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는 책이 눈에 띄지 않아(방안에 있는 책들이 거의 포화상태에 도달하고 있다) 해야 할일을 미뤄두고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러시아 관련서 두 권에 관한 기사를 옮겨놓는다. 한 권은 전설적인 무기상 자하로프에 관한 것이고 다른 한권은 러시아 혁명기의 테러리스트 사빈코프의 자전적 소설이다... 

문화일보(07. 07. 20) 전설의 무기상 자하로프의 생애

많은 사람들이 책을 훑는 버릇 중의 하나는 책 속의 도판부터 보는 것이다. 20세기 초 전설의 무기상으로 알려진 바실 자하로프의 생애와 시대를 다룬 이 책에도 몇 컷의 사진이 있다. 수염을 기른, 20세기 초반의 전형적인 인물 사진에서 다른 인물과 구별되는 점은 차갑게 빛나는 눈빛이다. 이 책을 읽기 시작한 것도, ‘죽음의 상인’이란 제목 못지않게 바실 자하로프의 눈빛에 흥미를 느껴서였다.



10대 시절 매음굴의 문지기 등으로 일하며, 사람 심리 읽기를 배운 그가 무기상으로, 가상적국인 그리스와 터키에 잠수함을 판매한 것은 1877년이었다. 그가 무기를 파는 방식은 이랬다. 먼저 그리스에 가서 터키의 위협을 과장하며 잠수함 한 척을 판매한 뒤, 이번에는 터키에 가서 그리스의 위협을 강조하며 두 척을 팔았다. 그리고 계약이 성사되자 이번에는 러시아에 네 척을 팔았다.

“터키는 두 척의 잠수함을 구입했습니다. 전쟁이 일어날 경우, 터키 해군은 이 잠수함 덕분에 흑해에서 귀국의 함정을 위협하고, 공격할 수 있습니다. 터키 같은 약소국은 두 척이면 충분하지만, 강대국인 귀국의 안보를 위해서는 네 척은 필요할 것입니다.”

바실 자하로프가 러시아에 잠수함 네 척을 팔기 위해 보낸 편지다. 그의 정세 분석은 예리하고도 정확했지만, 세일즈 법칙은 간단했다. 인간의 약점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예리한 정세분석에 더해 불안을 부추기는 그의 기법은 성공률이 매우 높았다. 1894년에는 영국의 최대 무기제조회사로 자리를 옮겨 제1차 세계대전 중에 전함 4척, 순양함 3척, 잠수함 54척, 항공기 5500대, 중포 2328문을 팔아치우는 괴력을 발휘한다.

그가 개입한 전쟁은 제1차 세계대전뿐만이 아니었다. 1890년대 남아프리카에서 벌어진 보어전쟁을 비롯해 러일전쟁, 발칸전쟁 등의 교전국에도 무기를 공급했다. 1차 대전 뒤 그는 그리스 터키 전쟁을 다시 일으켜 전쟁 경기를 부추기려 했으나 실패하고 은퇴, 몬테카를로에서 도박장을 운영하다 1936년 사망했다. 그는 전쟁 무기상으로서뿐만 아니라, 장 조레스와 로자 룩셈부르크 등 평화주의자 살해사건의 유력한 배후로도 지목된다.

‘죽음의 슈퍼 세일즈맨’이라 불리며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까지 활약한 바실 자하로프의 생애는 거의 알려진 것이 없다고 한다. 책은 베일에 싸인 바실 자하로프의 생애를 복원하기 위해 방대한 취재를 바탕으로, 퍼즐 맞추기를 계속해 나간다. 이런 과정에 점차 뚜렷해지는 그의 모습과 함께 드러나는 것은 역시 베일에 가려있는 동시대의 역사다. 그가 활약한 지 100년이 되어가는 지금도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각종의 명분으로 계속되는 시대, 지금은 어떤 뛰어난 상인이 배후에서 움직이고 있는 것인지.(김종락기자)

