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에 주말마다 연재되는 '동아시아의 오늘과 내일'의 이번주 꼭지가 '문학위기론과 한국소설'을 다루고 있다. 가라타니의 종언론 이후에 그에 대한 수긍과 비판이 일종의 유행담론처럼 돼 버렸는데, 기사는 문학평론가 신수정씨의 적극적인 문학옹호론으로 읽힌다. 

경향신문(07. 04. 28) 문학위기론과 한국소설

얼마 전에 90년대를 대표하는 소설가의 하나로 우리 문학을 풍요롭게 했던 소설가 고 김소진을 추모하는 단행본 ‘소진의 기억’이 발간되었다(*지난주에 페이퍼에서 다룬 바 있다). 1991년 등단 이후 1997년 유명을 달리하기까지 주로 서울 길음동 산동네 판자촌의 기억을 자신의 소설적 소재로 삼아왔던 이 작가는 80년대 노동소설의 관념주의와 구별되는 그 특유의 따뜻한 민중적 공감을 소설 속에 자주 표출해왔었다. 그래서였을까. 그의 동료들과 후배들이 시와 소설을 싣고 작가와의 추억을 회고하는 장을 마련한 이 추모집은 한 시대의 종말과 그를 애도하는 감상들로 가득 차 있었다.

무엇보다도 김소진이 죽은 해인 1997년을 역설적인 의미에서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규정하는 후배 작가 김연수의 글이 특히 그러했다. 1993년 이십대의 나이로 등단한 뒤 이렇다 할 작품을 쓰지 못한 채 시간을 보내고 있던 김연수는 1997년 5월 생애 처음으로 넥타이를 매고 직장에 출근하는 삶을 살게 된다. 곧이어 일산에 신혼집을 마련하고 오랫동안 사귀어온 여자친구와 결혼을 한다. 1997년 이전이라면 생각할 수 없었던 일이었을 것이다. IMF라는 역사상 유례없는 사건으로 마감되는 1997년은 그에게 오랜 예술가-낭인 생활을 접고 생활인이자 한 집안의 가장으로 구속되는 결절점이 되었다. 그리고 “내가 아닌 어떤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그런 의미에서 1997년을 우리 문학사의 터닝 포인트라고 할 수는 없을까. 1997년, 1963년생 소설가 하나는 조용히 한 생을 접었고, 1970년생 소설가 하나는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을까봐 불안감에 시달리며 어쩔 수 없이 직업의 세계 속으로 투항해 갔다. 어쨌든 그 이후의 한국문학이 그 이전의 그것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몇몇 스타작가들을 제외하고는 초판 3000부를 소화하기도 버거운 우리 출판시장의 침체는 말할 것도 없고 영화나 텔레비전과 같은 영상매체 및 컴퓨터 사이버 매체의 약진에 힘입어 점차 소멸해가는 장르의 하나로 스스로를 규정할 수밖에 없게 된 저간의 사정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적어도 1997년 이후 한국문학은 이제까지 문학이 감당할 수 있으리라고 가정되고 또 당연히 그러리라 요구되어 왔던 모든 전제들이 무시되거나 폄하되는 새로운 문학 환경 속으로 뛰어들게 된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일본의 문학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은 이 사태를 ‘근대문학의 종언’이라는 말로 규정한다. 그에 따르면 소설로 대표되는 근대문학은 공감의 공동체, 즉 네이션의 기반이다. 소설이 단순한 읽을거리들과 구별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소설은 그 스스로 철학이나 종교보다 더 심원한 인식론적·도덕적 기능을 떠맡음으로써 근대적 국민국가를 상상하는 주체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우리가 소설을 근대의 역동적 힘이 살아 움직이는 가장 현실적이고 진실한 허구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러나 이 소설 특유의 능력은 오늘의 문학적 현실 속에서는 더 이상 발휘되기 어렵다. 1950년대 미국소설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일본소설, 그리고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에 이르는 과정은 이 사실을 말의 의미 그대로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무라카미 하루키를 비롯해 일본소설이 세계 시장을 휩쓸고 있는 것이 이즈음 일본문학계의 현실이지만 그것과는 별도로 근대소설은 이제 더 이상 가능하지 않다. 가라타니가 보기에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다만 협소한 형식 속에 안주한 오락물들일 뿐이기 때문이다.

