나는 안타깝고 슬픈 마음을 억누르지 못한 채 서로를 안았다. 며칠 뒤 우리 집은 폭격을 당했고 나 혼자 살아남았다. 다친 나를 돌봐준 것은 앞집 라시드 부부였다. 정신 차린 지 얼마 안 돼 타리크가 피난길에 죽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절망한 내게 라시드는 자신의 두 번째 부인이 되든, 거리로 나가든 선택을 하라고 말했다. 거리는 강간과 살육이 범람하는 지옥으로 변한 지 오래였다. 나는 그의 요구를 쉽게 받아들였다. 내 몸 깊은 곳에서 내가 지켜야 할 무언가가 느껴졌기 때문이다. 새 생명의 태동이었다.

평행선을 그려온 두 여자의 삶은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맞물리며 포개진다. 왕이 축출되고, 공산주의자들이 득세하고, 반군의 게릴라전이 계속되는 가운데서도 그들은 살아간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깃든 바미안 석불이 파괴되는 모습과 뉴욕 중심부에 우뚝 선 두 개의 빌딩이 무너져 내리는 것을 지켜본다. 탈레반의 억압에도 카불에 남은 사람들은 영화 ‘타이타닉’을 몰래 보며 눈물을 흘린다. 생생한 역사의 흐름을 토대로 하기에 등장인물들은 가상의 인물이 아니라 ‘지금, 여기’에서 살아 숨쉬는 듯하다. 탄탄한 구성과 마지막 장까지 긴장을 잃지 않는 진행으로 읽는 내내 코 끝을 알싸하게 만들던 책은 희망으로 끝을 맺는다.



책 제목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17세기 페르시아의 유명한 시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Saib-e-tabrizi)가 카불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시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붕 위에서 희미하게 반짝이는 달들을 셀 수도 없었고/ 벽 뒤에 숨은 천 개의 찬란한 태양들을 셀 수도 없었네’ 어쩌면 시인은 아름다운 도시가 아닌 그곳에 사는 빛나는 사람들을 그리고자 했는지 모른다. 지금 이 순간에도 숨 쉬고 있는 수천, 수만 개의 태양들 말이다.

놀랍게도 이번 작품은 저자 할레드 호세이니(42)의 두 번째 소설이다. 그는 소련의 침공을 피해 80년 미국으로 망명한 아프간인이다. 4년 전 그는 첫 작품 『연을 쫓는 아이』(열림원)에서 자신의 체험을 녹여 아프간 전쟁을 피해 미국으로 건너간 소년들의 사투를 그렸다. 그런 그가 이번에는 전쟁의 포화 속에 남겨진 여성들의 ‘찬란한’ 비극을 안고 돌아온 것이다. 미국에서 출간 6주 만에 140만 부가 팔려나가고, 반년 가까이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목록 1위를 지킨 화제작이다.(이에스더 기자)

조선일보(07. 11. 24) 아내엔 부르카 입히고 남편들 포르노잡지 읽었다

2007년 한 해 중무장한 미군이 아프가니스탄을 무력으로 장악하고 있는 사이 지구 반대편에서는 아프가니스탄에서 온 이방인 작가의 소설이 미국 독서계를 지배했다. 지난 5월 출간된 이 소설은 24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 1위를 질주하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인터넷 서점 아마존이 편집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해 최근 발표한 ‘2007 최고의 책’ 설문조사에서도 이 소설은 ‘해리포터’ 시리즈 최종편을 누르고 1위에 올랐다.

소설을 쓴 할레드 호세이니(Khaled Hosseini·42)가 미국에서 주목 받는 이유는 또 있다. 그가 2003년 발표한 첫 소설 ‘연을 쫓는 아이’(The Kite Runner)는 4년이 지난 지금도 뉴욕타임스 페이퍼백 소설 분야 4위를 지키며 500만 부가 넘는 기록적인 판매를 자랑하고 있다. 인터넷 야후에서 ‘할레드 호세이니’라는 이름을 치면 170개가 넘는 관련 문서가 쏟아져 나온다. 파라마운트 영화사가 만든 동명의 영화가 12월에 개봉되고, 호세이니의 작품을 읽는 독서클럽이 미국 전역에서 1200개 이상 생겨나 활동하고 있다.

