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문학강의를 해왔기에 자연스레 갖게 되는 계획은 나대로의 문학사와 문학개론서를 쓰는 것이다. 이미 많은 책이 나와있기에 굳이 중복되는 내용을 쓸 필요는 없어서 대표적인 책들을 한번 더 검토해보는 것이 단기 과제다. 















최근 이와나미 신서 시리즈의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번역돼 나와서 떠올린 책이 나병철 교수의 <문학의 이해>와 유종호 교수의 <문학이란 무엇인가>다. 


















거슬러 올라가면 학부 1학년 때 으레 읽어야 할 것 같아서 문학과지성사판 <문학이란 무엇인가>를 읽은 이래(엔솔로지여서 강한 인상을 받지는 못했다) 많은 종의 문학개론서를 읽었다. 가장 인상적인 책은 사르트르의 <문학이란 무엇인가>였고, 유종호 교수의 책 정도가 재미있게 읽혔다. 나머지 많은 책들은 참고문헌. 
















이 주제에 관한 국내외 저서를 대부분 갖고 있고 대략을 훑어보았다. 자신의 책을 쓰려면 어떤 시각으로, 어느 정도 분량의 책을 쓸 것인지 먼저 가늠해봐야 하는데, 이번에 나온 문고판 <문학이란 무엇인가>가 참고가 되겠다. 
















그리고 이어지는 건 소설론. 이미 상당수의 소설론과 소설사, 소설 이론서를 구입해놓은 터인데 일단은 국내서 몇권의 특징과 장단점 정도를 체크해야 한다(이 분야의 책을 쓰기 위한 요령은 참고문헌을 읽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메시스>를 쓸 때의 아우어바흐처럼. 마치 무한소미분과 같아서 거의 무한한 참고문헌을 읽으면 읽을수록, 책을 쓸 시간은 사라져버린다).   


국내 저자가 소설만을 이론적으로 다룬 책은 드물다. 나병철 교수의 <소설의 이해>, 조남현 교수의 <소설신론>과 <소설의 본질> 등을 떠올리게 된다. 강의 때 항상 강조하는 것이지만, 우리말의 소설은 (1)이야기로서의 소설, (2)노블(novel)의 번역으로서의 소설, 두 가지 의미가 있고 이를 구별해서 써야 한다(후자를 '근대소설'이나 '근대장편소설', 혹은 '장편소설'이라고도 부른다). 내가 다루려는 건, 강의에서도 그렇지만, 근대소설이다(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루카치나 바흐친 같은 이론가들이 여전히 강력하다. 거기에 몇 명 더 추가할 수 있다).
















근대소설 이해의 관건은 그 전제가 되는 근대사회의 형성과 그 반영이다. 산문서사 형식이 근대적 변화(이행)를 어떻게 재현하고 있는지가 핵심이다. 그 대응과정에서 몇 가지 장르적 양상이 나타나는데, 이 근대소설의 하위장르를 추적하는 게 최근의 이론적 관심사다. 세 가지 장르가 있는데 (1)피카레스크소설(스페인산), (2)교양소설(독일산), 그리고 (3)사회소설(프랑스산). 16세기 후반에 탄생한 피카레스크소설은 근대소설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돈키호테>에도 영향을 주며 북상하여 영국과 프랑스, 독일, 그리고 러시아소설의 탄생에 일조한다. 교양소설(빌둥스로만)은 피카레스크소설의 독일적 변형으로 주인공의 외적 모험이 내적 여행으로 변모한다(독일사회의 특수성의 반영이다). 그리고 18세기말 프랑스대혁명 이후에 비로소 19세기 프랑스의 사회소설이 탄생한다. 이 사회소설이 19세기 소설의 주류가 되는 (사회적) 리얼리즘소설이다. 리얼리즘 소설은 19세기 후반 러시아소설에서 정점에 이르고(프랑스소설과 러시아소설이 근대소설사의 두 축이 된다), 20세기초에 모더니즘 소설이 따로 분기하면서, 20세기 문학은 리얼리즘소설과 모더니즘소설의 대결구도로 진행된다.   


이런 줄거리의 소설사를 반복해서 강의했고, 그것을 구체적으로 작품과 함께 해설하는 일이 소설론에서 다뤄야 하는 과제다. 그 가운데 가장 견적이 많이 나오는 것이 피카레스크소설이다. 이유는 강의에서 다룰 기회가 적기 때문이다. 긴 분량의 악당소설(모험소설)들이 지금 기준으로는 재미나 작품성이 떨어지기 때문에 강의에서 다루기 어렵다. 강의에서 다루지 못하면 틈틈이 혼자서 자료를 구하고 정리해야 하는데, 그럴 시간을 내기가 또한 어렵다. 일의 진행의 더뎌지는 이유. 
















그런 가운데, 독일의 17세기 소설로 피카레스크 소설로 분류할 수 있는 그리멜스하우젠의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가 지난해 완역돼 나왔다. 앞서 요약본만 있었던 작품. 이론으로서만이 아니라 실물로 소설사를 이해하는 데 요긴한 번역본이다(너무 두껍긴 하다!).
















거기에 또다른 과제로는 18세기 영국소설을 읽어야 하는 일인데, 역시 분량의 문제로 <로빈슨 크루소>를 제외하면 강의에서 다루지 못했다. 역시 영국 피카레스크소설로 필딩의 <톰 존스> 등을 강의에서 다루고 싶은데, 19, 20세기 강의에 밀려서 여의치가 않다. 


 


  


 










러시아소설에서는 고골의 <죽은 혼>이 러시아식 피카레스크소설의 대표작으로 꼽을 수 있다. 그런 맥락에서 읽게 되면, 러시아소설의 전개과정에 대한 이해가 조금 달라진다. 피카레스크소설-교양소설-사회소설이라는 공식에 대입할 경우, 러시아소설은 <죽은 혼>(1842)-<전쟁과 평화>(1865-69)-<죄와 벌>(1866)로의 전개과정을 보여준다. 근대소설사의 압축판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러시아소설사에 대한 이해도 시도해볼 수 있다. 문제는 이러한 근대소설의 전사에 해당하는 작품들이 국내에 거의 소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아침에 <모험적 독일인 짐플리치시무스>를 잠시 손에 드는 바람에 묵은 생각을 적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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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11:44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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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2-26 17:22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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