소설에 대한 이 비관적이고 냉소적인 진단에 우리마저 쉽게 주눅들 필요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한국소설 역시 일본의 전철을 많은 부분 그대로 밟고 있는 듯 보인다. 현재 소설 시장의 대부분은 일본번역소설들이 차지하고 있다. 아직 우리에게 완전히 자리 잡지 않은 장르소설에서부터 다양한 형식의 본격문학에 이르기까지 일본소설이 한국 독자들의 감수성에 미치는 영향을 부인할 수 없다. 만약 사태가 이런 식으로 계속 흘러간다면 우리 소설 시장 역시 더 이상 일본식 소설을 외면할 수 없을 것이다. 사실, 우리 소설 시장 역시 이미 일본풍 소설에 의해 잠식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어느 누구도 시장과 독자를 상대로 근대소설의 이상만을 강조할 수 없을 것이다. 가라타니가 이야기한 대로 소설은 이제 그 이전의 자신의 규준 대신 새로운 시대적 이상을 표면에 내세우기 시작했다. 지금 당장 시내 대형 서점에 달려가면 이 모든 사태를 그대로 절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국소설이 지금 당장 그간의 전통과 결별하고 오로지 가벼운 상업주의와 내통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문학의 위기, 근대문학의 종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이야기들은 때로 우리 소설이 진흙 속에서 펼치고 있는 이 움직임에 다소 인색한 경향이 있다. IMF의 경제적 여파보다 그로 인해 더 이상 소설을 쓸 수 없는 어떤 사태에 휘말려 버린 자신들의 정신적 공황 상태를 더 불안해하던 김연수 또래의 작가들은 선배들의 소설이 끝나는 곳에서 자신들의 소설을 다시 시작했다. 1990년대 후반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우리 소설이 이룬 성과들은 이들 세대의 불안감을 기반으로 꽃피워진 것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그들은 선배들의 고답적 문학 형식을 거부하는 한편, 그들의 문학정신은 그대로 이어받고자 했다. 김연수를 비롯하여 김영하, 김경욱, 천운영, 윤성희, 강영숙, 조경란,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편혜영, 이기호 등의 소설적 성취가 말해주는 바가 바로 그것이다.

이들의 소설을 근대소설의 외양과 다르다고 해서 쉽게 배척하는 것은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으로 문학을 대체하는 게으름과 무지의 소산이기 쉽다. 가라타니의 말처럼 소설이 더 이상의 비판적 정치 기능을 상실했다면 문학이 아니어도 그 작업을 이어갈 수 있는 방법은 많을 것이다(*가라타니 자신의 말이기도 하다). 이라크 반전운동을 펼치고 있는 오수연이나 생태 환경운동에 헌신하는 최성각, 베트남이나 몽골 작가들과의 연대를 기획하는 방현석과 전성태 등은 한국소설에 불어닥친 이 딜레마를 구체적인 사회운동과의 접맥을 통해 해결해나가려는 움직임을 대표한다. 무엇보다도 우리 소설계엔 황석영과 같은 근대소설의 적자가 현재까지도 여전히 왕성한 필력을 자랑하고 있다. 오랜 영어생활에서 해방되자마자 그간의 침묵을 보상하려는 듯 ‘오래된 정원’에서부터 ‘손님’을 거쳐 ‘심청’에 이르는 해원의 길을 모색해나가고 있는 그의 움직임은 한국소설의 현재를 웅변한다.

우리는 아직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다. 한국소설은 아직 한 번도 이 정황을 잊어본 적이 없다.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이 조건은 우리 소설을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적 현실로부터 결코 눈을 돌릴 수 없게 만든다. 근대문학의 종언론이 때로 배부르게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기도 하다. 그러나 미국식 속물주의가 멀리 수평선 저 너머에 존재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다. 그것은 언제나 시장의 이름으로 우리 소설의 형질 변경을 요구하고 나선다. 지금 우리 소설에 불어 닥친 대중문화담론들은 이 흐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지금 우리 문학은 이 경계에 있다. 한편에는 동아시아의 정치적 모순이 있다. 다른 한편에는 미국으로 대표되는 속물적 소비주의가 있다. 우리 소설이 이 가운데 어느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삼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이 무엇이든 간에 한국소설의 미래가 동아시아의 미래와 밀접한 관련을 지니고 있다는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일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소설은 여전히 근대문학의 정언명령에 충실한 것 아닐까. 한국소설은 아직 근대적 기획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이다.(신수정|문학평론가)

