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우창 교수의 신작 <자유와 인간적인 삶>(생각의나무)과 함께 내가 이번주에 장바구니에 넣은 책은 '21세기 새로운 담론코드'란 부제를 달고 나온 위잉스 교수의 <동양적 가치의 재발견>(동아시아, 2007)이다. 이 책 또한 200쪽이 안되는 분량이어서 만만하다는 장점이 있다. 타이틀 자체는 흥미를 끌지 않지만(이 또한 유행을 탔던 제목이다)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저자는 눈길을 끈다.

"하버드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 등 3개 대학에서 교수를 역임했다. 2006년 인문학 분야에서 독보적 업적을 쌓은 사람에게 수여하는 인문학의 노벨상인 ‘클러지(Kluge)상’을 수상해 그 학문적 권위를 공인받았다. 동서고금을 망라하는 폭넓은 지적 식견으로 동양과 서양에서 고루 사랑을 받는 대석학"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무슨 얘기를 하는지 한번 들어볼 용의는 생기는 것이다(찾아보니 레이 황의 <자본주의 역사와 중국의 21세기>(이산, 2001)의 서문을 위잉스가 썼다). 리뷰기사를 하나 미리 읽어둔다.

경향신문(07. 07. 21) 진보적 서양문명의 충격 흡수

동양적 가치’는 지난 세기부터 서구 문명이 한계에 봉착했다는 담론과 함께 언제나 돌파구로 얘기되어 온 다소 진부한 화두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그 동양적 가치가 무엇이라고 자신있게 규정하기는 쉽지 않으며 여전히 많은 논자들이 거론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중국 출신 역사학자로 현재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로 있는 이 책의 저자는 이 논의에 대한 권위자다. “5·4운동 이래 있었던 중국 내 모든 문화 논쟁은 서구 현대문화가 동양의 전통문화에 준 충격과 도전”이라고 보는 그는 1983년 강연을 바탕으로 쓴 이 책에서 중국 고전에 나타난 가치체계를 중심으로 동양적 가치의 현대적 의미를 풀어낸다. 우선 서양적 개념인 ‘진보’의 한계를 지적하며 ‘대학(大學)’ 1장의 구절을 인용하는 부분이 눈길을 끈다.

“그칠 곳을 알아야 마음이 정해지고, 마음이 정해져야 마음이 고요해지며, 마음이 고요해져야 편안해지며, 편안해진 뒤에야 사려할 수 있고, 사려한 뒤에야 얻을 수 있다.”

이성적으로 사고하고(慮), 원하는 바를 얻기(得) 위해서는 ‘그침(止)’ ‘정함(定)’ ‘고요함(靜)’ ‘편안함(安)’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는 말이다. 저자는 이 과정들이 개인의 심리상태를 가리키는 말이긴 하지만 동양문화의 일반적 현상에도 적용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실 프랑스혁명 이래 서양 근대의 핵심 키워드가 된 ‘진보’ 개념에서 보자면 편안함, 정함, 고요함, 그침 등에서는 당연히 취할 것이 하나도 없다. 헤겔이 중국 문화를 무시한 중요한 근거 중 하나가 바로 중국이 예부터 진보한 적이 없다는 점이었고, 5·4운동 이후 중국 지식인들의 자아비판 역시 이런 생각에 바탕해 있었다.

이에 저자는 “오늘날 서양의 위기는 동적이면서 정적이지 못하고, 발전은 있지만 그침이 없고, 부유하지만 편안하지 못하고, 혼란스러워 안정됨이 없다는 데 있다”고 말한다. 이럴 때 동양적 가치는 브레이크 없는 기관차 같은 서양문명에 대한 ‘충격 흡수기’다.

그러면 동양적 가치는 그 자체로 완전한가. 저자는 동양인들의 현대생활은 이미 서양문화 없이 성립 불가능하다고 본다. 그는 일부 분야에서는 동양이 반드시 ‘서구화’되어야 한다고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다. 다만 “전반적으로 동양의 가치체계는 근대화 및 탈근대의 도전을 견뎌낼 수 있었으며 앞으로도 자신의 존재 근거를 상실하는 데까지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다.

