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라디너라면 알겠지만 페이퍼를 다 마무리하고 등록을 누르자 로그인 화면이 뜨는 것만큼 황당한 일도 없다. '영어 광풍'에 관한 페이퍼와 함께 이 '시베리아'에 관한 페이퍼가 어제 연이어 그렇게 골탕을 먹게 했는데(마음 같아선 '시베리아 유형'을 보내고 싶다!), 홧김에 방치해둘까 하다가 간단히 마무리한다.

시베리아에 관한 책들이 종종 출간된다. 바이칼호 관광을 다녀온 분들이 주변에 드물지 않은 것처럼 시베리아나 시베리아 횡단열차 또한 아주 먼나라 얘기만은 아니게 됐다. 아, 올렉 멘쉬코프 주연의 <러브 오브 시베리아>(원제는 <시베리아의 이발사>) 같은 영화도 대번에 떠올려 볼 수 있겠다. 왠지 친근한 자작나무숲이 지평선을 가득 채우고 있는 동토의 땅. 유형지. 거기에 요즘엔 석유, 가스 매장지란 이미지가 들러붙은 땅 시베리아에 대한 책이 한권 더 출간됐는데, 이번엔 러시아 정치사 전공자의 저작이라 좀더 깊이 있는 내용을 담고 있을 거라고 생각된다. 저자 인터뷰 기사를 읽어둔다.   

경향신문(07. 07. 14) [이사람]“문화·야생의 인프라 넘쳐납니다”

김창진 성공회대 교수는 2000년부터 매년 한번씩 시베리아에 다녀왔다. 총 7번이다. 올해에도 지인들과 곧 시베리아 여행을 떠날 예정이다. 매년 찾을 만큼 시베리아는 그에게 매력적이다. 그래서 책도 쓰게 됐다. ‘시베리아 예찬’(이룸). 하지만 단순한 여행서는 아니다. “시베리아를 소재로 근대 자본주의 문명을 비판적으로 보고자 했다. 시베리아는 자본주의 문명의 대안적 공간이자 상징이다”라고 그는 말한다.

김교수가 러시아, 그 속의 시베리아와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어쩌면 88서울올림픽 때문이다. “냉전으로 80년, 84년 올림픽이 모두 반쪽으로 치러졌습니다. 88올림픽은 오랜만에 전 세계가 참여했죠. 북한과 함께 적대국가로 여겨졌던 (당시) 소련의 선수들이 서울에 와 경기를 하면서 소련에 대한 관심이 크게 늘었습니다.” 이런 분위기가 이어져 90년 한국과 소련은 수교했다.

일반인은 방문조차 할 수 없었던 소련 사회에도 틈이 생기면서 모스크바대학 유학 기회를 잡을 수 있었다. 한국정치(현대사)로 국내에서 석사를 마치고 영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었던 그에게 새로운 길이 열린 것이다. “학생운동을 하면서 사회주의에 대해 관심이 많았습니다.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체제라고 자부한 소련이 왜 붕괴하고 있는지 구체적 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학문적 관심으로 소련을 택했고 91년 모스크바로 갔다. 하지만 그 곳에서 기대하지도 않았던 것에 매료당하게 됐다. 러시아문화였다. “80년대 초반 학생운동을 하면서 문화예술을 즐기는 건 용납이 안됐죠. 대학 때 세종문화회관 한번 가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모스크바, 페테르부르크 등 러시아 곳곳에서는 고급문화를 일상적으로 즐기고 있었어요. 모스크바 볼쇼이극장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발레공연을 봤습니다. 세계 최고 수준의 공연을 우리 돈 단돈 몇 백 원으로 볼 수 있었어요.” 모든 인민이 예술을 저렴하게 즐길 수 있어야 한다는 사회주의 이념 정책으로 예술은 생활 곳곳에 넘쳐났다. 그의 딸이 매일 보던 TV 만화영화도 “그렇게 서정적이고 자연친화적일 수가 없었다”고 회상했다.

공부를 마치고 한국에 돌아온 것이 96년. 시베리아에 처음 간 것은 한·소 수교 10주년을 기념해 간 2000년도의 연구여행 때였다. 유학 당시에는 돈과 시간이 없어서 가지 못했다고 한다. 유학 시절에는 러시아 문화에 매료당했다면, 시베리아 여행에서는 자연에 감탄했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모스크바까지 이어지는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가면서 중간중간에 다섯 개 도시에서 내렸습니다. 공장, 농장 등에 들러 사회주의 체제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해가는 모습을 현장조사했어요. 17박18일 동안 이어진 일정에서 바이칼호수 등 시베리아의 아름다움에 눈뜨게 됐습니다.”

그가 꼽는 장소는 알혼섬. “바이칼호수의 진면목을 보려면 호수 안에 있는 알혼섬에 가 봐야 합니다. 정답고 아름다운 풀밭, 바다 같은 호수, 원주민의 성소. 그 속에 있으면 도시생활의 각박함에서 벗어나 자연과 하나가 될 수 있습니다. 자기를 돌아볼 수 있고, 우주에 대해 성찰할 수 있습니다.”

한국에 부족한 문화 인프라, 자연친화적·영적인 환경 등을 갖고 있기에 러시아, 또 시베리아에서 배울 것이 많다고 김교수는 강조한다. 책의 부제가 ‘야생의 숲, 문명의 영혼’인 이유다. 그는 “러시아라고 하면 ‘마피아’나 ‘가난한 나라’를 떠올리는 고정관념을 버려야 한다”고 지적한다. 책은 시베리아의 자연·사람·문학·사상에 대해 말하고 있다.(임영주 기자)

07. 07. 14.

P.S. 시베리아 하면 또 떠오로는 책은 블라디미르 아르세니에프의 <데르수 우잘라>(갈라파고스, 2005)이다(관련 페이퍼는 http://blog.aladin.co.kr/mramor/897491). 사둔 지는 꽤 됐지만 읽을 짬을 못내고 있는 책인데 당장 시베리아로 '피서'를 갈 수 있는 형편도 아닌 김에 관련서들과 함께 그냥 미친 척하고 한번 읽어볼까 하는 생각도 든다. 시베리아가 좀더 실감나지 않을까 싶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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