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선생의 새 산문집이 나왔다. <라면을 끓이며>에 뒤이은 <연필로 쓰기>(문학동네)다. 소설 <공터에서>(해냄)와 함께 묶은 것은 프로필에 같이 언급되어서이기도 하지만 표지 색깔 때문이기도 하다. 출판사가 다름에도 같은 흙색(항토색)인 것은 저자의 의중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

전작 <라면을 끓이며>를 책상 가까이에 두고서도 헤아려 보니 3년 반 동안 일부러 읽지 않았는데 딴은 이런 날을 위해서였다. 남들이 미리 먹어치울 때 쟁여놓은 걸 이제 꺼내서 맛보려는 것과 같은 심사다(라면과 달리 유통기한이 없는 걸로 한다면). 그래서 내게는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의 조합이 말 그대로 가능한 것. 그에 합당한 배경을 고르자면 역시나 이번 산문집에도 바탕에 깔려 있는 ‘적막강산‘이어야 하리라. ‘적막강산에서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쓰기‘가 김훈의 세계다.

‘알림‘이란 제목을 단 서문에서 저자는 이렇게 적었다. ˝나는 삶을 구성하는 여러 파편들, 스쳐지나가는 것들, 하찮고 사소한 것들, 날마다 부딪치는 것들에 대하여 말하려 한다.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확보하는 일은 언제나 쉽지 않았다.˝

이 정직한 토로에서 알 수 있지만 그의 산문을 읽는 것은 그가 어렵사리 확보해낸 ˝생활의 질감과 사물의 구체성˝을 읽고 음미하는 것이다. 이 질감과 구체성은 때로는 느낌, 때로는 데이터의 형태를 취한다. 직접 발품을 팔아야 하고 직접 자료를 뒤적여야 한다. ‘연필로 쓴다‘는 말은 그 모든 과정을 아우르는 표현이면서 동시에 글이 쓰이는 과정 자체에 대한 현상적 기술이다. 아마도 ‘손으로 쓰기‘도 가능할 터이나 의미론적으로 중복이기에 ‘연필로 쓰기‘가 되었겠다.

연필을 손에 쥘 때 김훈은 구석기 사내가 주먹도끼를 쥐거나 대장장이가 망치를, 뱃사공이 노를 손에 쥘 때의 엄숙함을 재연한다. ‘밥벌이의 지겨움‘이라고 적기도 했지만 김훈의 ‘지겨움‘은 ‘엄숙함‘이란 뜻으로도 새길 수 있다. 김훈의 산문은 한반도의 적막한 산하에서 밥벌이에 시종하며 일생을 살아온 사내의 느낌과 생각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지 보여주는 한 표본이다. 그것이 한국인이 표현할 수 있는 최대치라고 말할 수는 없더라도 라면을 끓이며 연필로 쓸 수 있는 최대치라고는 말할 수 있겠다. 다음달의 끼니는 김훈의 산문집 두 권으로 정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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