작가 호세이니는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A Thousand Splendid Suns)에서 오사마 빈 라덴의 은신처이자 오랜 내전으로 찌든 국가로만 알려진 조국 아프가니스탄의 구석구석 실제 삶과 역사를 바로 현장에서 지켜보는 것처럼 현실감 있게 소개하고 있다. 작가는 1959년부터 2003년까지 아프가니스탄의 끔찍했던 현대사를 관통해 온 두 여자의 삶을 그리고 있다. 가끔 나타나는 아빠에게서 선물을 받을 때마다 철모르고 좋아하기만 했던 사생아 소녀 마리암은 자라면서 자신의 처지를 깨닫는다. 아빠에게는 이미 세 명의 부인이 있었고, 자신은 아빠가 그 집 가정부와 혼외정사로 낳은 딸이었다. 마리암이 아빠와 함께 살겠다며 집을 나간 날, 엄마는 스스로 목을 멘다. 15세가 되던 어느 날, 마리암은 아빠에 의해 자기보다 서른 살이나 많은 구두 수선공 라시드와 억지로 결혼해 고향을 떠나 카불로 간다.

그러나 라시드는 마리암이 아이를 갖지 못하자 두 번째 부인 라일라를 맞이한다. 마리암은 가난하게 자랐고 얼굴도 못생긴 자신과 달리, 교육을 강조하는 인텔리 집안에서 태어났고 얼굴도 예쁜 라일라를 질투한다. 작가는 두 여인의 삶을 한 남자의 집에 겹쳐 놓음으로써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덮친 비극의 덫을 드러내 보인다. 마리암과 별반 다를 것 없는 처지의 라일라는 어느 날 집안에 날아든 로켓포 한 방에 부모를 잃었던 상처를 갖고 있다. 그녀의 뱃속에는 내전을 피해 파키스탄으로 달아나버린 남자친구의 아이가 자라고 있다. 꽃다운 15세 소녀 라일라는 장차 태어날 아기에게 집을 주기 위해 환갑을 넘긴 노인 라시드의 청혼을 받아들인다. 마리암은 질투를 벗고 라일라에게 동료의식을 갖기 시작한다.

소설은 개인의 삶을 관통하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문화적 배경과 함께 능란하게 버무려 낸다. 학교교육을 받지 못한 마리암조차 시를 흥얼거릴 만큼 이 나라는 시인들의 천국이었다. 라일라의 남자친구가 파키스탄 난민촌에서 겪어낸 겨울의 풍경은 한때 600만 명이 넘었다는 아프가니스탄 난민들의 고난에 찬 삶을 대변한다. 왕정붕괴와 소련의 침공, 공산화와 탈레반 정권의 수립으로 이어지는 역사도 생생하게 묘사된다. 1974년 남편을 따라 카불에 온 마리암은 도시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한다. ‘여자들은 한결같이 핸드백을 들고 나풀거리는 스커트를 입고 있었다. 어떤 여자들은 자동차 핸들을 잡고 담배를 피우기까지 했다.(…) 그들이 지나가면 향수냄새가 났다’(106쪽)

반면, 보수적인 파슈툰족 출신의 남편은 그녀에게 부르카를 입으라고 명령하며 이렇게 경고한다. “내 고향에서는 눈길 한 번 잘못 던져도, 말 한 마디 잘못해도 칼부림이 나. 내가 태어난 곳에서는 여자의 얼굴을 남편만 볼 수 있어.”(100쪽) 그녀는 남편이 자신을 때릴 때마다 엄마가 죽기 전 했던 “단 하나의 기술만 있다. 그것은 타하물(참는 것)이다”(30쪽)라는 말을 떠올린다. 소련군을 몰아낸 뒤 적이 없어진 무자히딘은 과녁을 알 수 없는 총부리를 겨누면서 내전에 돌입한다. 소련과의 지하드(성전)에 아들 둘의 목숨을 바친 라일라의 엄마는 “무자히딘이 승리하여 카불로 돌아오는 날을 보고 싶다”(195쪽)고 했지만 바로 그 무자히딘이 쏜 로켓포에 의해 목숨을 잃는다.

