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오늘 지방강의를 마치고 귀경중이다. 요즘은 매달 두 차례 지방강의가 있다 보니 한달의 절반은 지방에서 주말을 나게 된다. 그나마 아무리 먼 거리라도 KTX로는 3시간 이내라서 가능한 일이긴 하다(물론 서울역이나 용산역에서 집까지는 다시 한 시간여 소요된다).
오늘 강의는 투르게네프의 <아버지와 아들>이었는데 두 시간은 너무 짧아서 투르게네프문학의 의의를 소개하는 정도에 그쳤다. 돌이켜보니 작품의 주제에 대해서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고 자료로 대체했다(최소 한 시간은 더 필요했다). 하는 수없는 노릇이다. 다음달에는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다룰 예정인데 역시 시간이 턱없이 모자랄 것이다. 하지만 억지로라도 두 시간에 맞추는 것보다는 그렇게 맞추기가 어렵다는 걸 보여주는 게 이 작가들에 대한 예의 같기도 하다. 비록 불완전한 강의가 된다 하더라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강의를 마친 뒤에는 관련서들을 더 주문했다. 국내서로는 더 나온 것이 없으므로 영어로 된 책들인데 한권짜리로 나온 투르게네프 선집과 투르게네프와 플로베르의 서신교환선 등이다. 투르게네프 전기소설도 나온 게 있기에 같이 주문했다. 나로선 그 정도까지가 투르게네프에 대해서 보일 수 있는 관심의 최대치다. 레너드 샤피로의 평전 <투르게네프>의 원서도 장바구니에는 있었지만 책값이 부담스러워서 최종 주문목록에서는 뺐다.
가장 궁금한 건 플로베르와의 서신교환선이다(당연히 불어로 쓰였겠다). 이런 책이 번역돼 나올 가능성은 사실 희박해보이는데(장 그르니에와 카뮈의 서신교환선보다는 플로베르와 투르게네프, 그리고 독일문학에서라면 토마스 만과 헤세의 서신교환선이 훨씬 더 중요하다고 생각되지만 전자는 나와도 후자의 책들은 나오지 않는다), 목 마른 자가 우물을 판다고 궁금한 독자가 알아서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한편으로 톨스토이의 <전쟁과 평화>를 두고서도 두 작가가 의견을 교환한 일이 있어서 톨스토이 강의준비와도 무관하지는 않다.
작가들을 강의에서 다를 때마다 평전들을 구입하는데, 좋은 평전의 번역소개가 갈수록 줄어드는 느낌이다. 책세상판 ‘위대한 작가들‘ 시리즈만 하더라도 모두 절판된 상태다. 그러다 보니 조셉 프랭크의 도스토옙스키 평전 같은 대작(축약본이 1000쪽에 이른다)은 엄두도 못 내는 형편이다. 다른 작가들의 결정판 평전 상당수가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뭔가 사정이 달라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고 우려스럽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