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바타 쇼의 <그래도 우리의 나날>(문학동네)를 강의에서 읽었다. 신형철 평론가가 ‘내 인생의 소설‘로 지목하여 화제가 되었던 소설인데(그 때문에 재출간되기도 했다) 한국문학에 견주면 일종의 ‘후일담소설‘에 해당한다. 그런 맥락에서라면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한국 독자가 반응한 건 <노르웨이의 숲>이 아니라 <상실의 시대>였다)와도 견줄 만하다. 다만 세대는 다른데 1935년생 시바타 쇼가 육전협(1955년 제6회 전국협의회) 세대라면 1949년생 하루키는 1960년대 말 전공투(전학공투회의) 세대에 해당한다. 그 사이에 1960년 안보(투쟁)세대가 자리하는데 평론가 가라타니 고진이 대표적이다.

넓게는 전후세대에 속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소설속 인물들이 그렇듯이 육전협 세대의 경험과 그 후일담을 잘 형상화한 작품이다. 분량은 얇지만 내면 고백의 밀도와 순도는 <상실의 시대>보다 더 높다고 생각한다. 그런 면이 ‘내 인생의 소설‘이라는 평도 가능하게 했을 것이다(그 이면에서 한국 후일담문학에 대한 간접적인 평가도 읽게 된다). 대중성에 있어서도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1960-70년대 일본에서 장기 베스트셀러가 되었을 만큼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래도 <상실의 시대>가 일본뿐 아니라 전세계적으로 거둔 폭발적인 반응에 견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아니 더 나아가서 <상실의 시대>에 대한 반응에 견주면 <그래도 우리의 나날>에 대한 반응은 미미한 편이지 않을까. 나는 이 차이가 한국 독자의 특징이면서 한국문학의 풍토도 말해준다고 생각한다.

주요 인물들이 일본 공산당과 관련되어 있어서 자연스레 러시아문학과도 비교해볼 수 있는데,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넓게 보자면 인텔리겐치아 문학의 일종이고 좁게 보자면 주인공이 대학원생이라는 점에서 ‘대학원생 문학‘에 속한다. 사례가 많지는 않을 듯싶지만 대학원생은 어떤 존재이며 어떤 고민을 갖고 살아가는가 매우 잘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근대문학으로 나쓰메 소세키의 <산시로>가 ‘대학생 소설‘의 좋은 선례라면 <그래도 우리의 나날>은 ‘대학원생 소설‘의 모범이다. 대학원생 독자가 가장 잘 반응할 수 있는 소설이란 뜻이기도 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