경향신문(07. 04. 28) 근대소설 희망을 본다

황석영의 ‘심청’은 심청전의 구조를 빌려 온몸으로 동아시아 근대를 살아내야 했던 한 여자의 운명을 재현하고 있는 소설이다. 우리가 알고 있는 심청은 전근대적 효(孝)이데올로기의 화신이다. 그녀는 자신의 몸을 희생함으로써 봉건사회의 균열을 방지하고 지배질서의 우위를 확인시키는 매개체가 된다. 황석영은 이 심청의 이야기를 완전히 뒤바꿔놓는다. 황석영의 심청은 단순한 희생물이기를 거부하고 새로운 삶의 형식을 선보이는 근대의 전복적인 힘에 스스로를 내던진다. 단지 자신의 몸 하나를 자본으로 중국 남경, 일본 등 19세기 말 동아시아 일대를 주유하는 심청의 여정은 근대적 풍랑에 내던져진 한반도의 운명에 대한 하나의 은유에 가깝다.

이에 비할 만한 젊은 작가의 소설로 김영하의 ‘검은꽃’을 들 수 있다. 19세기 말 봉건조선으로부터 멕시코로 이어지는 이산의 여정은 이 소설에서도 중요한 소설적 구조로 작용한다. 무엇보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신세대의 대표주자로 이야기되는 김영하의 소설적 관심사가 그의 선배라고 할 황석영의 그것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확인하는 기쁨을 가지게 된다. 봉건조선으로부터 근대로 내던져진 19세기 다양한 계급군상들의 근대에 대한 반응양상을 재현하는 작가의 시선은 한국소설의 미래와 관련, 지금 우리 소설이 어디에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황석영과 김영하가 상호작용하며 만들어내는 한국소설의 자장이 근대소설의 영역을 확장하고 변형시키는 장관을 기대해 볼 일이다.(신수정/문학평론가)

07. 04. 28-29.

P.S. 평론가의 논점을 간추리면: (1)1997년은 우리 문학사의 터닝 포인트일 수 있다. 이후의 한국문학이 그 이전의 그것과 여러 가지 측면에서 달라진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2)가라타니 고진은 이 사태를 '근대문학의 종언'이란 말로 규정한다. 근대문학(소설)은 공감의 공동체로서의 네이션(국민국가)를 떠받치는 기반이었지만 오늘날의 문학은 더이상 이러한 역할을 감당하고 있지 않다. (3)1950년대 미국소설에서 시작해 1990년대 일본소설, 그리고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에 이르는 과정은 이 사실을 말의 의미 그대로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 (4)하지만 이러한 비관적 전망에 쉽게 주눅들 필요는 없다. 근대소설의 외양과 다른 방식이긴 하지만 1990년대 후반의 한국 작가들은 선배들의 문학정신(근대문학의 정신?)을 그대로 이어받고 있다. 이를 무시하는 것은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으로 문학을 대체하는 것이다. (5)더구나 우리는 아직 엄밀한 의미에서의 통일된 국민국가를 이룩하지 못했다. 한국소설은 아직 한 번도 이 정황을 잊어본 적이 없다. 한국소설은 아직 근대적 기획의 열정으로 뜨겁게 달아올라 있는 상태이다.

이에 대한 의문은 이런 것이다: (1)1997년이 우리문학사의 터닝포인트이며 1990년대 말의 한국소설들은 '근대문학의 종언'을 가장 직접적으로 보여준다는 주장과 '근거 없는 문학위기론/문학종언론'은 어떻게 양립가능한 것인지? (2)근대소설과는 외양이 다른 방식으로 근대문학의 정신을 보전하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은 가라타니의 종언론에 대한 논박이 되는 것인지? (3)김연수를 비롯하여 김영하, 김경욱, 천운영, 윤성희, 강영숙, 조경란, 김중혁, 박민규, 천명관, 편혜영, 이기호 등의 소설적 성취가 과연 '근대적 기획의 열정'과 관련하여 평가되는 것인지? 즉, 이들 젊은 작가들의 소설이 단순한 읽을거리를 넘어서 "철학이나 종교보다 더 심원한 인식론적·도덕적 기능"을 떠맡고 있기에 의미심장한 것인지? (4)더불어 이러한 문학정신의 연속성에도 불구하고, 왜 동아시아의 정치적 모순과, 미국식 속물적 소비주의 가운데 우리 소설이 어느 것을 자신의 운명으로 삼게 될지는 알 수 없는 것인지? 열정만으로는 부족해서일까?..


댓글(2)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2007-04-28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07-04-28 18:37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님/ 저는 그닥 좋아하지 않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