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이면 어김없이 읽게 되는 북리뷰들 가운데 눈에 띄는 책을 몇 권씩 골라보는 게 나의 '취미'이다(적어도 한두 권은 구입하게 된다). 이번주의 첫번째 후보작은 스티븐 하우의 <제국>(뿌리와이파리, 2007)이다. '제국'에 관한 책들이 그간에 적잖게 나왔기 때문에 또 무슨 '제국'이냐 싶은데, 별로 부담스러운 분량은 아니어서 독서목록에 넣어둔다. 아직 읽지 않은 책들과 아직 구입하지 않은 '제국' 책들의 이미지들도 몇 권 띄워놓는다.

서울신문(07. 08. 17) '제국 아닌 제국’ 美國

영화로 더욱 유명해진 소설 ‘반지의 제왕’에서 제국을 통제하는 ‘악의 축’ 사우론은 ‘절대반지’를 빼앗아 세계를 지배하려는 음모를 꾸민다. 반면 사우론에 대항하는 난쟁이 호빗족은 평화롭고 작은 공화국 샤이어에 살고 있는데, 샤이어는 뜻밖에 잉글랜드를 암시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소설을 쓴 영국작가 존 로널드 로웰 톨킨(1892∼1973)의 청년 시절 대중매체와 문화예술 속 제국의 이미지는 오늘날과는 사뭇 달랐다고 한다. 제국을 건설하는 자가 된다는 것은 모험가, 영웅,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이다. 오늘날에는 얼토당토않아 보이지만, 샤이어가 ‘대영제국’을 암시할 수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후 ‘제국’이나 ‘제국주의’는 전 세계적으로 혐오스러운 존재가 돼버린 것이 사실이다. ‘제국’(스티븐 하우 지음, 강유원·한동희 옮김, 뿌리와 이파리 펴냄)은 이처럼 ‘제국’이라는 단어가 혼란스러운 개념을 갖고 있다는 전제에서 출발한다. 지은이는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정치학과 교수. 그는 20세기 후반 ‘제국’이나 ‘제국주의자’는 미국의 대외정책에 격렬하게 반대하는 이들만이 경멸적으로 쓰는 용어였지만, 최근에는 ‘미국 제국’이라는 개념이 대단히 보편적으로 쓰이고 있다고 설명한다.

‘제국´ 옹호하는 수정주의의 범람
물론 제국주의와 관련된 현상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지만, 미국이 제국 건설자의 역할을 떠맡는 것이 미국 자신을 위해서나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이라며 호감을 갖는 사람이 나타났다는 점은 놀랍다는 것이다. 그는 영국식 세계 지배와 미국식 세계 지배는 대비되는 점이나 비교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면밀하게 살펴보면 실은 그리 많이 어긋나는 것이 아니라고 지적한다.

미국을 옹호하는 사람들은 미국의 지배와 통치의 확장이 공격성이나 부와 세계 제패에 대한 열망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예측하지 못한 위기에 대한 방어이거나 혼란 속에서 질서를 유지하고자 마지못해 수행하는 의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하지만 21세기 미국의 ‘좋은 의도’와 ‘피할 수 없는 반응’이 대개 오해와 원망을 사고 있다는 것은 19세기에서 20세기 초에 걸친 영국 제국에 대한 묘사에도 들어맞는다는 것이다.

또 미국은 자신들의 통제나 영향력은 지역의 정치체제를 통해 수행되고, 통제수단도 경제적·외교적·문화적이어서 사실상 ‘형식적인 식민주의’가 아니라 ‘비형식적인 제국’으로 작용해 왔다고 내세운다. 하지만 이 또한 영국 제국도 힘이 절정에 이르렀을 때는 형식적 지배 못지않게 상당 부분은 비형식적 지배를 수행하고 있었다고 반박한다.

영국의 비형식적 자유무역 제국은 라틴아메리카와 중동, 동아시아에서 아주 넓은 범위에 걸쳐 있었으며, 형식적 제국보다 더 많은 이익을 내고 있었다. 따라서 당시 영국의 정치인들도 비형식적 통치를 선호했으며, 어쩔 수 없는 상황에서만 형식적 정복에 들어가는 비용지출과 위험을 감수했다. 과거의 제국과 오늘날 새로운 제국 사이에는 그렇게 큰 차이가 없다는 것이다.

