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현대문화사'를 부제로 한 책이 출간되었다. <원본 없는 판타지>(후마니타스). 부제 때문에 기억하게 된 책이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현대문학사'다. 앞서 나왔던 <문학을 부수는 문학>(민음사)의 부제. 출판사는 다르지만, 같은 시리즈의 시민강좌를 엮는 것이고, 평론가 오혜진의 기획이다. 둘 사이에 나온 책이 평론집 <지극히 문학적인 취향>(오월의봄)이었다.
"2018년의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 문화사”(10강, 성균관대학교 국어국문학과·서울시여성가족재단 공동 주관) 강좌는 다양한 장르와 매체를 기반으로 왕성히 활동해 온 작가, 비평가, 연구자가 강사로 참여해, 한국 현대문화사의 변곡점을 페미니스트 시점으로 들춰내고, 페미니즘의 최신 논의들과 접목해 내는 반가운 기획이었다. <원본 없는 판타지>(부제: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읽는 한국 현대문화사)는 강연을 바탕으로 다시 쓰인 10편의 원고와 새롭게 추가된 4편의 글을 하나로 묶은 책이다."
페미니즘을 표방한 책은 다수가 출간돼 있고, 문학비평집 쪽도 마찬가지다. 그런 가운데서도 가장 두드러진 목소리를 내고 있는 평론가가 아닌가 싶다. '원본 없는 판타지'라는 제목의 취지는 기획자가 쓴 서문의 한 대목을 통해서 알 수 있다.
"이 책의 가장 원대한 야심 중 하나는 기존 문화사의 성적 배치, 즉 남자와 여자, 이성애자와 비‒이성애자, 시스젠더와 트랜스젠더의 위치를 그저 기계적으로 뒤바꾸는 것을 페미니즘의 궁극적인 목표이자 유일한 방법론으로 간주하는 게으르고 편협한 사고를 단호히 물리치는 것이다. 그런 인식은 가부장제는 물론, 제국주의, 국민/국가주의, 자본주의 등 지배질서로 환원되지 않는 모든 기이하고 번역 불가능한 비규범적 실천들을 오직 반대정치의 산물로 치부해 버린다. 그것은 필연적으로 기존 지배질서와 전통을 ‘원본’(original)으로 상정한 채 본질주의를 승인·수호하게 되는 자가당착을 수반한다. 또한, 모든 비규범적 욕망과 실천들은 ‘원본’에 대한 ‘모방’에 불과한 것으로 간주되거나, 기존 역사와 무관하게 창출된 ‘원본’이라고 주장됨으로써 탈역사화·탈맥락화된다."
이것이 어느 정도 설득력있는 주장인지는 구체적으로 책에 실린 14편의 글을 읽어봐야 알겠다. 문학 쪽에서 페미니즘 비평에도 계보가 있을까. 그런 주제를 다룬 논문도 있을지 모르겠는데, 나대로 떠올리게 되는 건 김미현, 심진경 등의 평론가다.
대략 2000년대 초반부터 2010년대 중후반까지 패미니즘 비평의 전개과정과 양상을 살펴보자면, 두 평론가의 평론집들을 참고할 수 있을 듯하다. 그 다음세대의 여성 평론가도 다수 등장해서 활발한 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세권 이상의 평론집을 펴낸 평론가는 얼른 떠오르지 않는다. 다음 세대의 대표 평론가, 내지 대표적인 목소리는 시간을 두고 좀더 기다려봐야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