연합신문(07. 07. 18) 어느 테러리스트의 테러 일기

"나는 사는 것이 지겹다. 하루가, 일주일이, 일년이 단조롭게 늘어진다. 어제는 오늘과 같고, 오늘은 내일과 같다. 똑같은 우윳빛 안개이고, 똑같은 잿빛 평일이다. 사랑도 똑같고, 죽음도 똑같다. 삶은 좁은 길 같다."(191쪽)



20세기 초 러시아 혁명 직전 테러리스트로 활동했던 소설가 보리스 사빈코프(1879-1925)의 자전소설 '창백한 말'은 소설이라기보다 한 개인의 내면적 기록이자, 사실에 대한 기록으로 읽히는 작품이다. 사빈코프가 테러리스트로 활동했던 1904-1905년은 러시아 역사상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러일전쟁에서 패배한 러시아는 뿌리부터 흔들렸고, 로마노프 왕조의 전제정치에 반발한 노동자들은 곳곳에서 궐기했다.

당시 사회혁명당원으로 활동했던 사빈코프는 1904년 러시아 내무장관이던 바체슬라프 플레베를 암살하고 1905년에는 모스크바 통치자였던 세르게이 알렉산드르비치 대공을 살해했다. '창백한 말'의 무대 역시 러시아 혁명 직전의 모스크바다. 작가는 사회혁명당에서 활동하는 조지 오브라이언이라는 테러리스트의 세 차례에 걸친 총독 테러 과정을 통해 자신이 저질렀던 테러의 이유와 목적, 그리고 테러의 정당성을 반성적으로 성찰한다.

주인공은 "억압받는 민중을 위해" 테러를 선택했다. 그러나 그의 뇌는 "왜 테러의 길을 가고 있는지 모른다"고 중얼거린다. 총독에 대한 1차 테러시도가 무위로 돌아가자 광장에 운집한 사람들을 보며 "전부 폭탄을 먹여줘야해"라며 알 수 없는 분노를 터트리기도 한다. 그러나 주인공이 끝까지 기대려 했던 '테러의 정당성'은 질투심 끝에 연인의 남편을 살해하면서 산산조각나고 만다. 그것은 전혀 "명분 없는" 테러였다. 이윽고 그는 장관을 테러하라는 상부 지시에 이렇게 반문한다. "어째서 살인을 합니까?"



또 다른 장편 '검은 말'은 러시아 내전 당시 백군, 녹색군 등으로 신분을 바꿔가며 적극적인 반 볼셰비키 투쟁을 전개했던 시기를 담은 작가의 마지막 유작이다. 1917년 혁명 이후 조국으로 돌아온 작가는 케렌스키 임시정부 하에서 국방차관까지 지냈다. 그러나 정치적 이유로 제명되자 러시아 장교들을 이끌고 볼셰비키 정부에 대항했다. 1924년 체포돼 이듬해 감옥에서 삶을 마감했다.

"내가 이 땅에 발 딛고 서 있는 한 볼셰비키와 끝까지 투쟁하리라"고 선언했던 작가의 볼셰비키 정부와의 투쟁사가 소설 형식을 빌려 자세히 담겨있다.(이준삼 기자)

07. 07. 21-22.

P.S. '보리스 사빈코프'란 이름이 생소하면서도 왠지 낯설지 않다는 느낌을 주는데, 내가 스쳐지나갔던 책들의 저자이어서인 듯하다. 위의 이미지는 '한 테러리스트의 회고록'이란 제목의 책으로 '나의 20세기'란 시리즈의 한 권이다(모스크바에서 내가 탐내던 시리즈였다). 그리고 그의 두 자전적 소설은 내가 러시아에 있던 2004년에 <죽음이라는 이름의 기사>로 영화화되었다(내가 소장하고 있는 영화이다!). 등잔 밑이 어둡다더니...

Савинков Б. - Всадник по имени Смерть: Конь бледный; Конь вороно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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