“미제국, 대영제국과 다를 바 없다”
이 책이 미국에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제국과 식민주의 시대의 역사에 대한 개괄서라는 형식을 갖고 있다. 하지만 제국에 관심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오늘날 국제사회에 미치는 미국의 힘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라는 과제에서 출발했다는 점에서 분명 ‘미국 제국’에 대한 이해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다.

지은이는 “군사적 관점에서 미국의 강력함을 강조하는 이들은 미국의 취약함을 희석하는 경향이 있다.”면서 “더구나 과거의 제국과 달리 형식적 지배가 없는 상황에서 균형을 잡는 일은 훨씬 복잡하고 위태로운 만큼 미국이 가진 힘의 본질을 이해하고 전망하는 데 더 많은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충고한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07. 08. 17.

P.S. 번역서는 두 가지가 눈에 띈다. 먼저, 강유원씨가 공역자로 참여하고 있다는 것. 덕분에 번역에 신뢰감을 갖게 된다. 한가지 궁금한 건 그가 서평에서처럼 번역에서도 '미국'을 '유에스'라고 표기하는지 여부이다(일본을 '저팬'이나 '니폰'이라고 부르는 격인데, 그는 '유에스'란 표기에서 무슨 향락을 누리는 걸까? 그저 '미국'에 대한 혐오인가?). 그럴 리야 또 없겠지만.

그리고 두번째는 옥스포드대학출판부에서 나오는 '아주 간명한 입문(A Very Short Intoduction)' 시리즈의 한권이라는 것. 이 시리즈의 책들이 탐이 나서 나도 한 출판사에 번역출판을 제안한 적이 있지만 무산됐었다. 현재 170여 권의 타이틀이 나와 있다(목록은 http://www.oup.co.uk/general/vsi/titles/). 간명하다고는 하지만 우리 분량으로 '짧은' 책들은 아니다. 원서가 비록 문고본 판형에 백 몇 십쪽 분량들이지만 <제국>에서 보듯이 우리말로 옮기면 200쪽은 그냥 넘어가기 때문이다. 내 식으로 분류하면 시리즈 자체는 아주 '교양 있는' 백과사전으로 읽힌다. 이 정도가 '교양상식'으로 통용될 수 있는 날을 고대해본다...

P.S.2. 알고 보니 최근에 출간된 <러시아혁명>(박종철출판사, 2007)도 '아주 간단한 입문' 시리즈의 한권이다. 이거 '숨은 있는 책' 찾기도 아니고 이미 번역된 책들을 다 불러모으는 건 간단하지 않은 일 같다...

P.S.3. '제국' 얘기가 나온 김에 좀 늦게 입고된 듯한 책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휴머니스트, 2007)도 눈길이 가는 책이다. 이 만만찮은 분량의 저자는 앙드레 슈미드 교수이고 역자는 문학평론가로도 활동중인 정여울씨. 하버드대 역사학과의 카터 에커트 교수의 평에 따르면, "이 책은 한국 근대 지성사의 근원적 해체이자 분과학문의 경계를 뛰어넘는 역작이다." 정말 그런가는 확인해보면 되겠다. 한국 학계의 수준과 비교해볼 수도 있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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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osculp 2007-08-18 12:04   좋아요 0 | URL
이 시리즈중의 하나인 러시아혁명도 번역되었더군요.
동문선에서 한 10권넘게 번역되었던에 전체 판권을 산것은 아닌것 같기도 하고요.
여기 저기 산재해서 번역되는것을 보면.
저는 이책시리즈 모으고 있거든요.이뻐서요.

로쟈 2007-08-18 16:56   좋아요 0 | URL
그렇군요. 동문선에선 하도 여러 종의 시리즈를 내놓고 있는지라 미처 이 시리즈에는 주목하지 않았었는데, 알려주신 덕분에 살펴봐야겠습니다.^^

2007-08-19 15: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9 16:3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9 18:22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07-08-19 18:59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