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론 얘기가 나온 김에 '진짜 공부'에 대한 기사들을 스크랩해놓는다. 찾아보니 작년에 한림대에서 실학을 주제로 학술대회가 개최됐었고, 그 발표문들을 모은 책이 지난 2월에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푸른역사, 2007)로 출간됐었다. 국사학계의 원로인 한영우 교수가 이끈 이 학술대회에서는 실학에 대한 그간의 통설에 이견을 제시하고 있어서 눈길을 끈다(사실 진작부터 김용옥 등이 제기했던 문제이다). '실학(實學)'이란 말이 고유명사라기보다는 보통명사로 보아야 한다는 것으로 주장을 간추릴 수 있을 듯한데, 이채로운 것은 한교수가 '실학의 선구자' 지봉 이수광에 관한 연구서도 올해 같이 펴냈다는 점. 실학을 한편에서는 해체하면서 다른 한편으로는 재구축하고 있는 것 같아서 흥미롭다. 말 그대로 실학의 '디컨스트럭션' 아닌가?.. 

 

중앙일보(07. 02. 23) "실학, 조선 후기만의 사상 아니다"

"이 나이에 내가 누구 눈치 보겠어요, 평생 한국 역사를 연구해오면서 언젠가 꼭 교통정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지요."

올해 고희를 맞는 한영우 한림대 특임교수가 한국사의 교통정리를 위해 팔을 걷어붙였다. 그의 정리를 기다리고 있던 분야는 이른바 '실학(實學) 개념'논쟁. 흔히 정약용하면 실학자란 수식어가 붙는데, 그때의 실학이 조선 후기만의 독특한 사상 유파가 아니라는 주장을 그가 내놨다. "조선 후기에만 실학이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어느 시대나 개혁적 성향의 흐름은 있게 마련이고 그런 이들이 실학이란 용어를 썼어요. 성리학조차도 실학이라고 불렸을 정도입니다."



그에 따르면 실학은 하나가 아니다. 실학하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간주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통설. 하지만 그가 주도해 최근 펴낸 '다시, 실학이란 무엇인가' (푸른역사, 1만6500원)에서 그는 어느 젊은 학자 못지않게 젊은 목소리로 통설에 도전하고 있다. 지난해 7월 한림대 한국학연구소가 주최한 학술대회의 성과를 담은 책이다.



한 교수는 이 책의 총론격인 '실학 연구의 어제와 오늘'이란 글을 통해 조선 후기의 고유명사로 알려진 실학을 보통 명사로 전환하는 작업을 시도한다. 통설에 따르면 실학의 대칭에는 주자학이 설정된다. 주자학이 유행했던 조선은 봉건시대며 실학은 봉건을 극복하고 근대를 지향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같은 통설은 '조선=봉건시대'라는 대전제가 참인 것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성립할 수 없다고 한 교수는 주장한다.

"조선은 서양사에서 나타나는 봉건사회가 아닙니다. 정치적으로 중앙집권이 확립되었고, 세련된 관료제도가 운영되었으며, 토지에 대한 사유재산제도도 확립되었어요. 시험에 의한 능력주의 관리등용제도가 있는 사회를 어떻게 서구적 봉건사회와 동일시할 수 있습니까."

한 교수는 '조선=중세 봉건주의''실학=근대 자본주의'로 나누어 보는 방식은 근대화를 지상 과제로 생각했던 시대의 시각이라고 했다. 실학연구는 1930년대 정인보.문일평.안재홍 등 당대의 석학에 의해 출발한다. 50~60년대에 천관우.홍이섭.한우근 등이 실학 연구 붐을 재점화한 이후 실학은 한국학계의 골격을 형성했다. 실학을 빼놓고 한국학을 얘기하기 힘들 정도다. 그렇게 된 배경엔 우리 역사의 자존심을 세우려는 소망이 자리 잡고 있었다. 일본 제국주의 침략이 없었더라면 우리 힘으로 실학을 통해 근대화와 자본주의를 이룰 수 있었다는 사관이다. 이른바 내재적 발전론의 뼈대가 실학이다.

