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주 주간경향(1314호)에 실은 북리뷰를 옮겨놓는다. 김대륜의 <역사의 비교>(돌베개)를 거리로 삼았다. 세 가지 주제를 비교역사학의 사례로 다룬 것이라 다른 주제로도 더 이어지지 않을까 싶다. 후속작이 더 이어지길 기대한다.  


 


주간경향(19. 02. 18)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역사의 비교’ 대신에 다른 제목을 붙였다면 ‘비교역사학 입문’이 적당했을 책이다. 대학의 ‘비교역사학’ 강좌를 책으로 옮겨놓았기 때문이다. 오래전 대학시절을 돌이켜보면, 필수 ‘한국사’ 외에 교양과목으로 ‘동양문화사’나 ‘서양문화사’ 같은 강의가 있었다. 저자도 수강 경험이 있을 듯한데 “각 지역의 오랜 역사를 빠르게 훑어 내려가는 문화사 강좌”다. 개인적인 경험에 한정하자면 특별히 흥미롭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세계사 수업의 연장으로만 여겨졌다.


하지만 ‘비교역사학’ 강의가 그때 개설돼 있었다면 소감은 달라졌을 듯하다. 저자의 강조대로 특정 시기나 지역에 한정된 역사 강좌는 역사의 전체상을 다루는 데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반면에 비교역사학은 시·공간을 종횡하며 여러 지역의 역사적 경험을 폭넓게 조망하게끔 해준다. 당장 근대적 국민국가로서 ‘대한민국’을 이해하려면 ‘근대’라는 시기의 대두와 ‘국민국가’의 탄생과정에 대한 확장된 시각의 이해가 필요하다. 18세기 말에나 모습을 드러내는 근대 국민국가가 어떤 조건하에서 탄생했고 어떻게 전파됐는지 이해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아는 데 필수적이다.

저자는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그리고 민족주의, 세 가지 주제를 비교 대상으로 삼았다. 다분히 현재 우리의 처지를 고려한 것이다. “현재의 한국 시민들은 자유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민주공화국 속에서, 또 전세계적으로 확장된 자본주의 세계 체제” 내에서 살고 있기에 그러하다. 동시적으로 존재하며 결합돼 있지만 민주주의와 자본주의, 민족주의는 별도의 역사적 과정을 통해 형성되었고 또 발전돼 왔다. 

가령 민주주의는 고대 그리스의 아테네에서 탄생했지만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로 넘어가는 시기에 중요한 전환을 맞으며, 그렇게 변형된 민주주의가 19세기 후반 조선에 유입된다. 저자가 간추린 바에 따르면, 민주주의 이념과 제도에 대한 조선 지식인이나 개화파 지식인의 이해는 비교적 정확했다. 일례로 1888년 박영효가 고종에게 올린 상소문은 미국 독립선언서를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동학을 필두로 한 아래로부터의 개혁 요구에 맞서 위로부터 추진된 개혁이 1894년부터 시작된 갑오개혁이었다. 하지만 개혁에 대한 열망은 그 뿌리가 내리기 전에 대한제국의 수립으로 좌절된다. 급진 개화파와 외세의 틈바구니에서 고종은 1899년 ‘대한국국제’를 공포하는데, 조선이 자주독립국임을 선포하면서 동시에 자신이 절대군주임을 천명한다.

‘자주독립의 황제국’은 근대국가로 나가는 첫걸음이기는 했으나 황제의 독단적인 전제정치는 민주주의와 무관한 것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일본에 국권을 상실하게 되자 민주주의보다는 국권회복이 최우선의 과제가 된다. 제도로서 민주주의가 비로소 현실화되는 것은 1948년 제헌헌법이 제정되면서다. 그 이후의 한국현대사는 민주주의가 형식으로서만이 아니라 실질로서 정착되기까지의 압축적인 과정이었다. 

민주주의의 사례가 보여주듯 비교역사학은 우리 자신을 더 잘 이해하게 해주는 유용한 거울을 제공한다. 과거사에 대한 정보나 지식보다 중요한 것이 오늘의 현실에 대한 정확한 인식과 이해라면 ‘역사의 비교’는 필수적이면서 유익한 수단이다. 


19. 0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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