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나온 책들 가운데 좀 특이한 영화관련서들이 눈에 뜬다. 당장 읽을 여력은 없어서 대신 적절한 리뷰들을 찾아 옮겨놓는다. 로버트 그레그의 <영화 속의 국제정치>(한울아카데미, 2007)와 리처트 포튼의 <영화, 아나키스트의 상상력>(이후, 2007)이 그 책들이다(포튼의 책은 지난주에 서점에서 봤다). 리뷰들은 소략하지만 그나마 이 책들을 다룬 지면 자체가 아주 드물다.

동아일보(07. 09. 15) 숨겨진 ‘국제질서’ 읽기…‘영화 속의 국제정치’

아프리카 어느 마을. 하늘을 날던 비행기 조종사가 뭔가를 ‘툭’ 버렸다. 마침 지나가던 원주민이 주워 든다.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 빈 콜라병을 들고 난감해하던 표정. 1980년대 인기를 끌었던 영화 ‘부시맨’의 시작이다. 가볍게 즐겼던 코미디 영화였으나 저자는 고개를 젓는다. ‘한없이 무거운’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의 책 ‘문명의 충돌’을 거론한다. “헌팅턴은 국제정치의 근본적인 분쟁이 국가와 집단의 여러 다른 문명으로 인해 벌어짐을 지적했다. 서구 문명과 전통적인 토착문화의 조우. 영화 부시맨은 이런 국제관계를 살피는 좋은 텍스트가 된다.”

이 책의 목적은 자명하다. 제목(원제 역시 ‘International Relations on Film’)에 그대로 드러난다. 영화를 통해 국제정치를 배우자. 미국에서 정치외교를 가르치는 교수답게 청강생들의 이해를 도우려 영화를 교재로 사용하는 셈이다.

논의점은 다양하다. 해리슨 포드가 출연했던 ‘레이더스’를 통해 제3세계를 바라보는 제국주의 시선을 다룬다.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는 국제정치의 의사결정 과정이란 논의를 끌어내는 훌륭한 마중물이다. 윤리와 국제법을 다룰 땐 영화 ‘7월 4일생’과 ‘살바도르’를 언급한다.

묵직한 두께에 빡빡한 활자. 주제마저 무겁다. 그런데 책은 그다지 어렵지 않다. 오히려 술술 읽힌다. 저자의 의도대로 교재가 ‘영화’인 덕분이다. 어려운 국제정치용어들이 익숙한 영화 화면을 타고 스르르 미끄러져 들어온다.

아쉬운 점도 있다. 영화가 대부분 할리우드산(産)이다. 익숙하지 않은 영화를 거론할 땐 이해도도 떨어진다. 왜곡이 가능한 영화 자체만으론 국제정치를 설명할 수 없음은 저자 역시 동의하는 부분. 배운 건 많은데 뒤끝이 가려운 수업을 들은 기분. 강의평가서에 ‘A+’라고 쓰기가 살짝 망설여지는 이유다.(정양환 기자)

디지털타임즈(07. 09. 06) 영화속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

아나키스트'(Anarchist)라는 단어에는 왠지 부정적인 이미지가 짙다. 아나키스트하면 시위와 테러 같은 불법 행위가 연상된다. 왜 그럴까. 아나키스트는 사전에 `국가와 사회의 권력을 부정하고 개인의 완전한 자유가 보장될 수 있는 사회 실현을 주장하는 사람'으로 정의된다. 기존의 질서를 거부하는 이유가 아나키스트의 부정적 이미지를 키운 것일까.

한국영화 시장이 르네상스를 맞으면서 셀 수 없는 영화관련 책이 쏟아져 나왔지만, 아나키스트의 눈으로 영화를 바라본 책은 없었다. 아나키스트들에 대해 소개하는 몇몇의 책들은 있었지만, 이 책들 역시 아나키스트들이 문화 속에서 어떻게 소비되는 지를 보여주지는 못했다.

영화학자이자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아나키스트에 대한 오해와 편견을 가지게 된 원인을 영화 속에서 찾고 있다. 주류 영화들이 다루는 아나키스트는 폭력과 테러, 범법자들의 전형이었다. 심지어 옷 입는 모양새와 콧수염 기른 모습까지 정형화시키기도 했다.

저자는 영화 속에서 아나키스트들이 그렇게 묘사될 수밖에 없었던 까닭을 정치 철학적으로 추적해 밝혀낸다. 또 아나키즘에 대한 확실한 이해가 없었더라면 불가능했을 `아나코 페미니즘' `아나코 생디칼리즘' `아나키스트 교육학' 등에 대한 이론까지 명쾌하게 밝혀놓고 있다.

특히 국내 출판물에서는 찾아보기 어려운 아나키스트 인물 설명을 부록으로 붙여 둔 것은 국내 독자들에게 좋은 참고 자료가 된다. 또 아나키스트와 관련된 시시콜콜한 자료까지 잘 갈무리해 독자들에게 보여준다. 예를 들어 19세말과 20세기 초 미국에서 무정부주의자로 활동한 엠마 골드만(Emma Goldman)의 자료관을 통해 공개되지 않은 서신을 소개하고, 영화감독들에게 전화나 e메일로 확인한 내용들까지 소개하고 있다. 아나키스트 단체들의 유인물 내용과 아나키스트들이 등장하는 유럽과 미국의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도 총망라하고 있다.(김응열기자)

07. 09. 17.

P.S. 두 권의 두툼한 책들 대신에 내가 어제 주문한 책은 저명한 페미니스트 영화이론가 로라 멀비의 얇은 최신작 <1초에 24번의 죽음>(현실문화연구, 2007)이다. 멀비의 책으론 <시민 케인>(동문선, 2004)이 먼저 소개된 바 있지만 왠지 이 책부터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995년 탄생 100주년을 맞은 영화의 본질적 측면을 탐구한 영화이론서이자, 대중을 위해 쉽게 쓴 영화에세이"라고 하니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겠다. 멀비에 대해서는 나중에 다루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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