"근대화와 산업화는 달성해야할 꿈이자 이상이었습니다. 50~60년대 지식인들이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가는 과도기의 실학을 요청했던 시대적 역할은 존중해야 합니다. 하지만 이제 근대를 넘어 탈근대를 이야기하는 21세기에 더 이상 그렇게 볼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한 교수는 중세와 근대라는 이분법을 바탕에 깔고 조선시대와 실학의 성격을 규정하려는 태도를 지양하자고 제안한다. 조선후기 지성사 흐름에 대해선 "자본주의 사회를 지향했다기보다는 현실적으로 부국강병을 추구하면서도 궁극적으로는 유교적 이상주의에 입각한 대동(大同)사회를 꿈꾸었다"고 설명했다.

결론적으로 그는 "아직 우리 역사의 발전 과정을 객관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론의 틀을 만들지는 못하고 있는 실정"이라며 "환경과 생태 문제 등을 반영한 우리의 '21세기 실학'을 만들어갔으면 한다"고 말했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탈 실학` 바람… `학파로서 실학은 존재했던가` 부터 다시 묻는다

다산 정약용(1762~1836)의 이름 앞에는 흔히 실학자라는 설명이 붙는다. 대개 조선시대 주류 이데올로기였던 주자학을 비판하며 조선후기에 발달한 일련의 개혁사상을 '실학(實學)'이라고 불렀다. 이는 실학을 주자학에 대립하는 또 하나의 학파적 개념으로 본 것이다. 이 같은 실학에 관한 통념이 근원적으로 의심받기 시작했다. 20세기 후반부터 관련 학자들이 사석에서 주로 논의해 왔다. '실학은 없다'는 주장까지 나왔었다.

그같은 '실학 해체'논의가 공식 석상으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한림대 한림과학원 한국학연구소(소장 한영우)가 12일 서울 대치동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에서 개최하는 학술대회는 그같은 징후를 뚜렷이 보여준다. 이날 토론회에선 실학이 조선후기에만 특별하게 쓰인 고유명사가 아니었음이 공식적으로 논의된다. '탈(脫)실학 시대'로 진입하는 신호탄이라고 할 수 있겠다.

◆ '실학의 건축'에서 '실학의 해체'로=서울대 국사학과 교수를 정년퇴임한 후 한림대로 적을 옮긴 한영우(68) 소장의 기조발표는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실학의 해체'에 가까운 발언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국사학계의 원로로서 실학의 개념이 형성되어 오던 '실학의 건축'시대를 산 인물로서는 파격적 발언이다. 시대와 학문에 대한 진솔한 고민이 배어 나온다.

실학에 관한 기존의 통념은 '조선시대=봉건시대=주자학'을 한편에 놓고, 다른 한편엔 '조선후기=자본주의 맹아=실학'을 대립시키는 것이다. 이 같은 시각은 봉건시대의 주자학을 실학이 극복하면서 자본주의 근대를 여는 내재적 흐름을 형성했다는 관점으로 이어진다. 당연히 주자학과 실학은 선악의 이분법으로 구분된다.

한 소장은 이에 대해 의문점을 던졌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인가라는 문제부터 제기했다. 조선시대는 봉건이 아닌 중앙집권적 사회였다는 것. 과거시험으로 관리를 뽑는 관료제와 사유재산이 있었던 조선은 근세의 유럽과 비교할 수 있다고도 했다. 이런 지적은 그간 학계 일각에서 나오던 주장들을 종합적으로 반영한 것이다.

