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한달 동안 별로 '눈에 띄는' 책이 없어서 애서가로서는 나름대로 우울했었는데 마지막주에 사정이 좀 나아지고 있다. 미국 작가 찰스 부코우스키의 <팩토텀>(문학동네, 2007)도 조금은 기운나게 하는 소설이다. 부코우스키란 이름은 아마도 김성곤 교수의 미국문학 관련서에서 봤음 직한데, 그의 책들이 번역돼 있는 줄은 몰랐다(그러니 자만하면 안된다!). 이번에 나온 <팩토텀> 이전에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바다출판사, 2000)와 <시인의 여자들>(문학사상사, 1993)이 이미 소개됐었다. 그의 '3부작'이 마저 소개되면 좋겠다(<우체국>만 나오면 되는 것인가?). 관련기사를 옮겨놓는다. 참고로 <팩토텀>은 2005년에 영화화됐으며(주연은 맷 딜런) 아래 이미지들은 거기에서 따왔다.

한국일보(07. 09. 29) 미국인 조르바 "영혼은 위장에 뿌리 내리고 있다"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로 꼽히는 찰스 부코우스키(1920~1994ㆍ사진). 그가 미국사회의 갖가지 밑바닥 생활을 전전하며 방랑한 20, 30대를 거쳐 전업 작가가 된 것은 49세 때인 1969년이다. 예전엔 시를 주로 썼던 그는 자신의 페르소나인 떠돌이 잡역부 ‘헨리 치나스키’를 주인공으로 첫 장편소설 <우체국>(1971)에 이어 <팩토텀>(1975) <여자들>(1978) 등 자전적 소설을 잇달아 발표한다.

‘부코우스키 3부작’이라 불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부코우스키와 그가 창조한 치나스키는 반항기 가득했던 1970년대 세대의 문학적 아이콘이 됐다. 팩토텀(factotum)은 잡역부를 뜻하는 단어다. 치나스키는 행동거지가 ‘개차반’인 팩토텀이다. 2차대전 막바지였던 1940년대 중반, 대학을 중퇴하고 무위도식하던 그는 자신을 꾸짖는 아버지를 구타한 뒤 미국 중서부를 떠돈다. 소설 <팩토텀>은 치나스키의 그 유랑기다. 하지만 그 유랑길은 소설의 일반적인 양식, 즉 성숙으로 향하는 도정과는 영 거리가 멀다.

치나스키는 일용직을 얻어 머물 때마다 술과 여자에 탐닉한다. 근무시간에 아랑곳없이 술독에 빠져 여자에게 집적대는 그가 해고 통지를 받는 것은 그저 시간문제다. 번역자의 표현을 빌면 이 소설의 외양은 “술, 여자, 잡일의 끝없는 변주와 반복”이다. 윤리 따위는 괘념치 않겠다는 자세, 상스럽고 더러 외설적인 표현에 곤혹스러운 독자도 적지 않을 듯싶다.

하지만 이 극단적 ‘안티 히어로’ 치나스키는 시대를 초월하는 묘한 매력을 발산한다. 이는 온갖 모순적 면모가 혼재된 그의 캐릭터와 관계 깊다. 그는 섹스에 탐닉하면서도 “내게 고독이 없다면, 그건 다른 사람에게 음식이나 물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55쪽)라며 글을 끄적인다. 돈으로 겉멋을 부리는 예술가를 경멸하면서도 “불행하게도 굶주림은 예술을 돕지 않았다. 인간의 영혼은 위장에 뿌리 내리고 있다”(91쪽)고 단언한다.

치나스키는 그런 와중에도 편한 직업만 찾는 속물이지만 “전쟁은 계속되고 있지만, 숙녀들은 우라질 옷들을 계속 사들이고 있”(88쪽)다며 분노하는 사회의식도 갖췄다. 인간이 애써 다스리고 있는 본능을 거리낌없이 발현하는 이 ‘미국인 조르바’에게 박수갈채하고픈 마음은 억눌러야 하나, 말아야 하나.(이훈성기자)

07. 09. 29.