내전을 끝내고 정권을 장악한 탈레반 치하의 카불 풍경을 묘사하고 있는 이 책은 근본주의 국가의 허위에 찬 일상을 고발한다. 탈레반 병사들은 ‘남자는 수염을 길러야 한다’는 포고령을 내린 뒤 도요타 트럭을 타고 다니며 면도한 사람을 찾아 얼굴을 피투성이로 만든다. 타이타닉의 해적판 비디오가 나돌자 도시의 좌판에는 타이타닉 치약, 타이타닉 카페트, 타이타닉 탈취제가 등장했다. 심지어 타이타닉 상표가 달린 부르카까지 팔렸다. 아내에게 부르카를 입혀놓고 남자들은 금발의 여자들이 나체로 등장하는 도색잡지를 읽었다. 진통을 시작한 라일라가 남자병원과 여자병원을 분리한 탈레반 때문에 양수가 터진 배를 부여잡고 여자병원을 찾아 도시를 헤맨다. 마취제도 없이 그녀의 배를 가르는 산부인과 의사는 부르카를 뒤집어 쓴 채 수술칼을 들도록 강요 당한다.

미국의 요청으로 아프가니스탄에 군대를 파병하고, 인질극 사태까지 겪은 우리에게 이 소설은 미국인과는 다른 각도에서 관심을 불러 일으킬 부분이 있다. 소설은 미국의 아프간 침공을 바라보는 현지인의 시각을 전달한다. ‘고국에 다시 폭탄이 떨어지고 있다. 이번에는 미국의 폭탄이다’(523쪽) 소설의 끝부분에서 라일라는 이것이 탈레반 정권을 몰아내기 위해 ‘어쩌면 필요한 것일지 모른다’면서도 ‘아프간 아이들이 자신처럼 로켓탄에 의해 고아가 되는 상황’(523~524쪽)이라고 걱정한다. 소설은 이 대목에서 아무 감정 없이 ‘테러’와 ‘탈레반’을 입에 올려온 독자의 마음에 새로운 파문을 불러 일으킨다. 소설 속의 두 여인은 아프가니스탄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고 있으며, 우리가 그들의 안위를 함께 염려해야 한다는, 보편적 인류애를 촉구하고 있다.



◆할레드 호세이니
1965년 카불에서 외교관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프가니스탄에 공산정권이 들어서자 1980년 아버지를 따라 미국으로 망명했다. 유복한 환경에서 자란 그는 이때부터 정부의 극빈자 지원금에 의지해 살아간다. 캘리포니아 주립대(샌디에이고)에서 의학을 공부한 것은 장남으로서 장차 가족의 생활을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감 때문이었다. 작가는 “졸업 후 의사로 활동했지만 늘 소설을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2003년 첫 장편 ‘연을 쫓는 아이’로 단번에 미국인이 주목하는 작가로 부상했다. 두번째 소설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그는 의료계를 떠나 현재 유엔난민국에서 세계 난민을 돕는 NGO 활동을 하고 있다.(김태훈 기자)

07. 11. 24.

P.S. 우리에게도 '아프가니스탄'은 파병 및 지난번 인질사태와 관련하여 올해의 화두 중 하나로 기억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도 읽어볼 만한 작가이고 작품이 아닐까 싶다. 문학이 무엇일 수 있는지에 대한 한 가지 대답과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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