1930년대 이후 실학은 만들어졌다= 조선 후기의 학술적 경향의 뼈대를 실학으로 본 것은 1930년대 이후다. 위당 정인보가 다산 정약용을 집중 조명하며 실학 개념의 초석을 놓았다. 주자학을 비판한 대안적 개념으로서의 실학은 해방 이후 더욱 주목받으며 한국학의 기둥으로 자리잡아 갔다. 특히 일본의 식민사관을 극복하면서 우리 학계가 내세운 자본주의 맹아론을 실증해주는 흐름으로 받아들여졌던 것이다. 실학자들을 중심으로 조선도 일본과 같은 자본주의를 자체적으로 형성해낼 수 있었다는 자긍심의 표현이었다. 이같은 흐름은 한국 학계의 20세기를 관통했다.

이 같은 통념에 대해 한 소장은 이렇게 반박한다. "조선시대가 봉건사회라는 대전제가 증명되지 않는 한 실학 개념은 가설 수준에 그칠 수밖에 없다"고. "실학이란 용어가 실제로 '실학자'라고 규정되는 사람들 사이에서 사용되었는지도 실증적으로 증명된 바 없다"고 했다.

한 소장은 조선시대 역사에서 실학을 특수한 용법으로 논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조선 초기 주자학자들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렀기 때문이다. 당시 유학자들은 불교나 도교를 비판할 때 흔히 허학(虛學:공허한 학문)이라고 지칭했다. 유학은 공리공담이 아닌 실질을 중시하는 실학이라는 것이다. 조선 후기에 실질을 중시하는 흐름이 있었다면 그것은 유학의 본령을 회복하자는 것이지 자본주의 근대화 등과는 무관한 주장이었다.

탈(脫)근대, 탈(脫)실학의 21세기= 한국 학계의 20세기는 '실학의 건축'시대였다. 그리고 21세기 한국 학계의 관점은 '실학의 해체'로 이동하고 있다. 실학 개념의 해체가 논의될 수 있는 배경엔 우리의 자신감이 배어 있다. 근대화를 절대선으로 여기던 시절에 우리는 실학이란 개념으로 우리의 역사를 설명해야했다. 하지만 이제 근대화를 성공적으로 이뤘고, 나아가 환경과 생태 문제 등 근대화의 역효과가 제기되는 21세기에 걸맞은 새로운 이론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배영대 기자)

중앙일보(06. 07. 05) 실학 개념 어떻게 변해왔나

1930년대 국학 운동의 일환으로 등장한 '실학'개념은 80년대에 이르러 한국학 전반을 꿰뚫는 핵심 키워드로 자리잡는다. 역사학.철학.문학.사회학.경제학 등 거의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실학 연구는 붐을 이뤘다. 당시 민주화운동의 민중지향적 성격과 맞물려 상승작용을 했다. 그 논리적 근거는 '중세 봉건 조선시대'가 실학의 개혁운동을 거쳐 근대사회로 가는 터를 닦았다는 것이다. 식민사관을 극복하는 근거로도 큰 몫을 했다.

이 같은 경향은 90년대 들어 반성의 계기를 맞는다. 실학 개념이 지나치게 확대해석되었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그러한 반성적 주장이 공식 석상에서 논의되기 어려웠다. 이유는 파괴력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통설적인 실학 개념을 가르쳐준 스승의 학설을 부정해야 하고, 또 그에 기반한 근대 한국학의 체계를 뒤흔들어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근대화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이라는 인식이 비판을 받으면서 실학 개념에 대한 의문도 본격 제기되기 시작했다. 근대지향의 실학 개념을 되돌아볼 필요성이 제기된 것이다. 국사학자 한영우 소장의 용기있는 기조발언은 이같은 시대의 흐름과 역사학계의 연구 성과를 반영하고 있다. 진보적 사관의 해체와도 맞물린다. 문제는 실학이 해체된 자리를 무엇으로 메우냐하는 점이다.