특히 그는 동양적 가치가 민주주의와 친연성이 없었다는 점을 아쉬워 한다. 하지만 박식한 중국 고전 지식 속에서 동양적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찾고 있다. “모든 사람은 요순이 될 수 있다”(人皆可以爲堯舜)는 ‘맹자’의 내용이나 “거리의 사람들이 모두 성인이다”(滿街皆是聖人)는 평등의식, “자기 자신부터 인(仁)하게 되는”(爲仁由己)이라는 ‘논어’의 내용 등이 그것이다. 그는 동양 민주주의의 정신적 원천으로 현대적으로 법률제도화돼 객관적으로 존재할 수 있다고 봤다. “비록 완벽하지는 않지만 동양 민주주의를 위해 몇몇 요소를 제공하기에 족한 중요한 보증수표”라는 것이다.

그 실례를 그는 싱가포르에서 찾는다. 책의 곳곳에서 저자는 싱가포르를 이상적인 사례로 보고 있다. 싱가포르라는 나라를 이루는 주체들은 중국 본토에 사는 중국인들과 다를 바 없지만 이들은 영국법 체계를 들여와 성공적으로 정착시켰으며, 싱가포르에서 제창되고 있는 ‘유가 윤리’는 정치를 인륜질서에서 분리해낼 수 있는 좋은 사례라고 보았다.

저자는 서구문화와 동양문화의 차이를 초월세계와 현상세계의 관계를 통해 규명한다. 초월세계, 신의 영역, 이데아의 세계, 이상과 현실세계, 인간의 세계, 경험세계가 분리되거나 끝없는 긴장관계에 있는 문화가 서구문화이며, 초월세계와 현상세계가 융합적이고 연결돼 있는 문화가 동양문화라고 보았다. 이는 각각 ‘외재 초월형 문화’ ‘내향 초월형 문화’로 개념화됐다. 이 책의 원제는 ‘가치체계로 본 중국문화의 현대적 의의’로 저자가 1983년 강연했던 것을 3년 뒤 증보하여 책으로 낸 것이다. 저자의 책이 한국에 번역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손제민기자)

07. 07. 20.

P.S. 기사를 읽다 보니까 지난주에 나온 책 <진보의 역설>(에코리브르, 2007)이 떠오른다. 이건 부피가 좀 되는 책이지만 서구식 진보의 한계를 짚어본다는 의미에서 같이 읽어볼 수도 있겠다. 역시나 경향신문의 리뷰기사를 읽어본다.

경향신문(07. 07. 14) 100년 전보다 잘사는데 왜 우리는 우울할까요

‘진보의 역설’이란 제목만 보면 진보 비판서쯤으로 착각하기 쉽다. 실제로 총 415쪽 가운데 100쪽을 읽는 동안 한 보수주의자의 진보이데올로기 비판론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현실낙관론과 그 사례들이 끊임없이 펼쳐진다. 여기에다 서로 다른 목적으로 자기 나라 때리기에 여념이 없는 미국과 유럽 지식인들이나 시민단체, 정치인들에 대한 공격이 이어지는 걸 보면 책을 잘못 집어든 게 아닐까 하는 염려가 잠시 밀려든다. 그렇지만 이는 반전(反轉)을 노리는 전술이다.

핵심은 ‘우리는 왜 더 잘 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라고 묻는 부제가 웅변한다. 그렇다고 단순 행복론이나 긍정 심리학 전도서라고만 치부하기도 어렵다. 그걸 다루지만 다양한 식단이 함께 짜여 있기 때문이다. 언론인이자 학자인 저자 그레그 이스터브룩은 머리말의 들머리에서 400년 전에 살았던 우리의 고조부모가 오늘날 미국에 나타났다고 가정해 보자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나간다.

스스로 행복하다고 평가하는 미국인의 비율이 1950년대 이후 한치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전제한다. 그 기간 동안 실질소득이 두 배 이상 증가했음에도 그렇다는 것이다. 근본 원인은 번영과 행복 사이의 단절이다. 평균적인 미국인과 유럽인은 여태까지 살았던 인류의 99퍼센트보다 더 잘 살 뿐만 아니라 역사에 기록된 대부분의 왕족보다도 더 화려하게 사는 데도 그렇다.

반면 미국과 유럽에서 단극성 우울증 환자가 50년 전보다 10배나 더 많아졌다는 통계적 사실에 저자는 먼저 우울해 한다. 그리고 나선 풍요와 자유가 넘쳐나는 데도 우울증과 회의주의가 만연하는 현실은 불평하기 좋아하는 인간 본성 이상의 의미를 갖는 게 아닌가 하는 질문을 던진다. 그는 서구 제도의 두 가지 심각한 결함으로 모든 사람이 지나치게 많이 사서 소비한다는 점과 부유층의 극단적인 탐욕을 든다.

