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를 깎고 다시 카페로 왔다. 오전에 들른 카페보다 값은 좀더 저렴하고 맛도 더 낫다. 최상급은 아니어도 평균은 되는 맛이다. 일단은 밀의 <자유론>과 관련자료를 읽기 위해서이지만 가방에는히틀러 평전과 근대문학종언론에 대한 논문도 들어 있다. 한데 페이퍼는 그와 무관하게 교양의 경계 내지 한계에 관한 것이다. 박문호 박사의 신작 <생명은 어떻게 작동하는가>(김영사)가 전작들의 연장선상에서 던지는 질문이다.

사실 교양서는 수식 혹은 분자식이 어느 정도까지 포함할 수 있을까란 질문을 무색하게 만드는데, 책의 거의 전부가 분자식과 그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어서다. 전공자들에게는 평범한 내용일지 모르겠지만 나처럼 문과 생물학(생물1)과 화학(화학1)만 배운 처지에서는(게다가 입시에서는 생물만 선택했다. 네 가지 과학 교과 가운데 택1이었다) 이해하기도, 흥미를 느끼기도 어렵다. 다시금 수식과 분자식을 공부하라는 말은 플라톤을 읽기 위해 희랍어를, 칸트를 읽기 위해 이제라도 독어를 공부하라는 충고와 같다. 건강수명이 100년쯤 된다면 고려해볼 만하지만 현재로서는 과도해보인다.

지속적으로 소개되고 있는 물리학자 가운데는 로저 펜로즈가 내게는 과학교양의 또다른 경계다. 최근에는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승산)이 번역되어 나왔는데 제목괴 소개만 보면 흥미롭지만 역시 온갖 수식이 포함된 책의 난이도가 교양수준을 훌쩍 뛰어넘는다(고 나는 경험에 근거하여 예측한다).

˝물리학은 지난 세기 동안 난관에 봉착해 있었다. 양자역학과 일반상대성이론이라는 두 이론은 널리 진리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두 이론은 기본적인 면에서 서로 상충된다. 두 이론 모두 참일 수는 없다. <유행, 신조 그리고 공상-우주에 관한 새로운 물리학>에서 물리학계의 원로인 로저 펜로즈는 그 문제를 살핀다. 명성만큼이나 파격적이기도 한 저자는 두 이론을 조화시킬 새로운 방법을 모색한다.˝

그런 면에서 다시금 높이 평가하게 되는 이가 스티븐 호킹이다. 그는 최고 수준의 물리학자였지만 그의 앎을 대중과 공유하려는 열정에서도 독보적이었다. 그의 사례에서 내가 얻는 깨달음은 심오한 인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더 중요한 것은 얼마만큼 공유할 수 있느냐다. 공유의 어떤 임계점을 통과할 때 세상은 변화하고 또 진보해 왔다고 나는 생각한다(최우수 학생의 성적 대신 평균성적으로 학력을 평가하는 식이다). 내가 유발 하라리를 높이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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