대안의 움직임이 감지된다. 최근 한국학계에선 실학 개념에 기대지 않고 조선시대사를 서술하는 방식을 선보이고 있다. 발전사관 중심의 윤리적 서술을 배제하고 시대마다의 삶의 특징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제 실학이란 용어를 사용하지 않을 것인가. 이에 대해 한영우 소장은 실학이란 용어 자체까지 없앨 필요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조선시대의 유학자만 실학을 얘기한 것이 아니라 어느 시대고 당대의 과제를 고민하는 지식인이라면 누구나 실학적 자세를 지향할 것이기 때문이다. 한 소장은 "서구화 시대가 끝나고 시작된 세계화 시대에 '신(新)실학'을 모색해보자"고 제안했다. 그가 말하는 신실학은 민족.민주.산업화.과학화를 지향한 기존의 실학 위에 생명과 평화의 관점을 추가하는 것이다.

실학 연구의 대세가 탈(脫)실학의 방향으로 모두 넘어온 것은 아니다. 12일 학술대회에 발표자로 참여하는 정호훈(연세대 국학연구원).유봉학(한신대) 교수 등은 기존 실학 개념의 한계를 지적하면서도 완전한 해체에 대해선 유보적 자세를 취하고 있다. 이날 학술대회의 주제는 '실학의 재조명'이다. 실학 패러다임의 변화까지 반영한 실학 연구는 이제부터다.

실학 개념의 형성과 해체 과정

▶1930년대

-정인보, 문일평, 안재홍 등 민족주의 국학자들이 '조선학 운동'의 일환으로 처음 '실학'이란 용어 쓰기 시작

-조선후기 사상가 다산 정약용을 돌출적으로 강조

-실학은 주자학의 '반민족적, 반민중적, 비실용적 학풍'에 대비되는 학풍으로 규정

▶1950년대

-천관우, 홍이섭 등이 해방 후 실학 연구를 이어감

-실학을 봉건과 근대의 대칭 구도 속에서 파악

-주자학은 봉건적 사유로 전제되고, 실학은 봉건적 주자학에서 벗어나 근대로 가는 과도기적 사상으로 구체화

-실학을 근대사상의 맹아(萌芽:싹)로 보는 관점은 우리 역사 자체에서 자생적 근대화의 맹아를 찾으려는 후배 학자들에 의해 통설로 받아들여짐

▶1958년

-한우근이 처음으로 실학 개념에 대해 문제제기

-한우근은 실학이란 말이 조선후기의 용어가 아님을 밝힘

-고려 말 이후 조선시대는 물로 중국 송나라 때도 주자학을 실학이라고 불렸음이 밝혀졌으나 이런 주장은 주류 학계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함

-한우근은 조선후기에 주자학을 비판한 학자와 학문을 '경세치용의 학'이라고 부르자고 제안

▶70~80년대

-70년대 이우성은 실학을 경세치용, 이용후생, 실사구시의 세 분야로 나눌 것을 제안하며 실학 연구의 바톤을 이어받음

-80년대 지두환은 북학파를 실학으로 보자고 주장

-이때까지 실학 개념은 근대를 지향하는 관점으로 본다는 점에서 50년대 천관우의 설을 근본적으로 뛰어넘지는 못함

▶90년대

-김용옥이 '실학은 없다'는 파격적 주장 내세움

-한우근에 이어 실학이란 용어가 전통시대의 보통명사였다고 주장. 자생적 근대화를 지향하는 염원이 실학 개념을 요청했다고 함

-냉전이 해체되고 탈근대주의(포스트모더니즘)가 확산되며 실학 개념 해체 주장이 소장 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되기 시작

▶2006년 7월

-원로 국사학자 한영우, 실학 개념의 해체 가능성 공식 제기

-조선시대를 중세와 근대, 주자학과 실학의 이분법으로 구분하는 통설에 의문 제기

07. 07. 19.

P.S. 참고로 한영우 교수는 조선전기 정치사상사, '정도전 사상' 연구의 권위자로서 <정도전 사상의 연구>(서울대출판부, 1987), <왕조의 설계자 정도전>(지식산업사, 1999) 등의 연구업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중적으로 알려지게 된 건 <정조의 화성행차 그 8일>(효형출판, 1998; 개정판 2007)과 이후의 <다시 찾는 우리 역사> 시리즈를 통해서인 듯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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