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원에서 영국문학 강의를 마치고 귀가중이다. 제인 오스틴부터 토마스 하디까지, 그리고 20세기 작가로는 아일랜드의 제임스 조이스에 이르는 여정. 영국문학 강의는 주로 셰익스피어부터 시작하거나 제인 오스틴부터 시작하곤 했는데 아직까지는 주관심이 19세기와 20세기 문학이어서다.
그런 구간 설정이 자연스럽지만 예외가 영국문학이다. 프랑스문학이라면 18세기보다는 17세기 고전주의가 더 비중이 있고(리신은 강의에서 읽었지만 유독 몰리에르는 아직 다룰 기회가 없었다), 독문학의 18세기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1774) 정도. 러시아문학에서는 라디셰프와 카람진, 폰비진 등을 강의에서 다루는 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치다.
그렇지만 예외적으로 18세기 영국문학은 소설의 발흥과 관련하여 꽤 견적이 나온다. 조너선 스위프트, 대니얼 디포, 새뮤얼 리처드슨, 헨리 필딩 등의 작품을 읽어야 하기 때문이다. 당장은 아니지만 2-3년 내로 일정을 잡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 사이에 읽어볼 만한 책이 이번주에 나왔다. 18세기 영국 지성사를 총체적으로 다룬 로이 포터의 <근대 세계의 창조>(교유서가). ‘영국 계몽주의의 숨겨진 이야기‘가 부제다.
˝이 책은 인류 사상의 역사에서 돋보이는 영국 계몽주의의 선구적 위상에 주목한다. 저자는 당시 진보적 지식인들의 사고를 고스란히 드러냄으로써 무엇이 그들을 움직였는지 이해하고자 한다. 저자는 영국 계몽주의가 가증스러운 것을 타파하라고 부르짖지도 않았고 혁명을 불러오지도 않았다면서, 영국에는 볼테르가 투옥된 바스티유 감옥이 존재하지 않았고 비국교도는 신앙의 자유를 누렸으며 이단자를 화형시키는 장작단의 불은 진즉에 꺼졌다고 지적한다. 이런 의미에서 18세기 영국 사회는 이미 계몽을 이룩했고, 그렇게 이룩된 체제를 정당화하고 수호하는 작업이 중요했다는 것이다. 저자 로이 포터는 여기에 영국 계몽주의만의 ‘영국성‘이 존재한다고 본다.˝
핵심은 영국 계몽주의 덕분에 영국은 프랑스와 같은 대혁명이 필요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영국과 프랑스의 차이는 곧 영국문학과 프랑스문학과의 차이로 연결되기에 강의에서 자주 언급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그 차이에 대해서 좀더 상세하게 살펴보도록 해주지 않을까 싶다.
단순하게 보자면 영국 계몽주의에 대한 이해는 에드먼드 버크의 보수주의에 대한 이해로 귀결된다. <프랑스혁명에 대한 성찰>(1790)을 떠올리게 되기 때문. 최근 제시 노먼의 평전도 나왔는데 로이 포터의 평설과 같이 읽어봐도 좋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