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현대시 강의 뒤풀이에 해당하는 페이퍼를 몇 개 쓰려고 했으나 여유가 없었다. 기회가 닿는 대로 쓰기로 하고 당장 생각나는 것 가운데 하나로 시인들에 대한 좋은 평전이 부족하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놀랍다면 놀라운 일인데 김소월에 대한 변변한 평전을 우리는 갖고 있지 않다. 대개 나와 있는 건 ‘김소월의 삶과 문학‘에 대한 소개가 평전이란 이름을 갖고 있는 경우다.

번듯한 평전이 없다는 것은 한국현대시사의 첫머리에 오면서 ‘민족시인‘으로도 불리는 김소월의 생애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바가 그만큼 제한적이라는 뜻이기도 하다. 가족관계나 교우관계만 나열하는 것으로는 부족한데, 작가나 시인들의 경우에는 특히 독서체험이 중요해서다. 소월의 경우에도 어떤 책들을 읽었는지에 대한 정보가 좋은 평전의 요건이다. 소월에 관한 연구논문은 결코 적지 않건만 나는 기본적인 궁금증을 해소해주는 논문을 만나지 못했다(논문의 주제로는 어울리지 않아서일까).

안도현 시인의 평전 등이 나와있는 백석은 사정이 좀 나은 편이다. 한데 지난 50년간 한국시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시인으로 알려진 김수영에 오게 되면 또 한번 놀라게 된다. 최하림 시인의 <김수영 평전>이 거의 처음이자 마지막이기 때문이다(이마저도 절판된 상태다). 소월의 경우에는 자료를 구하기 어렵다는 변명거리라도 있지만 김수영의 경우에는 무엇이 장애인 것인지 이해하기 어럽다.

김수영 평전에서도 그의 생애의 기본 사실들 외에 독서체험과 번역경험에 대한 자세한 정리와 검토가 필요하다. 특히 김수영은 자신의 시의 비밀이 번역에 있다고 발설하기도 했다. 이 정도 비중의 시인이라면 그의 전집에 번역도 포함되어야 한다(그래서 백석의 번역작품들이 출간된 건 대단히 의미있는 일이다). 시 번역에 국한된 게 아니다. 비록 생계를 위한 일이었다고 하더라도 김수영에게 번역은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행위였다(개인적으로는 김수영의 시 번역 외에 에머슨의 산문집 번역을 읽고 싶다. 휘트먼과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서다).

지난해 50주기를 맞아 김수영 시집과 산문집이 두 권으로 갈무리되어 나왔지만 마무리가 아니라 시작에 지나지 않는다. 나로선 번역전집도 나온 뒤에라야 김수영 읽기의 바탕이 마련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런 의미에서 김수영 시의 이해라는 사건도 아직은 미래에 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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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2-06 18:36   URL
비밀 댓글입니다.

로쟈 2019-02-07 14:05   좋아요 0 | URL
연구자들이 맘먹고 평전도 써주면 좋겠어요. 더 중요한 작업인데.

2019-02-08 20:11   URL
비밀 댓글입니다.

2019-02-08 22:42   URL
비밀 댓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