P.S. 자료를 찾아보니 '나를 움직인 이 책' 코너에서도 부코우스키가 다루어진 적이 있다. 영화감독 이무영씨가 추천했다. <철없는 아내와 파란만장한 남편, 그리고 태권소녀>와 <휴머니스트> 같은 영화들을 찍은 다재다능한 시나리오작가이자 방송인 감독이다(이럴 때는 재능이 좋은 영화를 찍는 데 장애물이 된다). 부코우스키 '스탈'의 영화들은 아직 못 찍은 건가?..

한국일보(03. 01. 04) 찰스 부코우스키 단편집 ‘일상의 광기에 관한 이야기’

찰스부코우스키의 이름이 국내에 처음 알려진 것은 그의 자전적 이야기를 담은1987년 영화 ‘바플라이’(Barfly)를 통해서였다. 미국 밑바닥 인생들의 암울한 삶과 절망을 건조하게 그린 이 영화는 우리에게 익숙한 미국 주류사회와는 너무도 다른 면을 보여주는 작품으로 부코우스키의 작품세계와 정확히 일치한다(*<바플라이>(1987)는 나도 TV에서 본 적이 있는데, 기억에 <미키 루크의 술고래>란 제목으로 소개됐었다).

그는 독일서 태어났지만 대부분을 미국서 살았고 ‘우체국’ ‘시인의 여자들’ ‘지상에서 쓰는 마지막 시들의 밤’등 문학 작품을 남겼다. 1990년 국내에 처음 소개된 단편 모음집 ‘일상의 광기에 관한 이야기’는 평생을 미국 주류 문학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했던 천재 작가 부코우스키의 야수적 본능, 그리고 엄숙주의와 가진 이들에 대한 적개심으로 일관한다.

Picture of Charles Bukowski, poet; twentieth century American Literature and poetry

이런 성향으로 인해 그의 시집과 소설 대부분은 미국 내에서 크게 빛을 보지 못했다. 미국 내 보수적 평단은 그의 작품들 속에 흐르는 섹스와 약물, 알코올에 대한 탐닉을 단순히 ‘저속함’으로 평가절하했다. 오히려 그의 작품에 대한 정당한 평가는 유럽을 중심으로 이뤄졌다. 프랑스 작가 장 주네는 그를 미국 최고의 시인이라고 추켜세웠다.

부코우스키에게 가장 강렬한 인상을 받았던 것은 그의 작품들이 읽는 이들의 눈치를 전혀 살피지 않는다는 점이다. 독자와 관객, 음악 애호가들의 눈치를 보는 문학과 영화, 음악들이 판을치는 요즘 세상에서 마치 철없는 어린 아이의 순수함처럼 다가오는 ‘일상의 광기에 관한 이야기’는 이런 이유로 인해 너무나 신선한 느낌을 준다. 이는 마치 아나키적 공동체 생활이 가능하다고 믿었던 히피시대의 정신을다시 접하는 것 같은 흥분과 흡사하다.

공산주의를 물리친 후 돈과 건강을 최대의 미덕으로 내세우며 마치 전세계를 지배하는 듯 우쭐해하는 자본주의의 추함을 보며 우울한 요즘 세상에서, 처절하게 망가지면서도 끝까지 냉소를 잃지 않는 부코우스키의 작품세계는 아직도 주류의 횡포에 휩쓸리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있는 불순한(?) 영혼들에게 위로의 손길을 내민다.

이 세상 모든 질서를 무너뜨리고 싶은, 마음 속 혁명을 꿈꾸는 이들에게 ‘일상의 광기에 대한 이야기’는 훌륭한 선물임에 틀림없다. 반대로 이런세상 질서의 수혜자들이라면 절대로 이 책에 손을 대지 마라. 재앙 중의 재앙이 될 것이다.(이무영_영화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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