그는 생활이 윤택해지는 데도 더 나빠진다고 느끼는 이유로 몇 가지 새로운 이론을 제시한다. 선택 불안, 풍요 부정, 붕괴 불안, 충족된 기대의 혁명 등이 그것이다. 선택 불안은 사회적 힘에 구속된 나머지 선택해야 할 것이 지나치게 많아 선택 자체가 고통의 원인이 되는 상황이다. 풍요 부정은 자신이 가난하다는 교묘한 정신적 논리를 꾸며내고 그렇게 믿음으로써 스스로의 삶을 불행하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붕괴 불안은 경제 불황, 환경 오염, 자원 고갈, 테러리즘, 인구 증가 등으로 인해 세상이 붕괴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팽배해 현재의 풍요를 마음껏 누리지 못하는 현상이다. 충족된 기대의 혁명은 꿈꾸고 간절히 원했던 것들을 실제로 얻게 된 현실에 동반되는 불안한 감정을 뜻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행복을 현재 어디에 있느냐가 아니라 앞으로 주변환경과 소득이 얼마나 좋아질 것이냐를 근거로 판단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최근의 심리학 연구 주제인 긍정심리학 분야에 상당 분량을 할애한다. 특히 ‘용서’와 ‘감사’가 행복에 미치는 영향을 비교적 폭넓고 밀도 있게 조명하고 있다. 용서하고 감사하며 낙천적인 태도를 갖는 것이 상대방보다 ‘자신에게 유익하다’는 게 요체다. 이타적인 행동이 궁극적으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서 긴요하다는 주장이기도 하다.

이 책에서 예화로 든 ‘용서’는 올해 칸 영화제에서 전도연이 여우주연상을 받은 영화 ‘밀양’에서 다루는 바로 그 ‘용서’만큼이나 충격적인 구조다. 풀브라이트 장학금으로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유학을 가 반(反)인종분리정책 운동을 돕던 딸을 죽인 두 흑인 청년들을 용서하는 미국 백인 부부의 얘기가 줄거리다. 자식을 살해한 범인을 용서한 뒤 부부는 더욱 행복하고 큰 마음의 평화를 느꼈다고 고백했다는 것이다.

용서하고 감사하는 태도가 분노하는 것보다 훨씬 이롭다는 점을 증명하는 연구 결과는 살을 빼는 게 건강에 좋다는 논문처럼 산더미처럼 쌓여 있다. 용서가 말로는 쉽지만 실천으로 옮기기는 힘든 걸 부인할 수 없다. 용서를 잘하는 사람은 우울증에 덜 걸리고 더 훌륭한 사회후원자를 얻는 경향이 있다는 연구도 소개하고 있다.

저자의 행복에 대한 관심 영역은 개인 차원에 그치지 않고 인류 전체의 행복론으로 이어진다. 한때 세계적으로 추앙받았던 잭 웰치 전 GE 회장을 비롯한 최고경영자(CEO)들의 탐욕과 부도덕을 생생하고 예리하게 파헤치면서 ‘노블레스 오블리주(높은 사회적 신분에 상응하는 도덕적 책무)’가 인류 전체의 행복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역설하기도 한다. 이와 함께 저개발국의 빈곤 참상의 해결책도 나름의 방식으로 제안한다.

유토피아에서조차 사람들은 행복을 말하기보다 여전히 불평하려들겠지만 그것이 유토피아로 더 가까이 가려는 노력을 방해해서는 안된다고 저자는 결론 삼아 강조한다. 우리가 긍정적 자세를 갖더라도 빈곤, 온실가스 등 전지구적 문제를 쉽게 풀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으나 그런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읽고 나서 명실이 상부하지 않아 허탈감이 드는 책이 적지 않지만, 이 책은 돈과 시간이 아깝다는 생각은 들지 않을 것 같다. 다양한 이론과 예화, 오밀조밀한 지식이 짜임새 있게 교직돼 있어서다. 취향에 따라 다를 수야 있겠지만 웬만한 독자라면 ‘마음의 양식’으로 한번쯤 포만감을 느낄 듯하다.(김학순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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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리는 왜 더 잘살게 되었는데도 행복하지 않은가?
    from Next Key 2009-08-04 18:24 
    진보의 역설 저자 그레그 이스터브룩 지음 | 박정숙 옮김 출판사 에코리브르 펴냄 | 2007.07.15 발간 카테고리 정치/사회 책소개 『진보의 역설』은 현대 문명의 발전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원하는 행복을 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